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저고리 입고 상투 튼 남자, 피리를 불거나 여기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 가면을 쓴 채 춤울 추고 있는 사람,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사람, 괭이를 메고 있는 농부, 주름 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여자, 사냥하거나 고기 잡는 사람, 노 젓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 활을 쏘는 사람, 사냥을 마친 뒤 포획한 멧돼지를 말 안장에 싣고 가는 사람, 아이를 낳고 있는 여자,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온몸을 밀착시킨 채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참으로 재미있고 독특하다. 대담하고 과감하다. 1500년 전 신라 사람들, 어떻게 저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저것을 왜 무덤에 넣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 신라 토우(土偶)를 보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토우는 글자 그대로 흙으로 만든 인형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 보면 동물이나 집, 생활도구 등을 본떠 만든 것도 토우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에게 전해오는 토우는 대부분 5세기 저후 신라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그 시대의 것만 전해온다고 하니 더더욱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토우의 역사는 길다. 중국 일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동서양을 두루 살펴보면, 토우는 신석기시대 무렵부터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조몽(繩文)시대부터 토우가 만들어졌다. 4, 5세기 고분시대에 들어서면 하니와(埴輪)라는 독특한 그릇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다양한 토우로 장식하곤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진시황릉의 도용(陶俑) 역시 흙으로 만들어 구운 것이기에 토우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다산(多産)이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람 대신 신(神)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목적에서 토우를 만들었다. 또는 죽은 자의 영원한 삶을 기리는 의미에서 무덤의 부장품용으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의 토우를 본다면 신라 토우가 대표적이다. 신라 이외의 토우는 확인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라 토우를 처음 보면 단순하고 밋밋하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예상치 않은 조형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함 속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있다. 대상의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미적 감각과 대담함, 얼굴 표정에 깃들어 있는 익살과 해학, 낭만과 여유 등. 이것은 일본 중국 토우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신라 토우는 주로 5, 6세기에 만들어졌다. 크기는 대개 2-10cm에 불과하다. 신라 토우는 1926년 경북 경주시 미추왕릉 인근 경주역 확장공사 도중 여러 고분에서 처음 발굴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곳이 지금은 경주시내 한복판 대릉원(大陵苑)의 내부다. 이어 1970년대 이후 경주 황남동 용강동 지역의 고분에서 추가로 발굴됐다. 신라시대 토우이다 보니 대부분 경주 지역에서 발견되어 왔다.

토기 뚜껑에 붙어 있는 다양한 신라 토우들

신라 토우는 토기에 장식물로 붙어 있는 것도 있고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인물을 형상화한 토우를 보면 그 모습이 다채롭다. 삶과 죽음, 노동, 춤과 음악, 성(性)과 사랑 등 신라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냈다. 그 다양한 일상이 그저 놀랍기만하다. 토우는 따라서 신라인들의 일상과 내면을 이해하는데 매우 소중한 사료가 아닐 수 없다.

동물의 경우는 소, 말, 개 등의 가축을 비롯해 사슴, 토끼, 호랑이, 물고기, 자라, 거북, 불가사리, 뱀, 개구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뱀을 보면 개구리를 물고 있는 상황이 많다.

파격의 에로티시즘

토우장식항아리<국보 195호, 신라 5~6세기, 높이 34cm, 국립경주박물관>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람, 뱀, 오리, 거북 등 다양한 토우들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이 놀랍도록 인상적이다.

신라 토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국보 195호 토우장식항아리(土偶裝飾長徑壺)다.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높이는 34cm. 이 항아리의 목 부분엔 크기 5cm 내외의 각종 토우들이 붙어 있다. 가야금을 타고 있는 임신부,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 등의 인물 토우와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을 비롯해 새, 오리, 거북 등의 동물 토우들이다.여기 붙어 있는 여러 토우 가운데 온 몸으로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상이 단연 압권이다. 그 모습을 보자. 한 여인이 엉덩이를 내민 채 엎드려 있고 그 뒤로 한 남정네(머리와 오른팔이 부서져 있다)가 과장된 성기를 내밀며 다가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적나라할 수 있을까. 그 표현의 과감함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여인의 얼굴 표정이다. 왼쪽으로 얼굴을 쓱 돌린 이 여인은 히죽 웃고 있다. 아니, 보는 이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정작 주인공은 웃음을 흘리고 있다니. 저 익살, 저 여유…. 그래서일까. 이 남녀상은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적나라한데도 뻔뻔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건 신라인의 꾸밈없는 허심탄회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더 소박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같은 대담한 성의 표현이 어떻게 인간적이고 허심탄회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에 신라 토우의 진정한 미학과 매력이 숨어 있다.

에로티시즘에 숨겨진 영생의 기원

토우장식항아리의 남녀상에서 잘 드러나듯 신라 토우의 가장 큰 특징은 뜨겁고 대담한 성의 표현이다. 신라 토우엔 성기를 과장해 표현하거나 남녀의 성행위를 감춤 없이 표현한 것이 꽤 많다.

성기가 과장된 남자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남녀

힘껏 껴안고 있는 남녀, 한 몸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성기와 가슴이 지나치게 과장된 남녀 등. 신라 토우는 이처럼 한국 전통에 있어 가장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제와 감춤의 미학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라 토우의 에로티시즘은 하나의 파격이자 충격이다. 하지만 토우에 나타난 성은 신라인의 건강한 쾌락이었다. 그것은 솔직한 삶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이들 토우가 외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외설을 초월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신라 토우가 단순히 본능적 사랑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신라 토우는 주로 무덤의 부장품이었다. 부장품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무덤의 주인공, 즉 죽은 자가 무사히 저승에 이르러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길 기원하는 것이다.

출산 중인 여인

남녀 성의 결합은 새 생명의 탄생이며 이는 곧 죽은 이의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신라인은 이렇게 부활과 자손의 번창, 즉 영생과 다산(多産)이라는 기원을 담아 의식을 치르듯 흙을 빚었던 것이다. 당시 신라인에게 토우를 만드는 것은 성스러운 제의(祭儀)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건 영생(永生)에 대한 절절한 기원이었다. 그렇기에 외설이 끼어들 수 없었던 것이다.

생활의 발견, 익살과 해학

신라 토우에는 신라인의 일상이 담겨 있다. 그 일상은 사실적이면서도 익살과 해학, 낭만과 유머로 이어진다. 그것은 얼굴 표정에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국보 195호 토우장식항아리의 사랑을 나누는 남녀 토우가 그렇다. 대체 부끄럽지도 않은 지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히죽 웃고 있는 여인을 보라. 여성의 얼굴엔 외설이란 것은 온데간데 없고 능청스러울만큼 익살스럽다.

할아버지 얼굴

비파를 연주하는 사람

활 쏘는 사람과 동물 등이 장식된 토기

이번엔 할아버지 얼굴 토우를 보자. 쓱쓱 주물러 얼굴 형태를 만들곤 거기 눈과 입을 슬쩍 파놓고 수염 몇가닥 그어 넣어 노인의 얼굴을 마무리했다. 단순한 흙덩이 토우지만 할아버지의 푸근함이 그대로 살아서 전해온다. 우리네 할아버지의 인자하고 편안한 얼굴이 아닐 수 없다. 이 토우의 얼굴을 한국인의 얼굴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얼굴 표정은 해맑고 익살스럽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유쾌한 미소가 나오게 된다.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약간 치켜든 채 목청껏 노래 부르는 모습, 엉거주춤 서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참으로 낭만적인 신라인의 일상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이다. 노래하는 토우, 연주하는 토우 등도 흥겹고 익살맞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토우를 통해 음악과 춤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팔과 양발을 벌리거나 흔들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표현한 토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팔뚝보다 더 긴 피리를 불고 있는 사람 토우도 있다. 국보 195호 토우장식항아리에도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 토우가 붙어 있다. 이들의 얼굴 표정은 시종 경쾌하고 편안하다.

이러한 표현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라 토우의 살아 숨쉬는 얼굴 표정은 1500여 년 전 신라인의 삶에 대한 밀착, 삶에 대한 애정, 삶을 즐기는 여유와 낭만에서 나온 것이다. 생활 속의 낭만과 여유, 신라인들의 익살과 해학이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슬픔의 표현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출산 중인 여인 토우와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토우를 보면 신라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출산중인 여인 토우는 입과 눈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출산의 고통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슬픔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 신라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망자(亡者)를 보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렇게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토우를 만들어 무덤 속에 부장했던 것이다. 사람의 죽음을 슬픔 속에 가둬두지 않고 춤과 음악으로 사람을 저 멀리 떠나보냈다. 신라 사람들은 그렇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단순함과 생략의 미학

신라 토우는 그것이 신라인의 적나라한 성을 표현한 것이든 신라인의 일상과 내면을 표현한 것이든, 그리고 동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든 모두가 단순하다. 신라 토우는 기본적으로 손으로 몇 번 흙을 쓱쓱 주물러 만든 것이다. 그래서 단순하고 생략이 많다. 5~6cm 정도로 작게 만들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다. 생명력이 넘친다. 단순한 듯하지만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표정이 잘 살아있다.

수줍어 하는 여인

인물 토우를 보면, 손톱으로 쿡쿡 찍은 두 눈만으로도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손톱으로 슬쩍 찍어 넣어 슬픔을 나타내고 눈과 입을 동그랗게 파내서 기쁨을 표현했다. 금녕총에서 출토된 배모양 토기에 붙어있는 벗거벗은 남성 토우는 쓱 내민 혓바닥 하나로 노젓기의 피곤함을 잘 드러냈다.

작고 단순한 토우이지만 이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상황과 특성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여인상의 경우, 얼굴만으로는 남녀 구분이 잘 되지 않지만 가슴이나 엉덩이 등을 과장하거나 강조함으로써 여성임을 나타낸다. 얼굴에 표정이 없을 지라도 몸을 쪼그려 엎드린 모습이나 머리를 푹 숙인 자세만으로 주인공이 슬픔에 빠져 통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라 토우는 마치 초등학생의 찰흙 소조인양 단순하고 서툴러 보인다. 그러나 그 적당한 단순함엔 분명 어떤 역동감이 있다. 그 역동감을 달리 말하면 생명력이다. 단순함과 생략 속에 숨겨진 힘. 작은 토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나 밀착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라 토우는 결국 신라인들의 삶에 대한 애정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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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문화유산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