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의 장자로, 여덟 살(세종 30년)에 세손으로 책봉됩니다. 연로한 할아버지 세종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함과 동시에, 병약한 세자(훗날의 문종)의 치세 또한 그리 길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단종을 세손으로 책봉한 직후 세종은 이개, 하위지, 유성원,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의 집현전 학자들을 불러 손자의 앞날을 부탁합니다. 이 중 신숙주는 훗날 세조의 편에 서서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이 되니,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입니다. 보통 어린 왕들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렴청정이라는 비상장치가 존재했으나 단종에게는 이마저 여의치 못했습니다. 할머니 소헌왕후는 할아버지 세종보다도 앞서 승하한 지 오래였고,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직후 산욕열로 3일 만에 승하했으니 말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단종의 혈기왕성한 삼촌들은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키우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세종의 판단대로 문종의 치세는 2년 3개월에 불과했고, 단종은 부왕이 승하하자마자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단종 어진(상상도)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즉위한 지 불과 1년여 남짓한 시기였던 1453년 10월, 삼촌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납니다. 이후 1456년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첨지중추원사 어득해가 이끄는 군사 50명의 호송을 받으며 청령포로 유배됩니다. 단종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유배생활을 했는데,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는 남몰래 어소(임금이 계시는 곳)를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세조는 단종을 사사(賜死)하여 동강에 던져버리고, 그 시신을 묻는 자는 삼족을 멸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런 명을 내리니 누구 하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려 나서는 이가 없었으나, 엄흥도가 손수 관을 준비해 단종의 장례를 치르고 사직했습니다.

물안개 자욱한 청령포. 2008년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심정연

 청령포는 위와 같이 자주 물안개로 뒤덮이는데, 일부 주민들은 단종의 한 맺힌 옥루(玉淚)가 물안개로 서리는 것이라 여깁니다. 청령포에 도착해 자갈밭을 가로지르면 짙은 수림(樹林)이 등장합니다. 샛길로 가다보면 승정원일기의 기록대로 복원된 단종어소가 보이는데, 굵직한 나무들이 예를 취하듯 어소 방향으로 구부러져 있어 대낮에도 어두컴컴합
니다.

어소를 향한 소나무 ⓒ영월군청

'1박 2일' 방송 당시 강호동씨의 아름이 넘는 소나무들이 전파를 탔는데요, 수림지 한가운데에는 좌중을 압도하는 노송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노송은 '관음송'으로 높이 30m, 수령 600년에 달하며, 밑동 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관음송이란 이름은 어린 임금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觀), 오열하는 소리(音)를 들은 데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단종이 유배생활 당시 갈라진 관음송 틈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청령포 뒷산비탈을 오르면 단종이 해질 무렵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에 다다릅니다. 이곳에는 그가 한양에 남겨진 왕비 정순왕후를 그리며 막돌을 주워쌓은 망향탑이 있습니다.  

망향탑 ⓒ신성원

 발길을 돌려 청령포를 뒤로 하면, 좌측 송림에 '왕방연 시조비'가 있습니다. 금부도사 왕방연은 단종의 유배를 호송하고 그에게 사약을 올린 인물로, 세조의 명을 수행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애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다 합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발길 예놋다

왕방연은 한양에 도착한 직후 사직하고 묵객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후 그가 단종을 생각하며 읊은 시조는 구전되었는데, 1617년 병조판서 김지남이 영월을 순시하며 아이들이 노래로 부르는 것을 듣고 한시로 옮겨 후세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청령포는 단종애사의 처연한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이지만, 어린 임금을 위해 죽음을 무릅쓴 신하들의 삶이 함께하기에 더욱 애잔한 곳은 아닐는지요. 그들의 비통함을 목격한 그때도, 오늘도, 청령포의 서강은 무심히 흐르고 있습니다.

청령포 전경 ⓒ신성원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심정연기자 (isjy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