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들의 비범함,
밀양백중놀이

밀양백중놀이는 농신제를 지내고 난 뒤 음복 끝에 농사를 잘 짓고 풍채 좋은 상머슴, 농사장원을 태울 작두말을 몰고 나와서 ‘말놀음’을 하다가 머슴장원이라 하여 뽑은 좌상을 돌매삿갓을 뒤집어 관처럼 씌우고 띠우장을 거꾸로 입고 양반모양 꾸며 일산대를 앞세우고 나발 불고 풍장을 치면서 온 세상을 비웃는 듯 작두말놀이를 한다. 좌상도 양반 행세를 해본 셈 이지만, 새롭게 고자양반, 째보양반, 벙어리양반이 등장하여 소작농이나 머슴들의 서러움을 흥겹게 풀어준다. 나도 양반이다. 어험 에이 이놈들,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기 집 양반 흉내를 내는 모습에 머슴과 정지꾼(부엌에서 일하는 여인)들이 나와 갖가지 병신춤으로 도포자락에 코를 닦고 풍자적으로 양반을 골린다. 우수꽝스럽고 해학적인 몸짓 속에 내면에는 양반들에 대한 반항의 몸짓과 절규의 몸부림이 잠재해 있다. 서민들의 인생이 ‘병신’일 수도 있다. 그들의 해학적인 몸부림이 곧 밀양백중놀이의 ‘병신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춤판에서 물러난 양반은 갓과 도포를 벗어 버리고 맨상투 범부차림으로 나타나 독특한 배김새로 범부 춤을 신나게 추며 놀다가 장구재비 앞에 배겨 내 모습이 이만하며 너희들과 어울려 놀 수가 있겠느냐 하며 고갯짓을 한다. 범부는 평범한 남자가 추는 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래는 ‘벌춤’이라 불러졌고 이는 밀양지방의 방언으로 ‘넓은 곳에서 아무렇게나 추며 더불어 노는 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북춤에서는 밀양사람들의 기질과 인심과 신명이 다듬어진다.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장단에 춤과 북가락이 함께 어우러져 생동감과 역동적인 힘이 넘쳐나며, 동작에
서는 보다 더욱 감성적인 기개가 나타난다. 밀양땅 세벌논매기를 하던 머슴들에게도 고된 땅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그 고달픔을 차라리 신명으로 풀어내는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 양반에게 맺혔던 원망은 백중놀이 마당에서의 병신춤의 해학으로 풀어내고, 어깨춤, 땀은 오북장단에 씻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밀양사람들의 기질은 언제보아도 가을걷이를 하는 타작마당처럼 넉넉하고 힘차고 경쾌하다.


밀양백중놀이의 특색과 놀이마당의 구성

놀이의 특색은 양반들에 대한 서민들의 풍자와 익살을 부려 시름을 달래는 과정이 갖가지 춤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색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양반춤’과 ‘병신춤’,‘범부춤’,‘북춤’등의 춤사위가 밀양특유의 덧배기사위로 짜여져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악기 외에 물장고(물버지기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린다)와 사장고(독뚜껑 두 개를 나무틀에 뒤를 맞대어 만든 것)등 특수 악기가 쓰여 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첫째마당(앞놀음)은 농신제 고사장을 깨끗이 하는 뜻으로 오방신장五方神將을 불러 일으켜 ‘잡귀막이’굿을 먼저하고, 모정자 노래를 해서 흥을 돋운 다음 덧배기춤으로 한바탕 놀다가 농신에 대한 고사풀이를 한다. 농신제는 놀이판 한가운데 저릅대麻竿로 만든 농신대農神竿를 세우고 동네사람들이 쌀이나 쿵, 돈, 축원문 등을 넣은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세 번 절하며 그 해의 풍년과 오복五福을 빈다.

둘째마당(놀음마당)에서는 농사 장원을 태울 작두말(지게목발로 만든 말)을 타고 나와서 ‘말놀음’을 하다가, 다시 양반을 꾸며서 작두말놀이를 한다. 머슴들끼리 노는 놀이판에 별안간 양반이 뛰어들어 머슴들을 물리치고 거드름을 피우면서‘양반춤’을 즐기고 있는데 머슴들과 정지꾼(부엌에서 일하는 여인)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 갖가지 ‘병신춤’으로 양반을 놀린다. 나중에는 양반이 물러나고 서민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춤으로 어울리면서 뒤로 물러났던 양반이 흥에 겨운 듯 범부凡夫차림으로 나타나 독특한 배김새로 ‘범부춤’을 추면서 신나게 논다.

셋째마당(신풀이)은 북재비들이 큰북을 메고 나와서 오북놀이를 한다 이 오북놀이는 ‘북춤’으로 이루어진다. 이 놀이는 오행五行과 오기五氣가 순조롭기를 빌며, 오체五體가 성하고 오곡五穀이 잘되고 오복五福을 누릴 수 있기를 비는 뜻이 담겨져 있다. 오북놀이에 이어 끝 놀음으로 모든 놀이꾼들이 한꺼번에 나와서 구경꾼들과 어울려 화동和同하는 춤으로 대단원을 이룬다.
   

“호미 씻고 병신춤 추어보세”, 풍자와 해학의 춤사위

백중놀이의 본 놀이로 작두말타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도포에 부채를 들고 갓을 쓴 양반이 뛰어들어 양반춤을 춘다.

늦은덧배기 장단에 주로 두 발이 매 박마다 제자리에서 위로 솟는 도듬채나 부채를 펴고 접는 춤사위와, 팔을 활용한 양팔 들기, 어깨춤으로 추어지며 매우 즉흥적이다. 춤의 특징은 방안에서 추어지던 한량무에 비하면 넓은 곳에서 마음껏 활달하게 추는 것으로, 사방에서 병신의 모습을 한 놀이꾼이 양반을 희롱하며 등장할 때 춤은 끝난다.

양반이 내쫓기듯 물러나고 자진 덧배기 가락에 맞춰 허튼춤 형태의 춤이 추어 지는데, 이 병신춤은 양반춤과는 대조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 구경꾼을 사로잡는다. ‘중풍쟁이’, ‘난쟁이’, ‘문둥이’, ‘곱추’, ‘배불뚝이’, ‘떨떨이’, ‘히줄래기’, ‘꼬부랑할미’, ‘절름발이’, ‘봉사’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서로 놀려대는 대목, 보호하며 의지하는 대목 등 구경꾼을 적극적으로 판에 끌어들이는 극적인 요소를 갖춘 춤이다. 또한 절도를 가진 야성적인 춤사위가 있었으니 바로 범부춤이다. 범부의 춤이라는 뜻 그대로 복색도 평범하나 왼쪽 바짓가랑이에다 중대님을 매고 있는 것이 좀 색다르다. 범부란 말에, 실제로 내포된 속뜻은 상놈이란 것이지만 양반과 상놈의 중간 신분인 중인 즉 아전을 일컫는다. 범부춤은 힘차고 절도가 있는 야성적인 춤이다. 넓은 놀이판이 좁다는 듯 큰 원을 그리면서 활개 춤을 추며 돌아다닌다. 이 춤은 마치 판소리의 고수처럼 장구재비를 바라보고 뛰면서 춤추고 어르면서 춤춘다. 그러다가 10미터 가량 전방에서 장구재비를 향해 머뭇거리다가 바고 꽂히듯 춤추며 뛰어나온다. 2, 3미터 앞에서 온몸을 앞으로 던지듯 하다가 우뚝 서는데 이어서 앞다리는 무릎을 약간 굽히고 뒷다리는 쭉 뻗어 눕히듯 하여 고개놀음과 어깨를 으쓱대면서 뽐내 보이고 한 손을 앞가슴에 붙이다가 또 한 손을 옆구리에 붙이다가 하면서 멋을 낸다. 오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오북춤은 풍물재비 중에서 다섯 북재비들이 나와 추는 춤이다. 오행과 오기가 순조롭기를 빌며 오체가 성하고 오곡이 잘돼 오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춤으로, 느린 덧배기장단에 허튼춤 형식의 춤을 한바탕 춘 후 자진덧배기 가락으로 바뀌면 밀양 북배김을 볼 수 있다. 이 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북배김은 춤꾼들이 원심을 향해 모여들어 서로 마주보며 힘차게 치는 대목으로 흥겹고 고조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명난 민요의 고장, 밀양密陽

민초들의 신명을 더하는 건 춤뿐만이 아니다.  “아이고 영감아 우리영감아 병자년 숭년에 콩지름갱죽 열아홉 그릇묵고 뒤뜰 논에 새보러가서 메띠기 뒷달가지 채이 죽은 영감아 원통하고 불쌍하다. 영감죽고 간 날 밤에 꿈을 꾸니 속곳미치 축축하네 아이고 영감아 원통하고 불쌍하다.” 구정의 논매기노래를 일명 ‘어산영’ 혹은 ‘얼사용’이라 하는데, 밀양백중놀이에서 부르는 노래 즉, 모심기 노래나 논매기노래는 경상도 특유의 메나리 토리로 불러진다. 뿐만 아니라 “아리당닥궁 쓰리당닥궁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밀양아리랑은 지게목발 장단으로 놀아난다. 밀양아리랑은 아주 명랑하고 템포가 빠르고, 그리고 멜로디의 특성이 8도로 껑충 뛴다는 것이 다른 아리랑에 없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밀양아리랑의 그 독특한 가락과 장단은 어느 곳의 아리랑과도 정맥 되지 않는 듯하다. 소리의 근원을 찾는다는 것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왔는지 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 보디 더 어렵다. 그러나 밀양사람들에 입과 입을 그치는 동안 노래가 되었으리라. 소리는 삶이 있는 어디론 듯 흘러가서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법, 밀양아리랑도 밀양사람들의 숨결 같고 맥박 같은 것, 그래서 영원히 사라 질 수 없는 노래다. 어떤 푸념 어떤 한숨이든지 가슴에 맺혀있는 어떤 것이든 가난한 신명으로 풀어내는 소리다. 밀양의 젊은이들은 밀양아리랑 가락에 통일의 염원을 담고 이로써 밀양아리랑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역사의 고개를 넘게 될 것이다.  


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