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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반응으로 심하게 훼손된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동아일보DB
《 ‘콜드 케이스(Cold Case)’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오랜 미해결 사건을 해결하는 과
정을 담은 작품이다. 길게는 수십 년 풀지 못하는 난제도 등장한다. 문화재도 콜드 케이
스가 있다. 현재 기술로는 보존이나 복원이 불가능한 경우다. 그렇다고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가 해결책을 찾느라 애쓰고 있다. 문화재계 ‘CSI(과학수사
대)’라 할 수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김용한)에 자문
해 우리 문화재 5대 콜드 케이스를 뽑아봤다. 경주 석굴암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사례는
제외했다. 》  글리세린 용액에 담긴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뒷가리개.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1]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신비한 광채 보존법 못찾아… 40년째 수장고에
1973년 경북 경주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뒷가리개’는 최상급 콜
드 케이스다. 40년째 뾰족한 보존처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잠
들어 있다.
비단벌레 장식은 천연기념물인 비단벌레의 금빛과 초록빛이 섞인 날개로 만들어졌다.
비단벌레 날개는 은은한 광채가 아름다워 삼국시대부터 장식 재료로 사랑받았다. 일본
에선 옥충(玉蟲)이라 불린다. 황남대총 말안장 장식도 비단벌레 1000마리 이상의 날개
를 촘촘히 붙여 당대 최고의 공예품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장식품이 빛에 노출되거나 건조해지면 색깔이 변한다는 점. 이 때문에 현재도
빛을 차단하고 글리세린 용액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2011년 딱 사흘만 전시할 때도 어
두운 조명 아래 용액에 담긴 채였다. 보존과학센터 측은 “최근 옛 방식으로 비단벌레 장
식품을 복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개와 상부 일부만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유리병.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제공 [2] 미륵사지 석탑 유리병… 풍화돼 부서진 0.04mm 조각 복원길 막막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11호로 삼국시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
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재다. 백제 말 무왕 대에 세워졌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때문
에 석탑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에 들어있던 유리병도 백제 유리공예
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2009년 발굴 당시부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유리병은 처음부터 복원의 난제임이 직감됐던 케이스였다. 오랜 세월 공기 중 수
분이 풍화작용을 일으켜 수백 개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특히 두께까지 얇아져
0.04mm에 이르는 파편도 상당했다.
보존과학센터는 영롱한 무지개 빛을 띠는 유리병을 복원하려 강화 처리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다. 지금까지 원래 형태로 짐작되는 지지물 겉면에 마
개와 상반신 일부분 정도만 복원했다. 워낙 얇아진 탓에 살짝만 압력을 받아도 부서지기
쉬워 접합 자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화학반응으로 심하게 훼손된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동아일보DB [3]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훼손 심한 10%, 밀랍 떼내는 방식 고민중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유네스코 세계기
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의 보물. 2124책으로 이뤄진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실록의 약 10%에 해당하는 밀랍본(蜜蠟本)이 심하게 훼손된 사
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밀랍본이란 보존을 위해 벌집에서 추출한 ‘황랍’ 성분을 종이
에 입힌 책.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했던 방식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로 화학반응을 일
으켜 일부 서책은 종이가 눌어붙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오래도록 손상 원인을 찾지 못해 애태웠으나 조만간 해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국립문
화재연구소가 그간 강원대 제지공학과 조병묵 교수 연구팀과 함께 모조 밀랍본을 만들
어 노화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실험을 거친 결과 성분 분석에 성공했다. 밀랍본 종이가
100%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밀랍을 떼어내는 방식을 두고
다각도로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 공기에 노출돼 흔적만 남은 송산리 6호분 사신도(백호).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4] 공주 송산리 6호분 사신도… 무지한 개방에 사라지는 형상 ‘백약무효’
충남 공주시 송산리에 있는 6호 고분의 백제시대 벽화 ‘사신도(四神圖)’는 희소성이 높은
문화재다. 네 방위를 맡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벽화는 주로 고구려 고분에서 발
견됐다. 백제 사신도는 6호 고분과 충남 부여군 능산리 1호 고분 두 곳뿐이다.
하지만 사신도는 현재 ‘사라졌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훼손이 심각하다. 일제강점기
사진엔 비교적 뚜렷한 형태가 보이지만 현재는 흔적만 겨우 남아 있다. 1972년 고분을
개방하면서 공기 속 유해 인자에 노출돼 안료가 퇴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출입을 막
고 항온 항습장치를 가동 중이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이미 때를 놓친 게 아니냐는 탄식도 나오고 있
다. 6호 고분은 인근 백제 무열왕릉과 함께 보기 드문 벽돌무덤 양식의 무덤. 1500년가
량 이어졌던 소중한 문화유산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세월이 지나며 점차 옅어져가는 고아리 고분의 연꽃장식 천장 벽화. 문화재청 제공 [5] 고령 고아리 고분벽화… 퇴색된 4색 연꽃그림 최근에야 보존나서
1963년 발굴된 경북 고령군 고아리 고분(사적 제165호) 벽화는 가야의 유일한 벽화로
평가받는 중요 문화재. 천장에 네 가지 색깔을 입힌 연꽃장식 그림이 유명하다. 굴식돌방
무덤으로 지어진 축조양식 또한 백제의 영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역사적 자료다.
고아리 고분벽화도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송산리 고분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유입된 공
기로 인해 그림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측은 “무덤 벽화는 일단 한
번 개방되고 나면 훼손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며 “애초 발굴 때부터 이런 점
을 감안했어야 했으나 과거엔 이런 인식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지방자치단체가 보존관리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고령군은 지난해 말 각계 연
구진을 꾸려 보존사업을 체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무덤을 이룬 암석과 벽화의 안
료 상태를 체크하는 작업부터 이뤄져야 한다.
동아일보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원문보기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56457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