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은 석탑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기존 신라와 백제로 대표되던 각기 다른 양식의 석탑이 하나의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7세기 말 경, 경주의 감은사(感恩寺)와 고선사(高仙寺)에 세워진 삼층석탑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탑들은 마치 통일 왕조의 권위와 위용을 상징하는 듯, 안정적이면서도 압도하는 웅장함이 돋보인다.
초층 탑신석 상단 중앙까지는 밑변이 긴 삼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더하였고 층간의 높이와 지붕의
비례를 일정하게 체감시켜서 그러한 시각적 효과를 보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 초기 석탑의 안정감과 웅장함은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면서 비례의 경향이 세장(細長)함으로 바뀌게 된다. 탑의 규모는 축소되었고, 돌들을
결합하고 쌓는 방식도 규칙화·효율화되었으며, 밑변이 길었던 삼각형 구도 역시 밑변이 점차 좁아지는
구도로 변화하게 된다. 8세기 중엽에 이르면 하부의 정삼각형 구도와 절묘한 체감율이 적용된
신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석탑들이 등장하게 된다.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비례를
가진 석탑들은 경주를 비롯하여 지방에서도 유행하였다.

일반형 석탑이 출현한 7세기 말에서 비례적 완성이 이루어진 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석탑의 표면에 못 구멍을 뚫는 경우는 옥개석 모서리에 풍탁을 달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쓰이지 않는 기법이었다. 

 물론,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고선사지 삼층석탑>의 초층 탑신석에서 이러한 모습이
처음 나타났으나 유행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현존하는 예가 남아있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금동판 등을 탑에 부착하기 위해 뚫은 못 구멍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
렇다면 갈항사에 세워졌던 두 탑에는 무슨 이유로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이와 같은 기법이
그것도 지방에서 신성처럼 나타나게 된 것일까?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기단부 부재
배열 방식 및 각 부재 간의 비례 등을 분석해 보면, 758년에 건립했다는 명문 기록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못 구멍에 대한 문제는 기존과는 다른 측면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경주에서는 <고선사지 삼층석탑>을 제외하면 유사한 못 구멍 표현을 보이는 예가 유일하게
1건 확인된다. 경주 반월성 인근에 위치한 <전 인용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그것이다.
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쌍탑은 도괴된 채로 오랜 시간이 흘러 부재들의
유실이 많은 편이지만 옥개석과 초층 탑신석에 뚫려 있는 못 구멍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옥개석의 못 구멍은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그것과 배열의 차이는 있으나 가장자리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뚫은 점은 동일한 장엄 의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전 인용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표면 장엄의 발전 단계라는 측면으로 접근해 볼 때,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사이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중간 단계의 유물로 보인다.

그러나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전 인용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제작 시기는 위의 현상과는
상반된다. 이 문제는 명문이 새겨진 시점과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지게끔 해준다. 동탑의 기단부에
새겨진 명문은 아래와 같다.

갈항사지 동 삼층석탑 기단부 명문

경신태왕(敬信太王)과 소문황태후(昭文皇太后)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도 확인되는 인물로서
원성왕(元聖王)과 그의 어머니를 각각 지칭한다.
이 명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를 왕이라고 기록한 점,
시호(諡號)를 사용하지 않고 경신(敬信)이란 휘(諱)를
사용한 점 등을 보아 원성왕의 치세기인 785년에서
798년 사이에 새겨진 것임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왜 건립 당시가 아닌 원성왕의 재위기간
중 왕과의 관계까지 언급하면서 발원자들을 탑에
새긴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신(敬信)이 왕
이 된 후 그의 외척들은 그들의 원찰이었던 갈항사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추가 불사(佛事)를 진행한 것 같다.
불사의 규모는 알 수 없으나 탑에 보이는 못 구멍과
명문이 그러한 숨겨진 사정을 이야기 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독특한
특징이었던 못 구멍들은 건립 당시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성왕의 재위기간 중 표면 장엄을 위해 새롭게
뚫은 것이고, 그러한 장엄 기법은 신라 왕성 바로 인근에
 세워져 있었던 <전 인용사지 동·서 삼층석탑>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해석해 본다면 지금까지 양식사적으로
 의문시되어 왔던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된다.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초층 탑신석의 중앙부가 거칠게 면 처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러한 흔적들은 노출되지 않는 부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써 초층 탑신석 중앙부를 이와 같이 처리하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고유섭(한국 초대 미술사학자) 선생이 원래는 사천왕상 또는 보살상과 같은 부조상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 이래 다른 의견이 없을 정도로 그러한 흔적이 뚜렷하다. 이 흔적들은 앞서 살펴본 못 구멍과 함께 이 탑을 이해하는데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건립될 당시에는 초층 탑신석에 부조상이 새겨져 있었다는 점과 이후 부조상이 없어지면서 이 부위가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동시에 알려주기 때문이다.

<갈항사지 동삼층석탑>초층 탑신부

결국 원성왕 재위기간 중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추가 장엄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부조상은
없어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 이미 계획된 금동판 등이 부착되면서 더 이상 깔끔히 다듬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초층 탑신석 중앙부의 거친 면 처리 흔적들은 석탑의 표면에
못 구멍이 뚫린 시기가 원성왕의 치세기일 것이라는 추정을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다.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아름다운 비례미와 758년이라는 절대연대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유물이다. 짧지만 단서를 내포하고 있는 명문을 비롯하여
이들 탑만이 지닌 독특한 특징들은 당시 신라인들의 생각과 배경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미 살펴본 내용들을 제외하더라도 이들 두 탑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
동일한 모습의 두 탑을 만들면서 비슷한 듯 다른 부분들이 유독 많고 출토된 사리장엄구와
그 속에서 나온 <준제진언>, 그리고 사리장엄구의 출토 위치 등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도 맞추어
나가야 할 퍼즐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비슷한 듯 다른 양상들은 그 이유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과연 무슨 이유로
그렇게 처리한 것일까? 계획된 의장일까? 아니면 단순한 실수 정도로 치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