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흑백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 변사공연이 다음 달 상영된다. 지난해 변사공연 모습. (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

1930년대 무성영화 상영방식대로 재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현존 최고 오래된 한국 극영화 ‘청춘의 십자로’가 등록문화재 지정을 기념해 변사(辯士)공연으로 펼쳐진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은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로 알려진 ‘청춘의 십자로’의 원본
필름이 최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1930년대 무성영화 상영방식을 재현한 변사공연을 개최한다.

‘청춘의 십자로’ 변사공연은 2008년 자료원이 상암동 신청사로 이전해 기념 공연을 선보였을 당시 김태용(‘가족의 탄생’ ‘만추’) 감독의 연출로 변사 및 라이브 연주, 배우의 노래가 종합된 복합공연으로 재탄생된 바 있다.

영화는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 서울에 올라와 도시에서 겪는 소비문화, 부적절한 남녀 간의 관계, 향락적인 일상 등 삶의 단면을 그렸다. 이번 상영에서는 ‘만추(2011)’의 김태용 감독이 변사 시나리오를 썼고, 직접 편집했던 2008년 버전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또 조희봉 변사(무성영화시대 해설자)가 직접 나와 영화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청춘의 십자로’는 부산국제영화제, 제천국제영화제 등 국내 외 주요 영화제 및 2009년 뉴욕영화제, 2011년 멕시코 과나화토영화제, 2011년 런던템즈페스티벌 한국문화축제 등 해외 영화축제에 다수 초청돼 많은 호응과 관심을 받았다. 


변사공연 ‘청춘의 십자로’, 이것이 신세기의 별천지 쑈!

[청춘의 십자로] 변사 공연을 가다

1930년대 무성 영화 <청춘의 십자로>. 김태용 감독의 연출과 배우 조희봉의 변사 연기가 어우러져 색다른 공연이 탄생했다. 지난 3월 7일(수)과 8일(목) 세 차례에 걸쳐 상영한 이 즐거운 무대의 분위기를 전한다.


때는 바야흐로 삼월하고도 칠일, 비둘기가 삼삼오오 떼를 지어 화창한 하늘을 미끄러질 듯 날아다니는 오후의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구나.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상영관에서는 멋들어진 영화 한 편이 상영된다고 하는데. 새침한 아가씨도, 봄바람에 날릴 머리카락 몇 올 남지 않은 중년의 신사도 작품을 보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기느라 몹시도 분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아니, 이것은 흡사 별천지의 풍경이 아니더냐. 흑백 화면 가득한 저 영화는 1934년 9월 21일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청춘의 십자로>가 틀림없으렷다. 격동의 청춘을 살고 있는 경성의 네 젊은이가 흑백 화면 안에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사이 그들에게 생명을 입히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흰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입고 목소리 열연을 펼치고 있는 변사 조희봉 되시겠다.

여자에겐 절개가 제일이고 금전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여인이 기댈 곳은 남자의 거짓말뿐인 알량한 상황을 어찌 저리 간드러지게 연기하고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연인 계순뿐 아니라 하나뿐인 동생 영옥도 천하의 난봉꾼 계철에게 순정을 짓밟혔다는 사실에 분개한 채, 화면 안에서 낫을 들고 설쳐대는 저 늠름한 남정네가 영복이인 것이다. 변사는 늠름했다 간드러졌다를 반복하며 영옥과 영복의 대화를 전하고 있으니, 가히 눈물 콧물을 흘리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감동적인 연사라.

“오빠, 왜 이제야 나타는 것이어요!” “그래, 모두 나의 잘못이다!” “오빠, 그런 말 마셔요. 남자를 믿었던 저의 잘못이어요.” “약한 소리 말아라! 죽어야 할 녀석 따로 있다. 그 녀석 어디 있니이!” “흑흑, 오라버니. 그이는 결혼하러 갔어요.” “결혼시이이익! 장례식이 될 거다! 나를 잡지 마라!”


그런데 아까부터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가슴속을 후벼 파는 이 쿵짝쿵짝 하는 곡조는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이냐. 이제 보니 변사의 반대편에서는 4인조 악단이 분위기에 꼭 맞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돋우고 있음이라. 아아, 이때 콩알 반쪽만큼이라도 더욱 입체적인 공연 관람을 만들기 위해 무대에 뮤지컬 배우까지 매끄럽게 등장시킨 연출가 김태용 감독의 세심한 ‘멋장이 쎈쓰’가 대폭발하는구나.

무성 영화 화면과 변사의 열연, 무대 위 뮤지컬 한 대목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니 신세기의 잘나가는 ‘쑈’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2008년에 국내 영화제에서 처음 시작한 이 진귀한 공연은 올해 2월에 문화재등록까지 마쳤다고 하니, 봄바람 쐬러 땅을 비집고 나온 개구리도 기뻐하며 뱃가죽을 뒤집고 팔짝 날뛸 만한 소식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당시 신문을 뒤져 찾아낸 단 몇 줄의 영화 줄거리만 가지고 짜 맞추어 이리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니, 관객들은 여간 신기하고 기쁘지 아니한 터다.

주인공 이름이 계순이 아니면 어떻고, 김태용 감독이 보기에 여주인공이 부르는 입 모양이 ‘오빠’인 듯하여 덜컥 오빠 역할로 만들었다던 그 남정네가 사실은 오빠가 아니면 어떠하며, 영화의 줄거리가 개봉 당시 내용과 미묘하게 다르다 한들 어떠할까. 눈에 실핏줄이 터져가며 열연하는 변사의 말재간에 푹 빠져 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이리도 재미있는 것을. 부탁컨대 이 공연 많이많이 올려주시오. 여태껏 그랬듯 해외 무대도 부지런히 돌며 동방에 이리도 재미있는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오. 그래서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관객들에게 따뜻한 향수를 안기며 웃겨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