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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최고급 반출 문화재 150점… 美 '헨더슨 컬렉션'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03.08]

 
 
 
 
 
제목 :
최고급 반출 문화재 150점… 美 '헨더슨 컬렉션'  
이름 :
허윤희(조선) Read: 8   Date: 2011.03.07
 
 
 
안평대군 글씨·고려 청자·신라 뿔잔·가야 토기… 한 미국인의 '거실

최고급 반출 문화재 150점… 美 '헨더슨 컬렉션'
정병국 장관 "국내 전시 추진… 美서 긍정 답변"
주한 美대사관 근무 헨더슨, 직접 수집 또는 뇌물 받아…
死後 모교 하버드大 기증… 문화재 애호 vs 반출 '논란'

한국 현대사의 명과 암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그레고리 헨더슨(1922~1988)이다. 그는 1948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와서, 1948~1950년, 1958~1963년 두 차례에 걸쳐 7년 동안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문정관(文政官) 등으로 근무했다. 동양문화, 특히 한국 도자기에 심취했던 그는 문화재를 직접 수집하거나 선물 받았다. 문제는 '선물' 대목이다. 권좌에 있는 이들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각종 진귀한 것들을 상납했고, 그것이 그대로 미국으로 반출됐다는 주장이다.

'헨더슨 컬렉션'에는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지장경 금니(金泥)사경'과
국보급 고려청자를 비롯한 각종 도자기·회화·가야 토기·신라 뿔잔과 받침대 등이 망라돼 있다.

◆해외 도자기 중 최상급

헨더슨 컬렉션의 주종인 도자기는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려청자, 조선백자에 이르기까지 통시대적인 컬렉션으로 '해외에 있는 도자기 중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취빛이 은은히 감도는 고려청자 주병은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최고품 수준일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매우 뛰어나다.

특히 조선 초기 명필을 대표하는 안평대군 글씨로 추정되는 '지장경 금니 사경'은 '존재만으로도 국보급'이다. 불경 중 하나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푸른색 감지 위에 금으로 써내려간 작품으로, 상단에는 안평대군 친필임을 뜻하는 '안평대군진적(安平大君眞蹟)'이란 글씨가 적혀 있다. 국내에 있는 안평대군 글씨는 국보 238호로 지정된 '소원화개첩'이 유일했으나 그마저 도난당해 공식적인 진품은 한 점도 없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쓴 안평대군의 발문은 일본 덴리대(天理大)가 소장하고 있다.

그의 사후 1991년 부인 마이아 헨더슨 여사는 헨더슨의 모교인 하버드대학에 약 150점을 기증했는데, 하버드대 박물관은 1993년 '천하제일(First under Heaven)-헨더슨의 한국 도자기 컬렉션'이라는 특별전을 통해 단 한 차례 전체 유물을 공개 전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사무총장인 혜문 스님은 "헨더슨에 의해 반출된 유물은 1000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부인 마이아 여사가 2007년 12월 세상을 떠나자 후손이 없었던 부부의 유물은 경매로 나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문화재 애호가인가, 반출범인가

헨더슨 컬렉션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우선 6·25 전쟁 전후 혼란 통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우리 문화재를 체계적 수집을 통해 지켜줬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헨더슨은 '한대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쓸 정도로 한국 문화를 아꼈다. 당시 전국의 골동품상들이 물건을 싸들고 헨더슨의 집을 드나들었다.

[사진설명]헨더슨 사후 그의 보스턴집을 방문한 현지 언론이 찍은 집 거실 전경. 불화·회화 등이 걸려 있고 불상·도자기·토기 등이 가득해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문화재 반출범'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돼 해외로 문화재를 반출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으나 그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의 사후 보스턴 집을 취재했던 현지 언론들이 "방마다 한국 유물들로 가득 차 있어 집 자체가 박물관이었다"고 했을 정도다.

혜문스님은 "당시 미국 정부의 환심을 사려는 정계·군부·학계·재계 인사들이 뇌물로 갖다 바친 유물도 수두룩하다"며 "힘들었던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의 엘리트들이 뇌물로 넘겨버린 문화재들"이라고 했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 나오는 브라운 박사가 현실의 헨더슨을 풍자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반면 김정기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미(美)의 나라 조선'에서 "내가 1987년 3월 헨더슨을 만났을 때 그는 단 한 점도 선물 받은 적이 없으며 자신의 컬렉션은 외교관 봉급을 쪼개서 하나하나 사 모은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썼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헨더슨 컬렉션은 '불법 약탈'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반환받기는 쉽지 않다"며 "해외 반출된 최상급 유물이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의해 해외에 나가야만 볼 수 있는 반출 문화재의 국내 기획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레고리 헨더슨

하버드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48년 주한미국대사관 부영사로 서울에 왔다. 국회연락관, 문정관(文政官), 대사특별정치보좌관을 지내며 국내 인사들과 두루 교분을 쌓았다. 한국 이름은 한대선. 백범 김구 선생은 1949년 그에게 '한미친선(韓美親善) 평등호조(平等互助)'라는 친필 휘호를 선물했다. 하버드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헨더슨이 1968년 미국서 펴낸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한국정치학의 고전이다. 1969년 자신의 컬렉션을 소개한 '한국 도자기-다양한 예술'이라는 도록도 펴냈다. 1988년 낙상해 사망했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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