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현정 기자 = 일본이 1994년 자국에서 도난 된 고려시대 문화재가 한국으로 밀반입 됐다며 지난달 말 재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달 말 조선왕실의궤 등 1205권의 한국도서를 반환하는 내용의 한·일도서협정이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할 즈음 한국대사관에 밀반입 문화재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했다.
일본이 재조사를 요청한 문화재는 나가사키현 소재 사찰인 안코쿠지(安國寺) 소유의 '고려판 대반야바라밀다경'과 효고현의 사찰 카쿠린지(鶴林寺)가 소유했던 '아미타 삼존도 불화'다.
당시 일본은 1995년 한국에서 국보 284호로 지정된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이 1년 전 도난 당한 고려판 대반야바라밀다경과 유사하다며 외무성을 통해 우리측에 확인을 요청해왔고, 당시 문화재 당국은 국보 284호와 일본이 도난 당한 고려판 대반야바라밀다경은 관계가 없다고 통보했다.
아미타 삼존도 불화 도난 사건은 2002년 발생했다. 당시 아미타 삼존도 불화를 훔친 절도범 4명 중 2명은 일본에서 검거됐고 나머지 2명은 한국에서 체포됐지만 불화는 이미 중개상에 넘어간 뒤였다.
일본 문화재청은 2년 뒤인 2004년 우리측에 불화가 한국으로 건너간 것 같으니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소재를 파악하진 못했다.
일본 외무성이 1994년과 2004년 각각 마무리 된 사안을 다시 꺼내 재조사를 요청한 것은 일본 자민당의 요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기로 하면서 자국에서 도난 당한 문화재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한 것은 일본에서 사라진 문화재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 때 불법적으로 가져간 조선왕실의궤 등 한국도서 반환과 밀반입 문화재 문제는 별개의 산안"이라며 "문화재 도난이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고, 도서협정은 정부간의 문제니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네스코가 정한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은 조선왕실의궤와 같이 외국 군대에 의해 강제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의 소유권 양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국가차원에서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에 따라 밀반입된 문화재도 외교관청을 통해 해당국에 반환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선의의 매수인이나 그 문화재의 정당한 권리자에게 공정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도난 당한 문화재가 설령 한국에 있더라도 이를 반환받으려면 일본은 현 소유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일본이 고려판 대반야바라밀다경과 유사하다고 주장한 국보 284호는 현재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도 도난된 문화재 문제는 개인간 문제라는 점을 이해한다"며 "다만 (자민당의 요구 등)여러가지 사정이 있으니 요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도서협정은 10일 참의원 외무방위위원회 심의를 거쳐 18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조약의 경우 중의원에서 가결되면 참의원에서 부결되어도 발효되기 때문에 사실상 비준된 것이나 다름 없다.
이에 따라 일본은 올해 상반기 내에 한국으로 도서를 인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