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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포효 (咆哮)하는 용의 위용 국보 제136호 용두보당(龍頭寶幢)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2.02]
   
포효 (咆哮)하는 용의 위용  국보  제136호 용두보당(龍頭寶幢)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8-18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장대모양의 이 당은 꼭대기에 용의 머리모양이 장식되어 있어 용두보당이라 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73.8㎝의 작은 크기로, 2층의 기단(基壇) 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당간을 세운 모습


이다. 당간은 8개의 원통이 서로 맞물려 이어져 있는데, 여덟번째의 원통에는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용


머리는 목에 비늘을 새겨 놓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뿔이 앞뒤로 생동감있게 뻗쳐있어 더욱 힘


차게 보인다. 표면 전체에 다갈색으로 얇게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금칠을 하였는데, 지금은 군데군데 그 흔


적만 남아있다.

신라 이래 발달해온 당간양식의 모습과 세련된 공예미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보통 당간의 머리장식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 당은 그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거북의 몸에 힘찬 용의 머리 국보 59호  법천사지광국사탑비(法泉寺智光國師塔碑)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는 고려시대의 석비(石碑)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탑비는 오랫동안 풍마우세(風磨雨洗)와 뇌전(雷電)등으로 파손된 곳이많고 문자와 조각에도 손상된 부분이 많다. 귀부(龜趺)는 넓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여 있고, 밑부분은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龍頭化)된 귀두(龜頭)의 목은 길게 빼어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어린(魚鱗)이 양각되었으며 머리는 입을 벌린 괴수(怪獸)의 형태로 치아가 입술 사이로 보인다.

등에는 방형(方刑)의 구획(區劃)안에 거북 모양의 귀갑문(龜甲紋)을 새겼으며 그 내부에 '王'자를 양각(陽刻)하였고, 등의 중앙에 간결한 복연(伏蓮)으로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신(碑身)을 세웠다.

비문의 내용은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과 행장(行狀)이 기술되어 있고, 비의 뒷면에는 탑비를 건립한 당시 종사한 승려의 인원수 및 건립내역을 기록되어 있다.

지광국사현묘탑비는 고려(高麗) 초에 문장이 뛰어나고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朗平章事) 정유산(鄭惟産)이 왕명을 받들며 비문을 짓고, 글씨를 잘 쓰던 안민후(安民厚)가 비문(碑文)과 음기(陰記)를 서병전(書幷篆)하였으며 이영보(李英輔)와 장자춘(張子春)이 각자(刻字)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歐陽詢體)를 기본으로 부드러움과 단아함을 추구하였다. 입비(立碑) 연대는 비문의 말미(末尾)에 새겨져 있는 '태안원년세재을축중추월일수(太安元年歲在乙丑仲秋月日樹)'로 보아 고려 선종(宣宗) 2년(1085)임을 확인할 수 있다.

<비각을 훼손한 십자가-5m 높이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십자가를 긁은듯-안타까운 우리의 현싵>

 여섯 용이 꿈틀거리는 국보  제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鉸具)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제교구로, 길이 9.4㎝, 너비 6.4㎝이며, 허리띠를 연결시켜주는 금제 장식이다.

머리쪽이 넓고 둥글게 되어 있으며, 안쪽에 이와 평행하게 휘어진 구멍을 만들었고 걸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허리띠를 매게 하였다. 틀을 만들어 그 위에 금판을 놓고 두드려 용의 윤곽을 만들고 금실과 금 알갱이로 큰 용 한마리와 작은 용 여섯마리를 만들었다. 가장자리는 금실을 꼬아서 돌렸고, 안으로 일정한 넓이의 삼각형을 만들었다. 용과 용사이에는 꽃잎모양의 윤곽을 만들고 그 속에 비취옥(玉)을 끼워 넣었는데 현재 7개만이 남아 있다.

금실을 이용하여 장식하는 누금세공(鏤金細工)의 수법이 매우 뛰어나며, 용 7마리의 배치도 율동적으로 표현된 뛰어난 작품이다.


승천하는 이무기 국보 제197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륭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하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힘차게 달려 나가는 용 국보 제259호 분청사기상감용문항아리(粉靑沙器象嵌龍文壺)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항아리로 아가리가 밖으로 살짝 말리고 어깨에서부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서서히 좁아진 모습을 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49.7㎝, 아가리 지름 15㎝, 밑 지름 21.2㎝로 기벽이 두껍고 묵직하다. 도장을 찍 듯 반복해서 무늬를 새긴 인화기법과 상감기법을 이용해서 목 둘레를 국화무늬로 새겼으며, 몸통에는 세군데에 덩굴무늬 띠를 둘러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위쪽 부분은 다시 꽃무늬 모양의 굵은 선을 둘러 구획을 나누고 위, 아래로 국화무늬와 파도무늬를 꽉 차게 찍어 놓았다. 몸통 가운데에는 네발 달린 용과 구름을 활달하게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쪽은 연꽃 무늬를 두르고 있다. 15세기 전반 분청사기 항아리의 전형으로 안정된 형태와 용 문양 표현이 뛰어나다.




특이한 용무늬 국보  제2호 원각사지십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무거운 종을 지탱해 주는 큰 힘, 용뉴(龍紐)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용뉴(龍紐)와 음통(音筒)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실측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2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마름모의 모서리처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문화재로 앞으로도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용이 봉황과 함께 국보 214호 흥왕사명 청동은입사향완(興王寺銘 靑銅銀入絲香)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8-18



향로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이 향로는 높이 40.1㎝, 입 지름 30㎝의 크기로 받침, 몸체, 입 3부분으로 되어있다. 입은 수평으로 넓게 퍼진 테를 가진 전이 있으며, 그 전을 구슬 무늬로 장식하고 연꽃과 덩굴 무늬를 새기고 은을 입혔다. 몸체에는 대칭되는 위치에 꽃으로 창을 만들고 그 안에 용과 봉황을 세밀하게 은입사하였다. 남은 공간에는 갈대와 연꽃을 새기고 위에는 기러기를 새기고, 밑에 오리를 새겨 은을 입혔다.

나팔형 받침은 위의 가장자리를 쌍선으로 굵게 표시하고, 위로 오르면서 덩굴무늬를, 하단에는 풀무늬를, 굽에는 꽃무늬를 은입사하였다. 은입사 문양은 모두 뛰어난 솜씨를 보여줄 뿐아니라 회화적 가치도 아주 높다. 받침 굽에는 34자의 글씨가 남아 있어, 이 향로가 충렬왕 15년(1289)에 제작되어 개풍군 흥왕사에 있었던 것임을 알려준다.

세련된 은입사 기법과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과 잘 사용하지 않던 용과 봉황을 문양으로 사용한 점은 이 향로의 가치를 높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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