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여행길

근대역사의 숨결이 서린 곳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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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인물형 토기, 국보 275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천마도 장니, 국보 20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민중 속의 말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박혁거세와 금와왕 신화에서 보듯, 단순한 가축이 아닌 상상의 동물이면서 공상(空想)과 환상(幻想)이 수놓아진 또 다른 세계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말을 기르는 사람들은 마왕(馬王)에게 제사를 지내고, 말 형상의 장식품도 지니고 다닌다. 지금은 사라진 몽골인의 변발(辮髮) 풍습도 말을 숭배하는 마음에서 말꼬리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동양에서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였고, 초자연적 세계와 교류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말 가운데는 특히 흰 말이 신성시되었고, 날개 달린 천마는 신이 하늘을 달릴 때 타는 것으로 믿었다. 때문에 말은 새와 함께 승천하는 영혼의 조력자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천마총에 그려진 천마(天馬), 고구려 장천1호 고분에 그려진 천공을 날며 구름 위를 힘차게 달리는 백마(白馬), 신라와 가야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는 의식용 말(馬)모양 토기, 토우 등이 이러한 관념 즉, 피장자의 영혼을 싣고 승천하여 죽은 영혼을 다음 생으로 이어준다고 믿어 부장(副葬)되었던 것이다. 근래 천마총에서 출토된 장니에 그려진 말 그림을 기린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신격화된 말에 대한 연구 부족 때문이다.

신마부. 도교적 사상과 민속적 용신앙의 복합 성격으로 발생된 신마부적으로 신마는 인간사에 얽힌 불길한 여러 가지 액운들을 막아주고 지켜주는 선신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개인소장>

[산해경]에 따르면 천마는 날 수 있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천마가 나타나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형상은 개와 비슷한데 몸은 희고 머리는 검은 색이며 등에 날개가 달려있어 사람을 보면 바로 날아오른다고 했다. 또 천마는 천상의 신령한 짐승으로 사슴 머리에 용의 몸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 있을 때는 구진(句陳)이고 땅에 있을 때만 천마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천마도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찍이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덕흥리 벽화고분에 날개를 활짝 펴고 허공을 달리는 천마도는 오랜 세월 풍상을 겪어 선명하지 못하다. 하지만 천정에 나타난 말 옆에 ‘천마지상(天馬之像)’이라고 쓰여 있어 천마도임을 확실히 뒷받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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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인물형 토기, 국보 275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천마도 장니, 국보 20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경주 황남동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국보 207호)는 말이 진흙길을 달릴 때 말 탄 사람의 발에 진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배 부분에 대는 ‘장니(障泥)’라는 말 장식에 그려졌다. 이후 천마 그림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장례와 관련된 곳에서 많이 나타나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실어 나른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마인물형 토우 역시 사자(死者)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신령스런 상상의 동물로 나타난 것이다. 조선시대 상여에 붙은 꼭두와 불교의식인 천도재에 말 그림과 콩, 여물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말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조선 세종 27년 상서문에 “천일(天一), 태을(太乙)을 부귀의 본원으로 보고 천록(天祿), 천마(天馬)는 부귀의 임용(任用)”이라고 한데서 보면 천마는 신비주의적인 역할은 물론 조선시대에서는 인간 최고의 바람인 부귀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마와 비슷한 상상 속의 말로 신마가 있다. 이색의 목은집 제7권에 천마는 천년을 산다는 비황(飛皇)이라고도 하며 천자(天子)의 거가(車駕)에 채워지는 말이라고 하였다. 산해경에 보면 기굉국(奇肱國), 혹 기고국(奇股國)의 사람들은 항상 ‘길양(吉良)’이라고 하는 신마(神馬)를 타고 다니는데 이 말은 흰 바탕에 무늬가 있고 말갈기는 붉으며 두 눈은 황금빛이 난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길양(吉良)을 탄 사람은 천 살을 살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 글 맨 위에 실린 그림은 도교적 사상과 민속적 용신앙의 복합 성격으로 발생된 신마부적이다. 천록(天祿), 벽사(辟邪) 등의 길상행복을 염원하는 부적으로 신마(神馬)는 용마(龍馬)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인간사에 얽힌 불길한 여러 가지 액운들을 막아주고 지켜주는 선신(善神)역할도 한다고 믿었다. 이 부적에 나타난 신마 역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표현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신마의 신통함이 능히 위력이 있음을 상상케 하고 믿게 하는 관념에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부적으로 가회민화박물관 소장의 말 부적이 있다. 목판 위에 경면주사로 찍어낸 이 신마 부적은 앞서 보이는 신마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수호와 벽사의 의미를 지닌 신마의 영적 능력 특성상 부적이 유행한 조선후기에 판화로 제작하여 일반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보급된 부적으로 보인다. 무신도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말 역시 같은 의미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뿐 아니라 조각상 등에도 말의 형상은 종종 나타난다. 건물의 추녀마루 위에는 잡상이 그러하다. 중국에서 유래한 잡상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당태종이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는 귀신을 막기 위해 지붕 위에 보초 서게 했다는 설에서 유래한다. 또 하나는 황제가 꿈속에 귀신이 나타나며 자신에게 기왓장을 던지며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지붕에 얹은 기왓장 위에 이 같은 수호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때문에 중국의 잡상들은 대부분 중국 신화에 나오는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잡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그 종류와 배열순서가 거의 정해져 있는데, 중국에서 가장 큰 궁궐건물인 북경의 자금성 태화전에는 10개의 잡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천마(天馬)와 해마(海馬)이다. 태화전을 비롯한 부속건물에는 맨 앞에 봉황을 탄 선인을 선두로 용, 봉황, 사자, 천마, 해마, 산예(狻猊)등을 배치해 수호신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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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마 관운장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자금성 태화전 잡상 자금성 태화전에는 10개의 잡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마와 해마가 주목할 만 하다. 태화전을 비롯한 부속건물에는 맨 앞에 봉황을 탄 선인을 선두로 용, 봉황, 사자, 천마, 해마, 산예(狻猊)등을 배치해 수호신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했음을 보여준다

해마는 수마(水馬)라고도 불리는 신령하고 상서로운 짐승으로 용의 정령(精靈)이며 신마라고도 부른다. 생김새는 말처럼 생겼고, 앞다리에 무늬가 있으며 소의 꼬리가 달려 있다고 [산해경] ‘북산경(北山經)’에 전한다. 해마는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살며, 달이 뜨지 않는 밤에 바람이 암말의 냄새를 실어올 때만 땅을 밟는다고 한다.

한편 18세기 중국의 여행자인 왕대해(王大海)에 따르면 “해마는 주로 암컷을 찾아 바닷가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때로 사람들은 해마를 붙잡기도 한다. 그것의 털은 칠흑같이 검고 윤기가 흐르고 꼬리는 길어서 땅을 쓸고 다닐 정도이다. 육지에서는 다른 말들처럼 걸어 다니며 무척 순한 동물이다. 그리고 하루에 수백 리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해마를 강에서 목욕시키면 안 된다. 물을 보자마자 해마는 옛 성격을 되찾아서 수영을 하여 멀리 사라져버린다.”고 말한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해마는 꼬리가 좀 더 길 뿐 대체적으로 신마나 천마 등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천마가 황제의 권위와 덕이 하늘과 바다에 이른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동물이라면 해마는 바다에 이른다는 뜻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민간에서도 말을 무신으로 여겨 쇠나 나무로 말 모양을 만들어 수호신으로 삼기도 하였다. 흙으로 말 형상을 빚어 마을 입구 땅 속에 묻어두면 말의 능력으로 그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었다. 무신도에 나오는 장군들은 백마와 적토마를 타고 등장한다. 비록 날개나 화염문(火焰文) 같은 갈기는 없지만 신성한 의미를 상징하는 백색이나 재앙과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적 의미를 지닌 붉은색을 등장시켜 말을 더욱 신성화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가 되면 대부분의 그림에 장생(長生)의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천마 역시 신선들과 함께 그려지며 장수를 상징하는 말(馬)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말이 지닌 상징성은 앞 시기 무덤에서 승천의 상징물로 사용되던 새(鳥)를 대신해 삼국시대부터 유행했으며 이후 사회적으로 유용한 도구로서의 기능과 더불어 인간의 기원을 담은 다양한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