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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동서문명의 교차로에는 천년의 세월동안 조성된 천불동이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12.07]

돈황의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s) 

 

막고굴(莫高窟)은 중국 간쑤성 둔황시의 동남쪽 25km에 위치한 천불동으로 명사산 동쪽 벼랑에 남북으로 1,600m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막고굴과 서천불동, 안서유림굴, 수협구굴 등 600 여 개의 동굴 속에 2400 여 개의 불상과 벽화가 그려져 있다. 

 

 

동서문물의 교류 루트인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돈황에는 구법승, 대상, 병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교역에서 얻는 경제적인 융성 뿐 아니라 서역문명과 조화된 돈황예술을 꽃피었고 그 대표격이 세계적인 불교유적지로 유명한 막고굴(莫高窟)이다. 기원 전인 전한시대에서 당나라 후기까지 긴 세월을 아우르는 불교유물로 총 면적은 45,000 ㎢이다. 1961년에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되었고,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막고굴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승려 낙준(樂樽)이 이 곳에 석굴을 파고 불상을 조각한 동진(東晋)때인 366년부터라고 한다. 약 천 여개에 달하는 굴이 있어 천불동(千佛洞)이라 불리우는 막고굴은 천년이 세월이 지나 14세기 원대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 화가, 역경사, 석공, 도공, 목공, 시주 들의 손에 의해 끊임없이 조성된다.

 

 

 

그러나 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자연 붕괴와 무지한 인간들의 파괴로 인해서 현재는 492개의 동굴만이 남아 있다. 492개의 동굴 중 수나라 때의 것이 97개, 당나라 때의 것이 225개이고 나머지는 서하와 원, 수나라 이전시대의 것 들이다. 동굴 안에 남은 유물은 소상(塑像)과 벽화(壁畵)가 주를 이룬다. 

 

 

막고굴 초기에는 민간 신화를 다룬 벽화가 대부분이었지만 불교가 전래된 후한시대부터는 불교미술이 주를 이루게 된다. 굴 속에 서 있는 소상들은 시대별 특색이 표정과 자세에 나타나고 벽에 그려진 벽화와 천정화는 정밀하고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그려져 화려하고도 찬란한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 준다. 수 많은 굴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불상의 형태와 벽화의 내용은 굴마다 제각각 달라 그 가치가 더 높다.

 

 

종교와 예술이 이루어 낸 결정체, 막고굴은 몽골의 침입과 이슬람세력의 확대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어 돈황과 함께 역사 속의 잊혀진 존재가  된다. 그러나 불교미술의 보고 막고굴은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1900년 초 둔황석굴을 지키던 태청궁 도사 왕원록에 의해 5만점의 고문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던 제 17굴, 장경동(藏經洞)이 발견되면서부터다. 변경에 위치한 탓에 이슬람 등 이교도의 잦은 침입으로부터 이 곳의 고문서를 지키기 위해 서하(西夏)의 지배를 받을 때 중요한 것들을 굴속에 넣고 폐쇄하였던 것이 몇 백 년의 세월이 지나 뒤 늦게 발견된 것이다. 이것으로 막고굴의 전모가 드러나고 전세계에 알려진 계기가 된다.

 

 

이후부터 막고굴은 서양 강대국들의 약탈의 대상이 된다. 1907년에는 오렐 스타인에 의해 약 7천점의 유물이 유출되어 대영박물관에, 1908년에는 폴 펠리오에 의해 약 7,000점의 유물이 프랑스로 유출된다. 우리의 신라스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 때 함께 나간 것이다.

 

             

 

신라의 고승으로 704년에 태어나 787년에 중국의 오대산(五臺山)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입적한 혜초(慧超)생애는 그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난다. 혜초의 고국이 신라라는 것은  여행기가 발견된 지 7년 후인 1915년에 처음으로 일본 학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에 의해 밝혀진다. 그 전에는 단지 그가 밀교승으로 알려졌을 뿐 국적은 미지로 남아있었다.

 

 

불교문화의 보고이며 돈황학으로까지 확립된 막고굴의 빛나는 유적과 유물들은 기력이 쇠한 청나라 말기 때 약탈로 인해 수만 점이 해외로 유출되어 직므은 10여 개국의 박물관과 도서관에 분산 보관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일본인 오타니가 일제 때 반입한 중앙아시아 문화유물 약 60여 점 중 일부 돈황의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문보기  http://blog.daum.net/ysriver21/549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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