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언급한 산불화재

산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산불 피해가 심각하여 경전 곳곳에 언급되어 있다. 당시 화재는 전쟁보다 무서운 살생으로 간주되어 산과 들에 함부로 불을 놓지 말라는 계율까지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본생경>에는 붓다의 전생이었던 앵무새가 산불로 많은 생명들이 죽어나가자 연못을 찾아가 자신의 날개깃을 물에 적셔서 불을 껐다는 내용까지 있다.

우리의 전통사찰은 거의 산중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산중 사찰은 산불에 영순위로 노출되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산불의 최대 피해자였다. 어느 절을 막론하고 과거사를 들추어보면 화마를 당하지 않은 절이 없다. 길지도 않은 역사에 십수 차례나 불이 난 사찰도 많다. 지난 2005년 4월에 일어난 양양 산불로 크게 피해를 입은 낙산사만 해도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11차례나 불에 탔다.

사찰에 화재가 잦다보니 화재 관련 벽사문화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용마루 끝에 장식한 치미와 용두, 물고기 형상을 한 목어와 풍경, 그리고 연꽃 그림, 지붕의 ‘海’자 망와 등등 물과 관계있는 것들을 화재 벽사물로 장식했다. 그런가하면 통도사에는 전각의 모서리에 소금단지를 얹고, 해인사에서는 땅에 소금단지를 묻어둔다. 소금은 바다를 상징하기 때문에 화마가 덤벼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찰 화재의 생태적 요인 

사찰 산불이 한번 일어났다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대형화되는 것은 사찰이 경사지에 위치하고, 대개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진화인력을 동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찰의 전각들이 거의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축물이라는 점도 큰 요인이다. 또 근래에 들어서는 사찰 주변 소방도로 미비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피해를 더 키운 경우도 없지 않다. 주5일제와 국립공원 무료입장 등으로 산과 절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간접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사찰 산불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해야 할 대목은 우리 사찰림의 식생이 산불을 불러오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사찰 주변은 소나무가 상대적으로 많다. 낙산사 화재의 가장 큰 생태 요인도 병풍처럼 둘러싼 소나무 단순림에 있었다는 점이다. 소나무는 재질적으로 불에 약하며, 활엽수에 비해 마르며, 송진樹脂이 많고 아랫 가지가 항상 불에 타기 쉽게 말라있다. 거기다가 사철 푸른 솔잎은 불꽃을 내며 타는 특성이 있다.

이에 비해 굴참나무나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 종류들은 산불 위험이 높은 시기에 낙엽이 져서 나목裸木 상태로 있기 때문에 나무줄기나 가지로 불이 옮겨 붙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 참나무류들의 수피가 두꺼운 코르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화재에 강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이 밖에 음수나 친수성 나무인 고로쇠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황철나무, 고광나무, 음나무 등도 비교적 화재에 강하다.
 

수행자의 녹색지혜, 사찰 방화수림대

불교는 숲의 종교이다. 붓다의 전생애가 숲과 함께 하였고, 그의 제자들 역시 2천 5백 년 동안 숲에 머물며 수행해 왔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수행자들은 산림에 대해 폭넓은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조선의 산림정책인 금산禁山과 봉산封山정책이 산중의 수행자들에 의해 집행되고, 현존하는 사찰림이 다른 임야에 비해 비교적 튼실하게 보전되어 온 것도 그러한 역사성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현재 일부 사찰에 보전되고 있는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도 훌륭한 징표이다.

방화수림대는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이 경내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거나, 사찰에서 난 불이 산림으로 비화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숲과 사찰 사이에 조성한 완충공간을 말한다. 1차적으로 사찰 전각 뒤쪽 15~20m 공간의 숲을 제거하여 화소火巢를 조성하는 것이다. 즉, 인화물질인 초목을 제거하여 그 공간에 방화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불길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화소는 조선시대 능원陵園에서도 활용했던 방화책이다. 그리고, 2차적으로 화소 위쪽에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를 심어 제2의 방화벽을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방화수림대를 일명 내화수림대耐火樹林帶라고도 한다. 현재 내화수림대는 고창 선운사를 비롯하여 남도의 여러 사찰에서 옛 모습이 남아있고, 또 새롭게 조성된 곳도 있다.

선운사 부도전에서부터 경내 대웅전 뒤쪽 산자락은 천연기념물 제184호인 동백나무숲이 숲띠를 이루고 있다. 이 숲띠는 옛 수행자들이 방화를 목적으로 인공으로 조림한 군락이다. 동백과 함께 내화성이 있는 비자나무도 간간이 섞여 있고, 숲바닥에도 내화성을 가진 차나무, 송악, 맥문동 등이 자라고 있다.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 뒤에도 내화수림대가 조성되어 있다. 화엄사의 법전인 각황전을 산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산자락의 초목들을 제거한 뒤 동백나무를 심고 위쪽으로 참나무를 심었다. 참나무 군락 위로는 자생의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화재에 약한 소나무숲을 위쪽으로 밀어낸 것이다.

나주 불회사 내화수림대 역시 훌륭하다. 천왕문과 시운당(요사채) 중간 쯤에 서서 대웅전 뒷숲을 보면 숲의 빛깔만으로도 내화수림대가 확연히 구분된다.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며 잔디,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 소나무, 혼효림이 층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화띠숲이다.

사천 다솔사는 차나무로 내화숲띠를 이루었다. 남부지방 사찰은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새마을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들여온 편백과 삼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늘 푸른 나무인데도 예상 외로 이들 나무는 화재에 약한 축에 든다. 그래서 다솔사에서는 이격공간인 화소에다 차밭을 대거 조성하였다.
 

불에 강한 나무들

불에 강한 나무로는 우선 난대수종을 꼽는다. 이들 나무는 대개 고온다습한 남쪽지방을 고향으로 하지만, 일부 나무는 해양성기후를 보이는 충청도 서해안과 강원도 동해안까지 생육이 가능하다. 난대수종들은 가지와 잎에 수분함량이 많고, 두꺼운 가죽질이라 불에 잘 타지 않는다.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아왜나무(산호수), 참식나무, 광나무, 사스레피나무, 호랑가시나무, 굴거리나무, 붓순나무, 후피향나무, 가시나무 종류 등을 꼽을 수 있다. 동백나무와 함께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아왜나무는 불이 났을 때 줄기나 가지에서 거품이 나와서 차단막을 만들어 준다. 일본에서는  거품나무(아다부끼)라고 부른다.

중부지방에서는 은행나무나 사철나무를 심어서 내화띠숲을 이룰 수도 있다.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불을 먹는다 하여 ‘화두목’이라고 불렀다. 알려진 바로는 불이 나면 줄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여러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내화성으로 1천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키 작은 관목처럼 키워서 내화수림대로 활용한다.  

굴참나무처럼 줄기가 코르크질로 덮혀있는 참나무 종류도 다른 활엽수에 비해 내화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엽송이라고 불리는 일본잎갈나무도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이이면서도 수지가 적고 봄철에 비교적 일찍 물이 오르기 때문에 불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내화수종의 또 다른 면은 산불 이후에 다른 나무들 보다 회생력이 강하다는 점이 있다.

내화성이 강한 나무를 심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그냥 빈 공간으로 두어도 훌륭한 방화벽 역할을 한다.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해 근래들어 중부지역 사찰들이 속속 이격공간을 만들어 방화수림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사찰주변에 방화수림대를 조성하는 데에도 제도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없지 않다. 국립공원의 경우는 관리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맡고 있기 때문에 사찰에서 방화수림대를 조성하거나 소방도로를 내려면 관리공단측과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사찰화재는 단순한 건물 화재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유산의 소멸을 의미한다. 설령 소실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생태를 복원한다고 해도 이미 그 문화적 진가와 역사성은 되살릴 수가 없다. 사찰화재 방책을 국책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글·사진 |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환경부 국립공원위원    
사진제공·다솔사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