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수난을 해방시킨 조국의 광복

1945년 광복 이전에는 일제의 강점 때문에 우리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없었다. 비록 수입하여 사용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순조롭게 발전하던 국내 자동차들은 1940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에 의하여 점령당하고야 말았다. 그들이 군용차로 사용하기위해 쓸 만한 트럭을 징발하고 휘발유까지 몰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민간 자동차들은 아사 직전이었다.

살아 남기위해 움직일 수 있는 트럭이나 버스, 택시 할 것 없이 영업용차는 전부 보일러 같은 화통을 달고 숯을 넣어 피운 다음 나오는 목탄가스로 움직였다. 이렇게 고달픈 목탄고물차 신세는 1945년 해방 직후까지 이어졌고, 전쟁 직전 총 7천 3백여 대였던 보유대수는 해방 후 남북을 통 털어 4천여 대 밖에 없었다. 일본군이 징발해간 트럭과 고물로 폐차된 차량들을 제외하고 난 후 일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40년간의 압박에서 해방되어 광복을 맞으면서 민간용 자동차들은 다시 숨을 쉬게 됐지만 그야말로 자동차가 너무 부족해 교통지옥이었다. 미군이 광복과 더불어 이 땅에 진주하면서 가지고 들어 온 수많은 미군용차들을 본 운수업자들과 운전사들은 침을 흘리며 부러워했다. 1950년을 가까이 가면서 이 땅에 진주했던 미군이 폐차로 불하한 군용트럭을 재생하여 만든 미국식 트럭과 버스들이 일본제 고물차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미군 가족들이 가지고 와 타던 미국제 늘씬한 승용차들이 흘러 나와 자가용이나 택시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해방 이전 구식 자동차 시대는 가고 미국식 자동차 시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노천 정비업자들이 만든 미군 폐차 재생버스들

동족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으로 또 한 번 자동차교통이 폐허를 만났던 1950년대 중반부터 정비업자들이나 운수업체들이 미 군용폐차들을 재생하여 민수용으로 개조해 사용했다. 한국전쟁 정전 1년 전 피난민으로 부산이 교통지옥을 이루었을 때인 1952년 3월 정부는 부산의 시민교통을 완화하기위해 전시특례법에 의거하여 합승택시 제작을 승인했다. 이때부터 전쟁으로 파손된 미군용차들이 불화되기 시작하였고, 전쟁의 부산물로 쏟아져 나온 드럼통을 펴서 망치로 두들겨 만든 차체를 씌운 소형 버스들이 정비공장에서 나와 시민과 피난민 교통을 도왔다. 휴전협정으로 서울이 완전히 수복됐던 1953년경부터는 미군의 대형트럭 섀시를 이용해 만든 버스와 트럭 제작으로 정비업체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당시 미군들은 우리의 짜집기 버스를 보고 놀랐다. 토막 난 미군용 폐차와 드럼통들이 천막공장으로 들어가면 일주일도 못되어 버스가 굴러 나오자 한국 사람들이 신기를 가졌다고 놀랐을 정도였다. 부품이나 모양을 통일시킨 25인승 마이크로버스를 개발하여, 붐을 일으켰던 신진자동차공업사는 1966년에 새나라 자동차회사를 인수하면서 처음으로 경승용차인 2기통 800cc급 공랭식 엔진을 얹은 ‘퍼블리카’를 생산하여 한국 경차시장을 개척했다. 퍼블리카 역시 국내 경차시장 개척과 경제형 차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쌍용 자동차의 모체인 서울의 하동환자동차도 이 시기에 규격화한 대형버스를 생산, 역시 60년대 말까지 전국의 버스를 거의 하동환버스로 바꾸어 놓았다. 하동환버스는 1967년 월남전이 한창이던 때에 우리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국산버스 20대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국자동차산업 기반을 만들었던 국산1호  ‘시발’의 탄생

1955년 모든 것이 무無였던 시절에 태어난 국산차 1호인 ‘시발’은 우리 자동차산업을 이룩하는데 커다란 디딤돌이 됐다. 비록 지프를 닮은 상자형 차였지만 특히 우리 손으로 만든 엔진을 얹었다는 것과 산업박람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정부나 국민이 시발차에 거는 기대와 긍지는 대단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자동차공업 육성에 따라 역사상 최초로 경기도 부평에 현대식 승용차 제조공장인 새나라자동차공업(주)이 설립되어 일본 닛산 자동차의 1,200cc급 엔진의 소형승용차인 불루버드를 분해식으로 도입하여 조립한 후 ‘새나라’`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비로써 자동차공학에 따라 제대로 만든 승용차를 탈 수 있게 됐다. 이 새나라가 바로 시발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상자형의 볼품없는 차인데다가 고장이 잦고 휘발유 많이 먹는 시발차는 새나라가 등장하자 인기는 추풍낙엽처럼 곤두박질 쳤다. 택시업자들은 앞 다투어 새나라로 바꾸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시발은 1962년 2천 2백30여 대를 생산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수반으로 이 나라를 이끌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형 미국의 캐딜락 세단을 도입하여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의전차로 사용했다. 이 차는 다행히 지금까지 보존되어 자동차부문 문화유산으로 2007년 등재됐다. 같은 해 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K-360 미니 3륜 트럭 개발 역시 한국 근대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자전거 제조와 기계 기술을 익혀 온 한국인 김철호씨는 최초의 국산 자전거 ‘삼천리’호 개발에 성공한 다음 1962년 초 우리나라 최초의 오토바이와 소형 3륜 트럭인 K-360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소형 트럭은 얼마 후 엔진 성능을 높인 T-600으로 70년대 초까지 생산되어 이 땅에 용달차 붐을 일으켰다.

문화유산의 서막을 장식한 임금의 최장수 자동차

1970년 7월 경부간 왕복 4차로의 428km의 경부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어 개국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가 그 결실을 보아 드디어 전국 1일 생활권 시대를 열었다. 거의 맨주먹으로 시작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세계 고속도로 건설 역사상 가장 짧은 2년 5개월의 공사기간과 1km건설에 가장 저렴한 1억 원 공사비로 완성됐다. 개통식 날 박정희 대통령은 68년형 미국산 캐딜락 프리트우드 75 리무진을 타고 현장에 나타나 감회 깊은 개통 탭을 끊었다. 이 캐딜락 의전 차 역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인 박 대통령을 태우고 공산현장을 누비며 고락을 같이했던 지프차와 함께 문화재 유산에 등재되어 현제 육군사관학교와 어린이 대공원에서 보존되고 있다. 문화유산의 서막을 장식한 임금의 최장수 자동차도 있다. 가장 오래 보존되고 있는 역사적인 자동차를 들라면 광복 전후를 따질 것 없이 1912경 도입된 고종임금의 어차이다. 고종 임금과 순종황제가 자동차를 탄 것은 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대 초 영국으로부터 도입한 고종 어차 다이뮐러 리무진과 1910년대 후반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순종황재용 캐딜락이다. 근 1세기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이 두 대의 임금님 차는 거의 파손 없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경복궁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이 두 대의 어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2005년에 문화재로 등재되어 자동차 문화유산의 서막을 장식했다.

한국 고유모델 1호, 포니의 탄생

1970년대 초 정부의 적극적인 국산고유모델 개발정책에 따라 현대자동차가 재빨리 국산고유모델의 소형 승용차 생산계획을 추진하여 1973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와의 기술제휴로 일 년 뒤 드디어 국산고유모델 1호인 포니가 탄생했다. 이로서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16번째로 고유모델을 갖는 나라가됐다. 이 고유모델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던 뒤쪽의 트렁크를 없애고 대신 경사지게 만들어 문을 단 파스트 백(Fast back)형 스타일이었다. 석유파동 이후 각국의 대중형 승용차의 디자인추세는 70%가 이런 스타일이었다. 4기통 1238cc 최대출력 80마력으로 연료소모가 적은 경제형 차였다. 이 차가 선보였을 때 국내에서는 「꽁지 빠진 닭」 같다며 생소한 스타일이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이후 포니는 시장에서 계속 선두를 달리며 77년에는 소형 승용차시장의 54%, 78년에는 53%, 79년에 52%를 점령 82년 8월초 포니Ⅱ가 나올 때까지 내수와 수출을 합해 단일차종으로는 최고인 30만대를 생산했다.
근대문화유산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웅변한다.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산업화, 도시화 등 급변했던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고리인 근대문화유산은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한국 자동차 역사 1세기와 자동차 산업역사 반세기라는 짧은 연륜 속에서 국산 자동차의 활발한 세계시장 진출로 우리나라는 이제 자동차 산업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최초 국산차 시발자동차와 같은 한국 산업사를 대변하는 자동차 기업들의 첫 모델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역사적 자동차 유물의 꾸준한 발굴과 보존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더불어 국민의 자동차 유물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자동차 역사를 정립하는데 초석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글·사진 |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