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직한 입술, 매서운 눈매..
금방이라도 바람에 흔들릴 것 같은 수염 자신의 신념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을 것 같은 정직한 선비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세심한 붓터치에 의해 한 선비의 삶과 정신, 그리고 자부심이 초상화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한·중·일 동아시아중에서도 독특한 화풍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초상화 특히 조선시대는 ‘초상화의 왕국’으로 불릴만큼 많은 초상화가 제작됐다. 초상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왕의 초상인 ‘어진’과 국가가 큰 변란을 수습한 공신에게 내렸던 공신상이 있는데. 어진은 화재와 전쟁으로 원본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공신상이 한국 초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서원이나 주로 가묘에 집안에서 조상의 모습과 뜻을 기억하기 위해 모시는 초상화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후기의 일반 사대부상은 어진이나 공신상의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다양한 화폭을 자랑한다. 일반사대부 초상화가 활성화 된 것은 서원이 생기기 시작한 16세기부터였다. 서원의 서원봉안 초상화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경북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학자상의 초상화를 만드는 전통이 일어나고 17세기에는 하나의 정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초상화는 다채로워지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조선 후기 초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훈염법이다. 훈염법은 얼굴의 움푹한 부분에 붓질을 많이해 어두운 느낌을 주고,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하여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런 훈염범은 국보 240호로 지정된 ‘윤두서 자화상’에 잘 나타나있다.
초상화의 백미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은 대담하면서도 정교한 묘사와 강렬한 정신세계 표출이 가히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타오르는 듯한 수염, 정면을 노려보는 매서운 눈매가 생생하다 특히 훈염법으로 얼굴의 입체감을 강조해서 더욱 사실감 있게 느껴진다. 17세기말 18세기 초엽의 초상화의 한 전형을 이루는 것이 약천 남구만상! 원래 여러 본이 있었지만 충청도 해미의 영당과 동해시 심곡마을에 봉안했던 영정을 실전되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본과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하고 있는 8대손 종손 남춘희가 관리하고 있는 3본이 있다. 용인에는 전신교의좌상본과 반신상이 함께 보관돼 있어서 초상화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본은 관복을 착용한 전시교의좌상으로 정면상이다. 남구만상은 편필법으로 제작됐는데.. 얼굴의 눈·코·입 등이 도드라진 부분은 엷게, 움푹 들어간 부분은 짙게 색칠됐다. 때로는 가늘게 선만을 겹쳐 잇대어 그리고 때로는 동일한 안면이지만 슬슬 문지르면서 제각기 다른 미묘한 손놀림이 구사돼 있으며, 심지어는 검버섯의 형태도 마치 살갗 속에 박혀 있는 것처럼 밀착되어 표현되어 있다. 18세기 초의 양식을 보여주는 남구만 초상은 정면상의 자연스러운 표현, 입체감을 사실적으로 강조하는 기법이 나타난다 18세기 중반의 초상화중 공신도상들은 동일한 표현들로 시대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옆 얼굴이 많이 보이게 그린 좌안 칠분면의 전신좌상으로 공수자세에서 벗어난 팔의 위치는 비교적 자연스럽다 역시 배경 묘사가 없고 자리도 깔려있지 않아 그려진 대상에 집중하게 한다 얼굴 표현은 음영법 사용에 보다 주력하였으며 옷 주름의 굴곡은 선으로 표시한 후 그 부위를 진하게 물들여 어둡게 표현하였는데 이 점은 당시 화사들에게 명암의 개념이 깊이 침투하였음을 알려준다 윤급 초상 역시 당시의 시대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얼굴 묘사는 자연스럽게 입체감을 살렸으며 오른쪽 턱의 사마귀, 눈 주위의 여러 개의 점과 검버섯 등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시원한 콧날 묘사가 돋보인다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그려낸 것이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이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초상화에 사실성이 더욱 강조된다. 70세 때, 정조가 '초상화를 그리라'는 전교를 내리면서 제작됐던 강세황의 자화상. 얼굴의 살결과 수염의 사실적인 정밀묘사와 눈동자의 기운 생동하는 표현이 압권이다.‘터럭 한 올이라도 실물과 닮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이 된다.’단지, 외형묘사에 그치지 않고 대상의 인격, 기질, 품위를 드러내야한다는 ‘전신’론을 기본으로 삼는다. 조선 후기 초상화의 또 다른 대표작인 도암 이재 선생과 그의 손자인 이채의 초상화에서도 사실성이 돋보인다. 정면을 응시하는 이재의 눈동자는 엄격하면서도 당당하며 옷주름 표현과 얼굴의 육리문 등은 사실성의 극치를 추구하면서 정신적인 기품까지 드러내어 전신에 성공하고 있다 조선후기 초상화의 정직한 사실성은 대상의 묘사, 전신이라는 제작원칙에 온전히 부합하여 인물자체를 드러내 보일 뿐만아니라 초상화를 보는 이들에게는 귀중한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