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의 한국 미술
라크마(LACMA)의 한국 미술품 수집의 역사는 1966년에 시작되었으며 상대적으로 그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단기간에 해외에서 최고 수준의 소장품을 갖추게 된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5년에는 그레고리 핸더슨으로부터 아사카와 다쿠미가 수집한 850여 점의 연대와 가마터의 위치가 기록된 도편을 입수하여 해외 한국 도자 연구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2000년에는 지정 문화재급 유물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왔던 로버트 무어 씨의 소장품  250여 점을 일괄 구입하면서 해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한국 미술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다. 2009년 라크마는 이러한 뛰어난 소장품을 가지고 해외 최대 규모의 한국 미술실을 새로이 단장하였다. 약 175평 이상의 전시실에는 회화, 규방과 사랑방, 불교 미술, 도자 및 공예를 위한 전시 공간과 더불어 중앙에 특별 전시 공간이 설치되었으며 재개관시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관람객을 맞았다.

라크마 소장 18세기 <석가여래설법도>와 보존처리 프로젝트
1998년 라크마는 18세기 중반 제작된 불화 한 점을 구입하였다. 당시 이 그림은 심하게 낡고 훼손되어 있어 전시는 물론이고 말려있는 것을 펴는 것조차 불가능하여 보존처리가 시급히 필요하였다.  통상 <영산회상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가로가 4m, 세로가 3m 이상의 초대형 불화로써, 해외에 소장된 한국 불화 중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며 작품의 수준이 매우 높아 원형을 복구할 경우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닐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석가여래설법도>는 석가모니 부처가 연화 대좌에 앉아 보살 및 십대 제자, 사천왕과 천부중을 포함한 여러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영축산에서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화면은 수많은 권속들과 구름 등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으며 전형적인 18세기 불화의 양식을 보여준다. 그림 하단에는 이 그림이 건륭 20년인 영조 31년(1755년)에 그려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참여했던 화사들의 이름을 포함한 화기가 남아 있어 18세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라크마는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에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이 작품의 보존처리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였다.

마이클 고반 관장 및 전 라크마 한국미술 담당 김현정 학예관은 이 작품의 보존처리를 위하여 한국에서 보존처리 전문가를 초빙할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보존처리의 전 과정을 전시실에서 관람객에게 1년간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였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의 활동 중 보존처리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으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활동이며, 대중의 관심 또한 매우 높지만 직접 그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문 편이다. 이러한 보존처리 과정을 대중에게 상시 공개하는 프로젝트는 미국 내 미술관에서도 처음 있는 시도였다.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정우택 교수가 연구년 동안 라크마에 상주하며 학술 자문을 하였으며, 작품의 보존처리를 위해서는 지류 분야의 전문가인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소장 박지선 교수(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가 초빙되어 5명 이상의 연구소 직원과 함께 1년간 한국 미술실 내에서 작업을 계속하였다. 관람객들은 그림 표면의 오염된 물질들을 제거하고 낡은 배접지를 하나하나 핀셋으로 떼어내는 섬세하면서도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고, 1년간 작품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단계별로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관람객들은 보존처리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지 보존처리 전문가들도 서양 그림과 근본적으로 다른 ‘종이’에 그려진 동양 그림의 보존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보존처리 프로젝트는 단지 그 과정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국내 외의 관람객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5월 미 전역의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모여 라크마 소장 <석가여래설법도>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논의하는 심포지엄이 열렸으며, 이 심포지엄을 포함한 보존처리 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연내 국내에서 방영될 계획에 있다. 또한 올해 12월 11일에는 이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영산재 및 발우공양, 연등 행사 등을 거행할 예정이다. 영산재는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대중들에게 베푼 설법을 오늘에 다시금 재현하는 뜻을 담은 불교 의식의 하나로 라크마 소장 <석가여래설법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현재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는 이 행사는 해외에서 생소한 한국 불교 미술을 현지 관람객들이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한국 미술의 활성화
라크마는 이 일련의 프로젝트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면서 한국 미술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CJ와 같은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으며, 그 결과 라크마 소장 <석가여래설법도>는 해외에 소장된 한국 미술 작품 중 단일한 작품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글ㆍ이혜린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학예연구원   사진ㆍⓒ 2011 Museum Associates / LACMA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