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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한국 문학 속의 중국 세계문화유산 피서산장...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09.15]

승덕 피서산장(承德避暑山莊) 과 주변 寺院

世界文化遺産 1994年指定

 

청황조의 여름 별궁으로 이용된 승덕(承德, Chengde)피서산장은

강희제(康熙帝)가 1702년 착공하였고 건륭제(乾隆帝)가 1790년 완공하였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궁궐 동산으로서,

강남지방 명승지를 본떠 수려한 자연경치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산장은 궁전구역 과 호수구역, 평야구역, 산간구역으로 분류된다.

河北省에 있는 산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까닭에 여름에도 서늘하여

역대 황제의 대부분이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매년 4월에서 9월까지 6개월동안

이 지역에서 정무를 집행하였기 때문에 제2의 정치의 중심지라고도 하였다.

청더의 옛 이름인 러허(熱河)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따뜻한 강이라는 뜻이다.

피서산장과 그 주변의 사원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국 문학 속의 피서산장

이곳은 현재의 승덕(承德 청더, 옛 지명 열하熱河)의 열하행궁(熱河行宮)이라고도 칭하는데, 1780년 조선 정조 4년 사행단의 총지휘자 삼종형(三從兄 팔촌형) 박명원의 수행 비서역에 해당하는 군관자제 신분으로 따라가면서 적은 연암 박지원의 전 26권의 열하일기는 조선을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하여 건륭제를 만나는 과정을 적은 기행문이다. 조선 사신단은 열하(熱河)에서 1780년 음력 8월 9일부터 8월 14일까지 6일간 머무는데 이에 대한 박지원의 기록이 열하일기 제6권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에 담겨 있다. 특히 피서산장에 관한 기록은 마지막권인 26권 피서록(避署錄)에 잘 나타난다. 당시의 연암의 행적은 한양을 출발해 압록강을 거쳐 박천, 의주, 풍성, 요양, 거류하, 북진, 산해관, 옥전, 연경 그리고 목적지인 열하(청더)까지 장장 사개월간의 빡빡한 일정이었다.

 



 



 




 

열하일기 [熱河日記]

박지원 연행기 | 브리태니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연행기(燕行記).

열하일기

 

26권 10책.〈연암집 燕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北京]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이다.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 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기 때문에 위정자들에게 배척당했고, 따라서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책의 구성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7권은 여행 경로를 기록했고 8~26권은 보고 들은 것들을 한 가지씩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
도강록 渡江錄〉은 압록강에서 랴요양[遼陽]에 이르기까지 15일간의 기록으로, 굴뚝과 구들 등 여염집의 구조와 배, 우물, 가마, 성(城)의 제도 등 배울 만한 것이 있으면 자세히 서술하면서 모든 물건을 이롭게 쓸 수 있어 백성의 생활이 윤택해져야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이용후생의 주장을 폈다.

〈성경잡지 盛京雜識〉는 스리허[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기까지의 5일간의 기록으로, 속재필담·상루필담 등 여정에서 사사로이 만난 평민들과 나눈 대화와, 그곳의 산천·절·사당·탑·골동품 등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일신수필 馹迅隨筆〉은 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기까지의 9일간의 기록으로 희대(戱臺)·저자거리·여관·교량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수레의 제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한 것은 〈허생전〉의 중심 사상과도 상통한다.

〈관내정사 關內程史〉는 산하이관 안에서부터 연경(베이징[北京]의 옛 이름)까지의 기록으로, 열상화보(洌上畵譜)에서는 특히 그림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 한편 이 안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 〈호질 虎叱〉은 중국인의 작품임을 빙자해 공격의 화살을 피하면서, 백이·숙제 사당 참관기와 함께 양반 사회의 모순과 명분론에 대해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막북행정록 漠北行程錄〉은 연경에서부터 러허[熱河]로 가기까지의 기록으로 연경에 겨우 도착한 사신 일행이 러허로 피서가 있는 황제를 좇아 밤을 새워 달려가는 동안에 겪은 숱한 고생들을 현장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태학유관록 太學留館錄〉은 러허의 태학관에 머물러 있는 동안 목도한 중국 조관들과 황제 접견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또 우리나라의 역사·지리·풍속·제도·시문과 천체·음률·활불(活佛) 등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과 문답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편에 수록된 지전설에 관한 토론은 과학에 있어 선구적인 그의 견해를 보여준다.

〈환연도중록 還燕道中錄〉은 러허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면서 급히 갈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적고 있는데, 특히 교통 제도에 대해 서술한 것이 주목된다.

〈경개록 傾蓋錄〉은 러허 태학관에서 한족과 만주족의 학자 10여 명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며, 〈황교문답 黃敎問答〉은 불교의 한 지파인 라마교 중에서 갈라져나온 황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아울러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반선시말 班禪始末〉은 황교의 법왕인 반선의 내력과 우리 사신이 반선을 만나보게 된 시말을 기록한 것이고, 〈찰십륜포 札什倫布〉는 곧 반선이 살고 있는 지명으로서 그가 거하는 호화찬란한 궁전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망양록 忘羊錄〉에는 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의 악론을 살필 수 있으며, 〈심세편 審勢編〉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나라를 오랑캐 출신이라 하여 업신여기고 주시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아울러 반주자학적 견해를 역설하고 있다.

〈곡정필담 鵠汀筆談〉은 중국인 곡정 왕민호와의 필담으로서, 정치·경제·종교·지리·역사·학문·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특히 천문에 깊은 관심을 두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산장잡기 山莊雜記〉는 러허 산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담은 것으로 내면에 침잠하여 얻은 깨달음을 서정적으로 엮고 있다.

〈환희기 幻戱記〉는 황제의 만수절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요술장이들을 구경한 이야기이고, 〈피서록 避暑錄〉은 중국의 황제와 학자, 우리나라 학자들의 시 등에 관한 시문 비평을 적은 것이다.

〈행재잡록 行在雜錄〉은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로서,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취한 정책을 적고 조선 당국자들의 청나라에 대한 관심과 대처가 너무나 소홀함을 개탄하고 있다.

〈구외이문 口外異聞〉은 만리장성 밖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60여 항목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데 논점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와 관련시키고 있다.

〈옥갑야화 玉匣夜話〉는 옥갑이라는 여관에서 비장들과 나눈 여러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임을 빙자한 〈허생전 許生傳〉을 이에 실어 그 나름의 부국강병책을 역설하고 있다.

〈금료소초 金蓼小抄〉는 의술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엮은 것이고, 〈황도기략 黃圖記略〉은 연경에서 관광한 문물, 제도 등을 39항목으로 나누어 그 내력과 전해오는 말들을 곁들여서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 謁聖退述〉은 공자의 묘를 참배하고 난 후 그 건물과 학교, 학사의 연혁과 규모 등을 10항목에 나누어 기록한 것이다. 〈앙엽기 盎葉記〉는 연경 안팎에 있는 절과 궁 등 주요명소 20군데를 구경한 기록이고, 마지막으로 〈동란섭필 銅蘭涉筆〉은 이제까지 기록한 것 이외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두서 없이 적은 것이다.


박지원은 이 책을 통해 이용후생을 비롯한 북학파의 사상을 역설하고 동시에 구태의연한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경색된 사고 방식을 효과적으로 풍자하기 위해 사실과 허구의 혼입이라는 복합 구성을 도입했다. 즉 여정과 관련시켜 삽입해놓은 일화들은 보고 들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 창작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험적 구성은 당시에 이미 연암체라고 일컬어진 정통을 벗어난 문장과 함께 기문(奇文)으로 지목받게 하는 요인이 되어, 정조를 중심으로 하는 수구세력이 일으킨 문체반정의 표적이 되었다.





함양군 안의면의 안의초등학교에 세워진 박지원 사적지

안의면은 박지원이 55세 되던 1792년에 현감으로 부임해 5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현청이 있던 자리는 현재 안의 초등학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서 배운 벽돌 굽는 법을 이용해 건물을 짓게 하는 등 이용후생의 실험을 이 곳에서 하였다고 전해진다. 안의면 초입에 있는 광풍루 앞을 흐르는 금천(錦泉)의 제방 바닥이 박지원이 중국에서 배워온 콘크리트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풍루 앞의 금천 제방 바닥(하단부가 박지원표 공법이라고 한다


사설
[오피니언] 글로벌 에세이게재 일자 : 2014년 03월 05일(水)
 
新열하일기와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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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양고궁.
 
 
조백상/駐선양 총영사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였던 연암 박지원이 저술한 ‘열하일기’는 세계적인 기행문의 하나로 꼽힌다. 열하일기는 1780년 연암이 사행단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삼종형 박명원과 동행하게 되면서 중국의 자연과 풍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때로는 주점 등에서 중국의 지식인들과 필담을 나누면서 느낀 소회를 기록한 기행문이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사행단 교류를 통한 한·중 간 정치·외교, 경제, 문화 및 인문 교류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당시 연암의 여정은 오늘날의 지명으로 서울에서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넌 후 단둥(丹東), 랴오양(遼陽), 선양(瀋陽), 산하이관(山海關), 베이징(北京), 그리고 황제가 여름휴가 중이던 허베이(河北)성의 청더(承德)에까지 이어졌다. 연암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첫 여정은 동북3성의 하나인 랴오닝(遼寧)성에서 시작됐다. 오늘날도 랴오닝성에는 조선시대 사신이 지나갔던 여정과 마을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중국에 첫 발을 내디딘 연암에게 가장 먼저 다가선 것은 중국(靑)의 발달된 문물과 자연을 적극 이용하는 태도였다. 연암의 눈은 수레를 활용하는 중국의 운수제도, 벽돌로 쌓은 성과 주택, 도자기를 구워내는 가마, 번화한 상가 등 주로 민생과 관련되는 중국의 문물과 제도들이었다.

연암이 열하일기에 담아 후세에 전하려 한 것은 명분과 탁상공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부강한 국가건설과 국민의 삶을 증진시키려는 이용후생과 실사구시 정신이었다. 연암이 걸었던 연암로드는 오늘날도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한·중 교류의 현주소이자, 조선실학 완성을 위한 실험장이었다.

연암의 이용후생과 실사구시 정신은 오늘날의 한·중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올해로 수교 22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른 관계발전을 이루었다. 지난해 양국간 교역액은 27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중국은 한국의 제1위 무역대상국이 됐고, 한국은 중국의 제1위 수입대상국이 됐다. 지난해 양국 간 인적 교류는 800만을 넘어섰다.

이러한 양적인 분야에서의 관계발전뿐만 아니라, 미래비전 공동선언, 인문유대 강화 등을 통해 양국민 간의 미래를 공유하고, 문화·정서적 측면의 교류 또한 깊어지고 있다. 랴오닝성 등 동북3성에서는 ‘한국산’상표만 붙여 놓아도 최고의 대접을 받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호감이 강하다.

한·중 관계가 이처럼 깊이 있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암이 걸었던 한쪽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연암이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시작됐던 이 길이 다시 연결되고, 이용후생을 꿈꾸던 연암로드가 만주벌판에서 단둥, 압록강을 넘어 평양을 거쳐 다시 서울로 이어질 수 있다면 한·중 관계, 한·동북3성 관계는 진일보할 것이다.

정부는 올해 최우선 외교정책의 목표로 평화통일을 위한 신뢰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통일이라는 대박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 속에 국민과 함께하는 신뢰외교를 통해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진정성 있고 현실적인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기반을 넓히고, 북한의 변화와 호응을 유도해 가야 할 때다. 한·중 양국도 그간 발전돼 온 양국 간 전략적 협력관계와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해 양국 관계 발전의 잠재력이 남북 관계 발전, 그리고 통일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연암이 열하일기를 쓴 지 올해로 234주년인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는 한국을 거쳐 중국 대륙, 그리고 유라시아로 연결되는 새로운 연암로드의 개통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길은 어느 한 방향이 아닌 상호공생과 공영의 방향이며, 미래의 평화를 여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날이 빨리 와서 남북통일과 동북아 번영, 그리고 세계평화가 함께하는 신열하일기가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조백상(57) ▲서울대 외교학과 ▲제16회 외무고시 ▲외교부 특수정책과장 ▲주중1등서기관·주일본참사관 ▲외교부 남아시아대양주협력관 ▲주베트남공사 ▲국방부 국제정책관 ▲주선양총영사

출처:문화일보
기사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3050103372303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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