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외인方外人의 삶, 벗에게 부친 진정眞情
현실에 비판적이지만,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 방외인이자 천재 시인 석주石洲 권필. 그는 체제와 지배질서의 모순에 반감을 가지고 항상 강렬한 비판의식을 드러내었다. 결국 그는 외척의 전횡專橫을 풍자한 궁류시宮柳詩 때문에 광해군의 미움을 사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권필은 19세에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하였지만, 기휘(忌諱, 이 뜻은 꺼리고 싫어함이나 나라의 금령을 이른다.)해야 할 한 글자로 인해 급제를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켰다. 벼슬이 아니면 생존은 물론 신분조차 지킬 수 없던 현실 때문에 그를 아끼는 벗들은 항상 그에게 벼슬길에 나서기를 권하였다.    

적막하고 쓸쓸히 마음 달랠 수 없을 때, 아우가 와서 그 편에 그대의 편지와 시를 전해주었습니다. 참말로 고맙습니다. 그대가 “이안눌?송구 등과 시 짓고 술을 마시고, 거문고 가락에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라고 하니, 벗들의 곁을 떠나 외로이 지내는 것이 슬픈 일인 줄 더욱 잘 알겠습니다. 또 예전에 받은 편지에서는 과거 시험에 응시하라고 깨우쳐주셨으니, 이는 저를 안다고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제가 세상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제 스스로 이미 익히 알고 있습니다. 어찌 비방하는 사람 때문에 초심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과거 시험장에서 붓을 잡고 먹을 놀려 글을 짓는다면 비방이 더욱 심해질 것임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허물을 받던 일은 고인도 면치 못했으니, 제가 어찌 한탄하겠습니까? 저는 고서 몇 권이 있어 스스로 즐길 만하고 시는 비록 서툴지만 나의 시름을 달랠 만하며, 집은 비록 가난하지만 막걸리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양 술잔을 잡고 시를 읊조리노라면 아득히 자득自得하여 늙는 줄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 비방하는 자들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대는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한천寒泉의 수간手簡에 답하다〔答寒泉手簡〕

허잠(許潛, 1540~1607)의 편지를 받고 보낸 권필의 답장이다. 당시 허잠은 바른 품행과 어진 성품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다. 이런 허잠이 과거 시험을 보지 않아 비방 받는 벗을 위하여 넌지시 과거 시험에 응시하라고 설득한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내었다. 권필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난은 달게 받으면 그만이지만, 벼슬길에 나가는 것은 삶의 목표로 정한 초심을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과거 시험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시험에 응하지 않는 것은 세상과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품을 지키는 것인데, 벗으로 생각하는 그대가 이를 몰라서야 되겠느냐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이어서 자신을 걱정하는 벗에게 그저 옛날 책과 시와 술만 있으면 세상은 살아갈 만하니 그리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한다. 이는 권필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과 맑은 영혼을 지켜내는 방식인 것이다. 

거두지 않았던 현실 비판의 시선과 견결한 삶
이안눌(李安訥, 1571~1636)도 권필에게 벼슬길을 권하는 시를 지어 보낸 바 있다. 권필의 벗들은 곤궁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과거 응시를 권하였다. 하지만 권필은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재야에서도 현실 문제와 사회 모순에도 결코 눈감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견결한 삶은 다른 편지에도 그대로 묻어 나온다.

저는 타고난 성품이 소탄疏誕하여 세상 사람들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대광실과 같은 큰 집을 만나면 반드시 침을 뱉고 지나갔으며, 누추한 거리에 초라한 집을 보면 반드시 배회하고 돌아보며 안빈낙도하면서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 사람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매양 고관대작으로 온 세상이 어질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종놈처럼 비루하게 여기고, 무뢰배 짓을 하는 임협任俠으로 향리에서 천대를 받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기뻐서 사귀고 싶어 하면서 “아마도 비가悲歌를 부르며 강개慷慨한 사람을 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세상에서 해괴한 짓을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 까닭이나 저도 스스로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에 세속과 부앙俯仰하고 싶지 않아 산야에 물러나 은둔하며 심성을 수양함으로써 고인이 말한 도道란 것을 구해 보려 했습니다. 

- 송홍보宋弘甫에게 답하는 서찰〔答宋弘甫書〕

벗인 송석조(宋碩祚, 1565~?)가 권필에게 세상에 쓰일 만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벼슬길에 나오지 않는 것을 책망하자, 자신의 속내를 밝힌 글이다. 권필은 바르지 못한 현실,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고대광실을 구하느니 차라리 공자의 제자 안연과 같이 안빈낙도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은 어질다고 추숭 받는 고관대작을 도리어 종놈처럼 비천하게 여기고, 재능이 있지만 무뢰배로 천대 받는 임협任俠을 보면 도리어 강개한 뜻을 지닌 인물로 추숭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이들과 사귀며 이상을 펼칠수 없는 시대를 위하여 비가를 부르며, 이들과 강개한 내면을 교감해 보고 싶다는 말로 현실 비판의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내 놓기까지 하였다. 사대부들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해괴한 것으로 비난할 지 모르나, 자신은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권필은 자신이 정한 인생의 목표를 지키기 위해,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산야에 은둔하며 참다운 도나 닦으면서 견결함을 유지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신분적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지키며, 자신이 정한 삶을 향해 정진하며 살겠노라는 강렬한 의지의 표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글ㆍ진재교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