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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길 위의 강화도]‘고려의 古都’에서 만난 고려의 왕릉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08.11]

▲ 고려 23대 왕으로 고려왕조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재위한 고종임금의 묘인 ‘홍릉’. 고려산 동남쪽 기슭 국화리학생야영장 위쪽에 위치한다. 푸른 하늘 아래 홍릉이 푸른 잎새들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 강화도는 선사 시대 이래 우리나라 역사의 아이콘을 모두 품은 ‘보물섬’입니다. 고인돌, 고려궁지, 외규장각, 광성보, 천주교성지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엔 지금 반만년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뚜껑 없는 박물관, 역사의 보고. 강화도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처럼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죠.

봄맞이 개편과 함께 i-View가 새 연재를 시작하는 ‘길 위의 강화도’는 5000년 강화도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에피소드(episode) 중심으로 전개해 나갈 강화도의 신비로운 유적과 유물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고려의 古都’에서 만난 고려의 왕릉


‘임금의 무덤’을 찾아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고려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왕. 종묘사직이 있는 고향을 떠나 강화도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왕. 고종(23대, 1213~1259 재위)임금이 묻힌 ‘홍릉’은 고려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했다. 왕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곳에서 강화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은 지대에 크고 화려하게 조성하는 조선왕릉과는 달리, 고려왕릉인 홍릉의 묘역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동그랗고 작은 무덤은 양옆 반원형으로 솟아 무덤을 보호하는 언덕인 ‘곡장’에 둘러싸여 있다. 2번째 단에 두 개의 비석과 능을 지키는 4개의 석인이 있는 홍릉은 모두 4단의 석축으로 조성된 모습이다.

고려왕릉은 봉분, 석실, 그리고 제단으로 조성된다. 무덤 주변은 지형을 따라 장방형(사각형)으로 꾸미며 3단~5단의 석축을 쌓는 것이 일반적 형태이다. 보통 1단은 무덤과 곡장, 2단은 석등과 문인석, 3단은 무인석, 4, 5단은 정자각과 능비를 배치한다. 봉분은 원형의 형태를 띠며 봉분자락엔 12지상을 새긴 병풍석이나 난간을 두르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무덤은 크게 석실석곽무덤과 토광목곽묘, 화장묘로 나누어진다. 왕실과 같은 최고 권력층은 석실석곽무덤을 썼으며 신분에 따라 무덤의 구조와 형태도 달랐다. 묫자리는 대부분 남쪽으로 뻗어 내린 양지바른 산의 경사면에 쓰는 것이 보통이다. 

홍릉 역시 뒤쪽으로는 큰 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무덤 양쪽으로 산줄기가 뻗어 내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오른쪽 골짜기로는 작은 천이 흐른다. 고종임금은 어떻게 이곳에 잠든 것일까.


▲ 고려 고종 임금의 제사를 모시고 무덤을 관리하는 홍릉 재실 전경.


몽골이 고려를 침공한 1232년 6월 무신정권의 수장이자 고려의 실권자였던 최우는 나라의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기로 하고 고종에게 강화로 갈 것을 재촉한다. 고종은 처음 머뭇거렸으나 7월 6일 수도 개경(개성)을 떠나 제포(지금의 승천포,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397, 399일대)를 통해 강화도로 들어온다. 그렇게 강화천도가 이뤄졌다.

 

고종은 이후 강화도에 머물며 몽골과 대치하다 1259년 영면하며 고려산에 묻힌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1270년 고려는 몽골과의 화친정책에 따라 개경으로 환도한다. 홍릉 말고도 강화도 양도면엔 3개의 왕릉이 더 있다.


 

진강·고려산 자락에 21대 희종, 22대 고종, 원종의 비 순경태후 등 고려왕릉 오롯이
 

‘석릉’(양도면 길정리 산 182)은 고려 21대 왕인 ‘희종’의 능이다. 돌로 만든 ㄷ자 곡장에 둘러싸인 석릉에선 2007년 발굴 당시 금은동 장신구와 자기류가 발견됐다. 희종은 1204년~1211년 간 재위한 왕이다. 희종은 자신의 측근인 내시 낭중 왕준명, 참정 우승경, 추밀사 홍적, 장군 왕익 등이 최충헌을 제거하는데 실패한 뒤 1215년(고종2) 강화 교동현으로 유배당한다.


▲ 석릉은 고려 21대 왕인 희종임금의 묘이다. 최충헌과 그의 아들 최우에 의해 두 차례 강화도 교동도로 유배됐다가 1237년 5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1219년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1227년 최충헌의 큰아들인 최우가 “복위음모가 있다”며 또다시 강화도로 보냈다가 교동으로 유배한다. 희종은 그렇게 쓸쓸하게 살다 1237년 5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곤릉’(양도면 길정리 산75)은 고려 22대 왕 강종의 두 번째 왕비로 46년간 재위하고 몽골에 최후까지 항전하다 승하한 고종의 어머니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다. 곤릉의 곡장은 낮고 평평하다. 단아하고 반듯해 보이는 이 무덤의 뒤로는 소나무군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무덤을 두른 12개의 장대석은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 곤릉은 고려 22대 왕 강종의 두 번째 왕비인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다. 고종의 어머니다.


원덕태후는 사평왕후가 대궐에서 쫓겨난 뒤 태자비에 책봉된다. 현종 5세손인 신안후 성의 딸인 원덕태후는 1212년(강종1)에 왕비에 봉해지며 연덕공주가 됐는데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지 7년 만인 1239년 영면한다. 원덕태후로 추존된 것은 사후의 일이다.


‘가릉’(양도면 능내리 산12의 2)은 고려 제24대 원종의 비이자 충렬왕의 어머니인 순경태후의 능이다. 가릉은 묘도 앞부분에 유리문을 달아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다. 본래 봉분으로 덮여 있었으나 단면을 잘라 무덤내부를 볼 수 있게 했다. 순경태후는 1236년 아들 충렬왕을 낳은 뒤 눈을 감았다.



▲ 가릉은 고려 24대 왕 원종의 비이자 충렬왕의 어머니인 순경태후의 묘이다. 묘도 앞부분에 유리문을 달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순경태후가 태어난 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219년생인 원종과 1235년 혼인해 이듬해 아이를 낳았으므로 20세가 채 되지 않아 눈을 감았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에 추봉된 김약선의 딸이자 무신정권시기 집권자인 최우의 외손녀이다. 원종이 태자이던 시절에 입궐한 그는 처음 경목현비였으나 남편 원종이 왕위에 오른 뒤 1262년에 왕후에 추존된다. 이 때 시호가 정순왕후였고 훗날 아들 충렬왕이 왕위에 오른 뒤 순경태후로 추존됐다. 1270년 개경환도를 추진한 원종은 4년 뒤인 1274년 6월 세상을 떠난다. 원종의 묘인 ‘소릉’은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소릉리에 있다.



고려왕릉, 남한에선 유일하게 강화도에만 있어, 보존과 함께 새롭게 발굴할 필요성


가릉에서 북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도 화려한 능을 만날 수 있다. 진강산 능선이 뻗어 내린 자리에 위치한 ‘능내리석실분’(양도면 능내리 16-1)이다. 출토유물로 미뤄 왕실의 사람일 것이란 추정은 있지만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곡장은 화강암으로 돼 있으며 3단의 석축과 두 개의 석수가 눈에 띈다.


강화도의 왕릉을 포함해 <고려사>에 기록된 고려왕릉은 87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58기이며 그 중 31기만이 무덤의 주인이 밝혀진 상태다. 고려왕릉은 대부분 북한에 있으며 남쪽엔 유일하게 강화도에서만 만날 수 있다. 고려의 전시 수도였고 왕가의 무덤이 있는 강화도는 지금 ‘고려 고도’(古都)의 향기를 은은히 내뿜고 있다.


양도면은 조선시대 이후 화도면과 마주하면서 옛 진강현 위쪽에 자리해 상도면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위량면과 합하며 위량면의 양(良)자와 상도면의 도(道)자를 따서 양도면으로 부르게 됐다. 인천가톨릭대학교와 진강산(443m)이 있으며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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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비고갯길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굽이굽이 고개 넘어 가는 길​


강화 동쪽에서 서쪽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강화 장터로 장보러 가는 길이고 반대로 장보고 돌아오는 길이기도 하다.


탁 트인 국화저수지를 지나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서면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귀를 찌른다. 청록색 잎들이 무성한 나무와 오솔길 양쪽으로 피어난 풀나무들은 피로를 풀어준다. 이 길은 옛날 나무꾼들이 등짐을 지고 오르내리던 길이기도 하다.


정처 없이 길을 걷다가 운이 좋으면 소박한 시골장(내가시장)과 전국의 마을굿 중 으뜸인 ‘강화 외포리 곶창굿’을 볼 수도 있다. 가을을 노래하는 덕산의 낙엽송 풍광과 크고 작은 고인돌 여러 개가 모여 있는 오상리 고인돌군도 만난다.


■ 고비고갯길(강화버스터미널~외포여객터미널 20.2km, 소요시간 6시간40분)​

강화버스터미널->남문->서문->국화저수지->국화리학생야영장->오상리고인돌군->내가시장->덕산산림욕장->곶창굿당->망양돈대->외포여객터미널
○ 문의 032-934-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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