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타국을 떠도는, 인류가 남긴 예술의 흔적들
아프가니스탄이란 말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단어입니다. 1979년 12월 구 소련의 침공 이후 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위험한 나라로만 알려져 있지요.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보면 시커먼 색으로 여행금지국가 표시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고대부터 ‘문명의 십자로’ ‘유라시아의 하이웨이’라고 불리는, 동서 교역의 요충지였습니다. 지금도 보면 이란·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파키스탄·중국이라는 여섯 나라와 국경을 마주한, 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나라죠.
특히 옛부터 황금과 각종 보석의 산지로 유명했고, 이후에도 구리·크롬·납·아연에 석유와 천연가스까지 대거 매장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근대 열강의 각축장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멀고 먼 나라에서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7월 5일~9월 4일, 이후 9월 27일~11월 27일 국립경주박물관)전입니다.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의 소장품 231건으로 구성된,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아프가니스탄 역사문화전입니다. 기원전 2100년부터 기원후 2세기에 이르는 유물들이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시를 하게 된 사연입니다. 소련 침공과 내전에 따른 계속되는 혼란으로 각종 문화재들이 약탈당하고 훼손되자, 목숨을 걸고 유물을 지켜온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직원들은 1988년 당시 모함마드 나지불라 대통령에게 “황금 문화재 등 귀한 문화유산은 대통령궁 아그(Arg)내 중앙은행 금고 안으로 옮기자”고 제안을 합니다.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보물들은 열쇠 7개를 모두 넣고 돌려야 열리는 금고 속으로 몸을 감췄습니다. 7개의 열쇠를 하나씩 품에 넣은 ‘7인의 열쇠지기’ 들도 각자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이후 보물의 존재는 잊혀졌죠. 2003년 12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발표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말입니다.
그리고 2004년 4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와 국립아프가니스탄 박물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앙은행의 금고가 개봉됐고 2만2607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와우.
이 황금 보물들은 2006년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을 시작으로 미국 워싱턴 국립예술박물관·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올해는 순회 10주년이 되는 해이고 우리는 12번째 개최국으로 횟수로는 경주국립박물관이 20번째 전시입니다.
4일 기자 간담회가 끝나고 전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테페 푸롤 지역에서 나온 청동기시대 유물들부터 눈에 확 띄었습니다. 금으로 만들어진 잔 조각의 경우 동물들의 모습이 부조돼 있었는데, 이게 기원전 2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죠.
‘잔의 조각’(BC 2200~1900), 금, 높이 11.6 cm. 국립중앙박물관 발간 도록 촬영
‘잔의 조각’ 겉면에 그려진 멧돼지·나무·산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발간 도록 촬영
아이 하눔 유적에서 나온 해시계도 흥미로웠고 틸리야 테페에서 출토된 남녀 묘소의 부장품들을 구경하는 일도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2호묘에서 나온 금과 터키석과 홍옥수로 만들어진 영양무늬 팔찌나 금과 호박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는 현대 유명 보석브랜드의 작품과 진배가 없더라고요.
베그람 출토 유물들은 인도의 영향을 받은 정교한 상아 장식과 화려한 색상의 유리 그릇들이 많았는데 특히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청동 도금된 ‘고르곤·물고기가 있는 둥근 판’이었습니다. 둥근 청동 접시에 가운데는 고르곤(Gorgon·일명 메두사)의 얼굴이 부조돼 있고 그 주위로 수많은 물고기 모습이 새겨져 있었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얇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고기 지느러미들이 돌출돼 있어 판을 흔들면 파르르 떨면서 움직이도록 되어있더라고요. 고맙게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작품의 모조품을 만들어 직접 들고 흔들어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관람객과의 소통을 추구한 이런 시도는 매우 바람직해 보였습니다.
‘고르곤·물고기가 있는 둥근 판’(1세기), 청동 도금, 지름 46.0cm 높이 3.4 cm, 필자 촬영
‘고르곤·물고기가 있는 둥근 판’의 평면도. 필자 촬영
무료로 열리는 이번 전시가 마음에 드셨다면 도록을 구입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2만7000원이나하지만 사진이 아주 자세하게 찍혀있어 직접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우리나라와의 연관성 등 설명이 친절하게 돼 있어 교양을 쌓기에도 제격입니다. 참고로 이 세계 순회전은 각국 문화인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미국 휴스턴박물관 전시 때는 85일간 무려 33만6728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265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