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궁박물관에서 무형문화재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참석자는 발표자와 토론자, 진행요원을 제외하면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적었다. 이런 ‘썰렁한 모습’을 보면서 무형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무척 차갑다는 것을 느꼈다.
작년에 우리나라 무형문화재인 ‘가곡’, ‘대목장’, ‘매사냥’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를 비롯한 11건의 세계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무형문화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국내에선 전수받을 후계자가 없어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25개 종목 중 36개는 보유자가 없거나 전수받을 사람조차 없다. 보유자가 아예 없는 종목도 17개나 된다. 특히 3개 종목은 보유자와 전수자가 없어 ‘맥’이 끊겼다.무형문화재 전수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도 한몫을 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펼치는 운동인 ‘1문화재 1지킴이’에서 여실히 들어난다. 이 운동에는 3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8개 기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이 유형문화재 보존 운동에만 치우쳐 있다. ‘청소년 문화재 지킴이’ 운동도 마찬가지다. 국보나 보물, 사적 문화재 등의 유형문화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는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지 ‘보이지 않는 것’엔 관심이 없다. 무형문화재를 올바르게 전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이다. 이를 위해 우선 관련 부처와 대학 간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전수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고 대학은 정규 및 비정규 프로그램 속에서 전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복잡한 인정체계(전수장학생→이수자→전수교육조교→보유자)도 단순화해야 한다. 현 체계는 전수장학생으로 입문한 뒤 40년이 지나야 보유자인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다. 인정체계를 단순화하고 소요기간도 최소화해야 한다. 세미나가 끝나고 참석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필자는 연세가 지긋한 중요무형문화재 47호인 궁시장(弓矢匠) 한 분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전통기법으로 4대째 화살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식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 일을 배우려 하질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아들을 ‘억지로’ 주말마다 불러 화살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날 궁시장의 괴로워하는 표정에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가 처한 ‘절박한 운명’을 읽을 수 있었다. <백형찬 | 서울예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