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이 키운 사람

요사이 눈이 주춤하여 봄이 오는가 하였더니, 도봉산 산행을 앞두고 밤새 몰래 내린 눈이 발등까지 쌓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난 눈은 도봉산을 아름답게 물들일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도봉산을 향하는 마음에 설렘이 가득했다. 도봉산과 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에 얼마나 친숙할까 만은 불과 2주 만에 찾은 도봉산은 그에게 또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산은 올 때 마다 새로운 모습을 내게 보여줘요. 올 때 마다 새로운 것이 산을 찾는 매력이지요. 도봉산에서 3살 때부터 살았어요. 내게는 어머니와 같은 산이죠. 어릴 적에는 눈이 정말 많이 왔어요. 하지만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도봉산을 누볐죠.”

도봉산을 오르는 등산 코스들은 여럿이 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망월사 가는 길이다. 이 길의 시작은 ‘엄홍길 전시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엄홍길 전시관’ 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도봉산을 오르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 ‘엄홍길 전시관’에서 함께 산에 오를 사람들을 기다리고 만나고는 한다. 이곳은 도봉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다. 게다가 그들이 좋아하는 엄홍길 대장의 자취를 만나며 저 밑에 있던 뜨거운 도전정신과 열정을 다시 느끼게 되니 그 전시관은 뜻 깊은 베이스캠프가 된다.

산에 오를 준비를 단단히 한 그는 이제 망월사 가는 길에 발을 올려놓는다. 도봉산의 나무며 바람이며,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이며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는 모양들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도봉산의 구석구석을 손금 보듯이 볼 수 있어요. 이곳은 어린 시절 저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지요. 진달래며 버찌 등을 따먹으며 지내기도 했으니 좋은 간식 제공지이기도 했지요. ”

한참 발을 바삐 움직여 산의 꼭대기로 향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한 나무 곁에 선다.

“이 나무가 세월을 타고 얼마나 자랐는지 몰라요. 아버지와 함께 심은 나무였는데 그 때는 아주 작은 나무였죠. 하지만 지금은 두 팔로 안고도 모자랄 정도로 많이 자랐어요. 그만큼 세월이 많이 지난 것이겠지요? 산의 모든 것이 어린 시절 기억되는 모습에서 많이 변했어요.”

그가 이렇게 인생의 여러 고비들을 넘기며 인간으로써 오르기 힘든 세계의 산들을 오르는 동안 어느덧 중년이 된 것처럼 그의 원도봉의 나무들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심었던 나무를 꼭 안고는 지난 세월을 느껴보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다가 보니 오른쪽으로 가파른 암벽이 버티고 있었다. 두꺼비 형상을 한 그 암벽은 그가 중학교시절 처음으로 암벽등반을 배웠던 곳이었다. 어느 곳 하나 그와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는 이 도봉산은 그를 만들어낸 어머니임이 틀림없었다.

도봉산이 품은 절                

서서히 나무위에 달린 구름이 자취를 감추고 파란 하늘이 그 넓이를 더해가니 저 멀리 망월사 영선전의 모습이 그림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자운봉과 선인봉이 닿을 듯 하던 영선전의 모습은 눈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망월사 측문을 향하는 계단을 한걸음 내딛고 산의 꼭대기를 바라보고, 또 한걸음 내딛고 산을 바라보니 과연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그 모습이 더욱더 아름답다. 망월사 측문에 서서 그는 정면에서 밝게 비춰오는 태양을 가슴으로 받았다.

“이것이 자연의 기운이라는 것이죠. 이곳에 가만히 서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이 망월사의 전경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망월사 측문에 서서 내려다본 망월사의 경내와 산자락은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아름다웠다. 그 높은 곳에 이 절을 어떻게 지었을까. 결코 작지 않은 절의 규모에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렸을 때 보다 증축이 된 모습이지만 망월사에 대한 추억이 곳곳에 서려있어요. 낙가보전 뒤편에 샘이 있는데 그곳에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깨끗한 물이 꼭 절에 필요한 만큼 나왔지요. 그 맛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참 신기했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이곳에서 제가 16좌를 등반할 때 마다 기도를 올리셨어요.”

높은 산세, 돌로 이루어진 돌산, 이 높고 깊은 산속에 그가 살았고, 그의 가족이 살았다. 망월사에서 키운 불심은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도봉산과 함께 키운 아들을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셨다. 세계 최초로 16좌 등정에 성공한 아들 뒤에는 어머니가 계셨던 것이다.

이제 저 멀리 그 아름다운 풍채를 뽐냈던 영산전을 향해 그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부지런한 스님들이 벌써 가파른 계단들 위의 눈을 다 쓸어 놓으셨다. 영산전에는 결재하는 선원도 없었지만 그는 어느덧 말을 줄이고 진지한 모습으로 그곳에 올랐다. 영산전에서 내려다보는 망월사 경내와 산자락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는 조용히 두툼한 등산화를 벗고 그를 기다렸던 부처님 앞에 배례를 올린다.

그가 품은 새로운 꿈

올라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 가빴던 호흡들이 망월사에 다 내려놓아지고 평정을 되찾고는 이제 다시 돌아간다. 16좌를 완성한 그는 이제 더 이상 갈 산이 없지만 인생의 또 다른 16좌를 오를 꿈을 품고 있다. 한결 여유롭게 내려오는 하산 길에서 그의 꿈 이야기가 펼쳐진다.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고 있는 그는 이 재단을 통해 자연을 등지고 컴퓨터와 기계 속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에게 도전과 모험정신을 키워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원들의 남은 가족과 네팔 히말라야와 삶을 같이 하는 셰르파 유족들을 후원하고자 한다. 그의 인생 16좌 8,000km 등정은 이제 시작이다.   
 

도봉산에서 3살부터 40살까지 살며 자연스럽게 산과 하나가 되었던 그는 도봉산 두꺼비 바위에서 암벽등반을 배우고 고등학교시절 산악인의 꿈을 본격적으로 품고 그 꿈을 이루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1988년부터 히말라야 8,000m이상의 고봉 등장을 시작해 에베레스트, K2, 칸첸중가, 로체, 얄룽캉, 마칼루, 로체샬, 초오유,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낭가파르밧, 안나푸르나, 가셔브롬1, 브로드피크, 가셔브롬2, 시샤팡마 16좌를 오른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극한 상황에서 생사를 던진 도전과 모험정신을 보여주는 인물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도전과 모험정신의 표본이 되었으며 이제 엄홍길휴먼재단을 통해 도전과 모험, 인간 사랑의 정신을 전하는 꿈을 꾸고 있다.

글·김진희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