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문화재를 향한 길을 만들다
소년 목동은 무난했던 유년을 남다르게 기억한다.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가기 위해 매일 학교를 마치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오르던 어달산 자락. 그곳엔 몰랐기에 용감하게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던 돌무더기가 있었다. 지금은 동해어달산봉수대(강원도기념물 제13호)로 문화재 지정이 되어 있지만, 그때 그 시절 아이의 눈에는 장난치기에 딱 알맞은 커다란 돌이었다.

“저는 스스로를 언제나 역사의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가지고 놀았던 돌들이 그대로 견고하게 쌓여 있다면, 원형에 조금 더 가까웠을 테니 말입니다.”

동해의 완만한 해안 지형이 시원스레 뻗어 내려가고 있는 어달산 전경. 날씨만 좋으면 먼 해안까지도 한눈에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옛날, 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세워졌다. 고려시대 때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들어졌던 것으로, 조선시대까지 사용했으며 북쪽으로 오근산봉수대, 남쪽으로 광진산봉수대와 연결된다.

“2005년 4월 25일부터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해어달산봉수대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봉수대를 둘러보며 공부했고, 동해어달산봉수대의 제대로 된 명칭 찾기부터 많은 부분에 힘을 쏟았지요. 처음 이름은 묵호산봉수대였고 그 다음은 월수산봉수대, 문헌 기록을 통해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진해 씨는 이제 유년 시절과는 다른 마음으로 어달산을 오른다. 언제나 튼튼한 가방을 메고 낫과 카메라, 쓰레기봉투를 지닌다. 잡초나 죽은 나무를 쳐내고, 돌 사이에 곱게 핀 꽃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꼬박 십칠 년 동안 이어진 정진해 씨의 문화재 사랑으로, 동해어달산봉수대는 이름을 찾았고 역사가 되살아났고 오롯한 가치가 꽃 피었다.

콘텐츠와 문화재의 조화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활동은 대체로 지킴이의 거주지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정진해 씨는 서울에서부터 이곳 강원도 동해시까지 먼 길을 오고 간다. 아무리 동해가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왕래가 쉽지 않은 걸음일 터.

“저는 문화재지킴이를 이곳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수산성도 한국전통문화진흥원과 연계해 단체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것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일 년에 평균 5~600개의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국 각지, 다양한 종류의 문화재를 만나다 보니 문화재를 콘텐츠화시키는 데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정진해 씨는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보호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방안에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문화재를 교육자료로 이용하여 90여 종의 자료를 만들었다. 책으로 90권이 나올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요근래에는 토종식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보러 다니려면 대체로 산을 올라야 하는데, 식물을 그렇게 많이 보게 됩니다. 관찰해 보면, 문화재 부근에는 우리나라 토종식물이 많습니다.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화재와 토종식물을 연관시켜 과거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미는 일입니다.”

하고 있는 일이 방대해지다 보니 정진해 씨 부부 내외가 약용식물, 식용식물을 각각 맡아 힘을 쏟고 있다. 문화재지킴이의 길은 산성에서부터 출발해 동해어달산봉수대를 만나 꽃을 피웠고, 그 발걸음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칠 줄 모른다. 전국에 있는 문화재를 촘촘히 잇는 정진해 씨만의 길이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통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보여줄 지, 오롯한 기대를 마음속에 품고 물안개가 찾아든 어달산을 내려왔다.  

글· 박세란   사진· 최재만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