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
서울의 구석구석 숨겨진 보물을 찾아가는 우리 일행은 먼저 환구단(사적 제157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조선호텔 경내에 자리한 이곳은 하늘에 제사 드리던 제천단(祭天壇)으로,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던 곳이라 한다.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 대해 너무나 몰랐던 우리는 전우영(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연달아 ‘아,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런 반응을 보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듯 전우영 교수는 소공동의 유래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이어간다.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집이 있던 곳이어서 ‘소공동’이라 했다는. 함께 손뼉 치며 감탄하며 설명을 듣는 동안 서로서로 어색했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어느새 친구처럼 어울려 걷고 있다.
서울시청 앞을 가로질러 덕수궁 대한문 앞에 당도한다. 여기서부터 ‘정동길’이라고 불리는 덕수궁 돌담길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 길을 걸으면 꼭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는 하도 유명해서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전우영 교수의 설명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이 길 끝에 자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남학생과 여학생 한 쌍이 데이트하다가 갈림길에서 서로 헤어져 각자의 학교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의 시립미술관 자리가 원래 재판소(가정법원) 자리여서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도 한다. 여기저기서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다.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 이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듯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정동(貞洞)은 원래 정릉(貞陵), 즉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의 능이 있던 곳. 태조는 신덕왕후가 죽자 사대문 안에는 능을 쓸 수 없다는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며 현재의 미 대사관저 인근에다 능을 조성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한다.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인 여덟째 왕자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던 태종은 즉위하자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하고 무덤 또한 능에서 묘로 격하시킨 뒤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장한다. 그리고 석물은 뽑아내어 청계천 광교 공사에 갖다 쓰게 한다. 이후 이곳을 정릉동이라 부르다 이를 줄여 정동이라 불렀다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하, 그렇구나!’ 또다시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인다.
주한 미 대사관저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문 때문에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건축미를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세운 정동제일교회,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 아관파천의 현장인 구 러시아공사관 등을 지난다. 한국의 아픈 근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을 보면서 마치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던 대한제국 당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와 있는 듯하다.
전우영 교수를 비롯해 (사)문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운영위원 그리고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한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간간이 뿌린 빗방울은 이 시간을 질투해서 내린 하늘의 심술이었던 듯. 일행들과 헤어져 돌아 나오는 정동길에서 추억 한 줌을 줍는다. 가끔은 이렇게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줄 온전히 나’만을 위한 행복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진경 기자
출처:문화유산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