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연합뉴스) 김대호 특파원 =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광복을 맞이했던 중국 충칭(重慶)시의 마지막 임시정부청사.
망국의 설움을 딛고 오로지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들의 넋이 서려있는 이 곳이 후손들의 발길이 뜸해지며 잊혀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9일 방문한 충칭 임정청사는 정부의 홍보책자에서 보았던 웅장하고 깔끔한 외관과 달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충칭시 자링(嘉凌)강과 창(長)강 사이의 시중심가에 위치한 충칭 임정청사는 주변의 대형 건물들로 인해 크게 위축돼 보였다.
또 연화지(蓮花池)의 큰 도로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50~60m를 걸어 들어가야 나오는데 주변 안내시설이 부족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문객들이 없다는 점이 큰 아쉬움이었다.
임정청사는 평소 중국교포 출신 부관장과 중국인 경비, 안내원 등이 상주하는 것을 제외하면 방문객은 거의 없다.
아시아나항공이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인천-충칭 직항편을 최근 재개한 덕에 1주일에 40~50명 가량의 한국 관광객이 방문하는 정도다.
연간 한국인 방문객은 아시아나항공의 단체 여행객 2천명 가량이 전부인 셈이다.
상하이(上海)와 항저우(杭州) 등 다른 지역의 임정청사들이 많은 관심을 받는 것과도 크게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가장 크고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충칭 임정청사가 이렇게 외면받게 된 것은 지리적, 구조적인 문제들 때문으로 파악됐다.
먼저 지리적으로 한국과 너무 멀다.
한국 인천에서 충칭까지 비행기로 4시간 가량이 걸리며 중국 상하이 등에서 한번 비행기를 갈아타게 되면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교민들도 거의 없고 기업진출도 아직 많지 않아 관심을 받기 힘든 것이다.
또 충칭 임정청사가 한국의 재산이 아니라 중국의 문물로 지정돼 중국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아쉬운 점이다.
중국 정부가 매년 자체 예산을 투입해 관리해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직접 당사자인 한국 만큼 많은 정성을 쏟기는 힘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독립기념관 등이 중심이 돼 가끔 임정청사의 시설물 개보수와 전시물 교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인근에 청두(成都) 총영사관이 있지만 충칭 임정청사에 대한 관리의무가 없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다.
충칭 임정청사를 방문하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중국 정부에 대한 고마움이다.
임정청사가 개발열풍으로 철거위기에 놓였던 1995년 한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청사를 복원하는데 동의, 복원비의 절반을 제공했고 지금까지 관리를 맡아주고 있다.
임정청사 관리에 들어가는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충칭시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충칭시는 임정청사 관리로 인해 한국과 우호관계를 강화한다는 의미 외에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도 임정청사를 잘 관리해 주고 있다.
충칭시는 자체 경비로 임정청사 관련 사료를 찾는데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선주 충칭 임정청사 부관장은 "충칭시 문화국에서 매년 경비를 지원해줘 임정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평소 관람객들이 없을 때는 자료수집 업무로 바쁘다"고 말했다.
충칭시 임정청사는 앞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태로 무관심 속에 조금씩 잊혀져 가든지 한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항일투쟁과 조국 광복의 성지로 거듭나든지 둘중의 하나가 될 전망이다.
특히 충칭은 중국의 중서부대개발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사판으로 변해 매일 자고 일어나면 마천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어 임정청사의 운명도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의 삼성, LG, SK, 롯데, 현대, LS, 한국타이어,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충칭으로 중국사업의 거점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의 대기업들이 충칭에 진출하면 주재원들을 중심으로 교민이 늘어나고 한국의 위상도 높아져 임정청사에 대한 관심도 제고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하루 빨리 충칭으로 진출해 만리타향으로 내몰리면서도 독립된 조국의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선열들의 고난과 희생을 보상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daeho@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