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부설과 인천의 변화
1883년 개항 이전, 조선시대에는 산업 자체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어염산업(魚鹽産業, 어염은 어업과 제염을 이르는 말)이 기조를 이루는 인천의 경우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가 되어 온 제물포는 “10여개의 어가魚家가 점점이 산재한 구릉 일대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각국조계各國租界가 생긴 저지대에는 갈대가 울창하였으며 때로 월미도 동단이나 만석동해변의 어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이외에는 무인의 산야였고 인마人馬의 왕래나 선박의 출입도 없는 고요한 해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항이 되면서 1883년 9월 30일 일본거류지약조日本居留地約條가 조인되어 일본거류지가 설치되었을 때는 호수 33호, 인구 200명에 이르고 있었고, 1883년 말에는 일본인 수가 75호에 348명에 달하고 있어 이미 인천이 일본의 한국 진출을 위한 전략적 도시로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의 인천 진출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1895년 709호, 4,148명에 달해 당시의 한국인 4,728명과 거의 비등한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고, 경인철도의 개통과 인천역사의 준공과 더불어 1900년에서 1905년 사이의 일본인들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300% 이상이 증가된 반면 한국인은 9.8%의 증가로 일본인이 오히려 한국인보다 1,845명이나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 변하게 되었다. 일본거류지에서 행정권과 경찰권을 불법적으로 행사하던 일본은 철도부설에 따른 일본인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일본인의 거주지역을 일본조계日本租界에 국한하지 않고, 인천을 점차 일본 도시처럼 만들어 갔다. 철도부설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를 보다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다.

 1908년 4월 13일 통감부철도관리국에서 발행한 「한국철도선로안내」의 기록을 통해 당시 인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각 철도역사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류지역에 대한 지도와 거류민에 대한 내용 및 관아, 회사, 일본사원, 학교 등이 서술되어 있다. 또한 일본 관공서를 비롯한 상업회의소 및 금융기관, 병원 및 공원 등이 있다. 특히 일본의 신사가 3개, 일본사찰이 3개가 세워졌다는 것은 이미 인천이 일본인의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도시로 정착되었음을 나타내 준다.

인천을 거점으로 하던 이러한 침략성은 점차 경인선을 따라 수도 서울로 옮겨지게 된다. 1905년에서 1910년 사이에 일본인의 증가는 둔화되다가 1910년을 기점으로 해서 일본인의 숫자가 줄게 된다. 경부선?경의선의 개설에 따라 인천의 상권이 일본과 휠씬 가까운 부산에 의해 위축되었고, 인천에 있던 중요 상사, 금융기관, 관청, 언론기관 등이 서울로 이전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침략이 철도부설로 말미암아 인천에서 벗어나 철도역사를 중심으로 한국 내륙으로 깊숙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부선 부설과 부산의 변화
부산이란 지명은 15세기 전반까지 부산포富山浦라 하였으나,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부산포釜山浦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부산포는 원래 독립된 지방행정 단위의 군이나 현이 되지 못하고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동래는 오랫동안 현으로 내려오다가 명종 2년(1547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동래도호부 관내의 역으로는 휴산역과 소산역이 있었다. 그러나 한적하고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했던 부산에 1877년 1월 30일 부산구거류지약조釜山口居留地約條가 체결되면서 일본거류민의 보호관리 및 통상사무의 관장을 위해 관리관을 임명 주재케 하였다.

1880년 2월에 이르러 일본은 일본관리관청을 일본영사관으로 바꾸고 영사가 주재케 되었다. 일본영사는 거류지 내의 도로?구거 등 토목사업에만 그치지 않고 주민관리ㆍ상사ㆍ영업ㆍ징세ㆍ토지ㆍ가옥ㆍ건축ㆍ교육ㆍ경찰ㆍ위생ㆍ병원ㆍ선박 등 지방행정 일체를 관할하여 조계租界는 사실상 일본의 영토처럼 되어 버렸다. 또 1880년 7월 19일 시달된 「가옥건축가규칙」을 통해 200여 호밖에 안 되었던 개항 초기부터 장차의 거류민 증가를 예상하여 도로망을 계획하고 가옥의 구조를 규제함으로써 식민지적 가구를 형성해 갔다.

그들은 영사관 건물을 중심에 두고 그 둘레에 경찰서ㆍ은행ㆍ병원ㆍ상업회의소ㆍ전신국 등 공 공적 건물을 차례로 배치 건설하여 흡사 일본의 시가지를 방불케 하는 거류지를 형성해 갔다. 이리하여 항구 부산은 개항 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일본의 도시처럼 변했고 소수의 일인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도시로 되어 갔다. 이는 미국인 알렌(Allen), 영국인 외교관 아스톤(W.G. Aston)이나 왓터스(T. Watters) 등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1889년 한반도 각지를 정탐하고 돌아간 한 일본인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당시 부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삼항중三港中에 아국인이 많기로는 본항本港을 제일로 삼는다. 일상수용日常需用의 물품은 무엇이든 부자유를 느끼지 않으며 학교, 병원, 경찰서는 물론 요리점, 각종 도매상, 유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아국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영사관의 사무는 관청과 다름이 없고 거류민들 또한 영주永住의 목적을 세운 자가 많다고 한다. 오호嗚呼라 아국인 외국무역의 시초를 어느 곳으로 잡을 것인가. 이 부산항을 두고 다른 곳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부산조계 설치에 따른 한국 내의 성공적인 정착은 한국내륙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1880년대에 이미 일본은 철도부설을 위한 측량까지 실시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일본과의 연결이 편리한 각 항구도시를 개발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서울과 평양, 대구를 내륙의 식민통치의 거점으로 삼아 이들과의 연결을 위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의 개통과 평남선, 호남선, 경원선, 함경선 등 철도를 부설하게 된다. 이로써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내륙 중심의 전통적인 조선시대 도시구조는 일본과의 연결을 위한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항구 도시를 종착역으로 한 철도역사는 배를 통해 일본과의 연결을 위한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이 일본의 한국 침략을 위한 서곡이었다면 철도부설은 교통의 편리성과 거주의 안정성을 제공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이주를 촉진시킴과 동시에 한국 침략을 본격화하고 한국의 도시구조를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철도역사와 부제의 실시 그리고 도시구조의 변화 
철도를 통해 한국의 도시구조를 일본의 하부 구조로 바꾸려는 일본의 의도는 기본적인 철도부설이 완성되면서 실시한 1913년의 부제府制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때 부府로서 지정이 된 지역은 경성(서울), 인천, 군산, 목포, 대구, 부산, 마산, 평양, 진남포, 원산, 청진 등 12곳으로 철도부설 단계에서 부터 중요지점으로 선정된 도시였다. 이 12개의 부府 가운데 조선시대 전형적인 도시로서 기능을 하였던 곳은 서울, 대구, 평양 등 3곳 뿐이었고 나머지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일본의 강압적인 요구에 의해 개항된 항구와 어촌이었다.

조선조의 전통적인 도시로 널리 알려진 개성, 전주, 진주, 해주, 함흥 등은 부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일제에 의해 추진된 식민기지로서의 도시의 형성과 성장은 처음부터 한국의 전통적인 사회기반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 하에 이루어졌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또 정치?행정의 중심도시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의주에서 신의주로,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면서 전통적 도시구조체계가 해체되고, 일본 식민지의 하부 도시구조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지적 도시구조는 전통적인 내부지향적인 도시구조에서 외국과의 연결이 적극적으로 모색되는 외부 지향적 도시구조를 갖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부산과 인천을 중심으로 국제적 도시로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글ㅣ사진ㆍ김종헌 배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사진ㆍ문화재청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