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를 그리며

수달의 사냥기술은 정말 놀랍다. 평소에 수달이 물고기를 뒤쫓아 갈 때는 물방울 하나 튀기는 소리 없이 조용히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멋진 사냥기술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수달이 배가 부르거나 다른 수달과 장난을 칠 때에는 “카-악” 또는 “삐-익” 거리면서 서로를 찾는 큰 목소리를 내지르거나 풍덩풍덩 물장구를 치며 자맥질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 수달은 물에서 튀어 오르며 앞으로 점프하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자맥질 행동을 즐겨한다. 달빛 하나 밖에 없는 깊은 밤, 몇 마리의 수달들이 꼬리를 물면서 연속적으로 자맥질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면, 마치 하나의 크고 기다란 뱀과 같은 몸뚱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마치 이무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밤이 깊어 어두워진 어느 시골 마을의 시냇가 주변을 한번 상상해 보자. 갑자기 시냇가 방향에서 간혹 “크아악” 하고 동물이 내 짖는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첨벙첨벙하는 물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어스름한 달빛 아래에서 기다란 몸뚱이의 동물이 자맥질을 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침 밤늦게 마실 다녀오던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도 짐짓 무서움을 떨쳐 보려 “뭐지? 물귀신? 이무기라도 나왔나? 헛헛”하며, 급한 헛걸음을 더 빨리 내디뎠을 것이 분명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미 그것이 수달이라는 동물인줄 알고 계시던 경험 많은 어느 할머니께서도 너무 늦게 시냇가에서 놀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을 돌려보내느라 “이눔들아, 이무기 나온다. 어여 집에 들어가라”하시면서 현실속의 수달을 전설속의 이무기로 바꾸어서 우리들 가슴속에 심어 주곤 하셨다. 그러고 보니 이무기라는 동물은 이미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특별히 서식하는 실제의 생물체가 된 듯하다. 마치 한국에만 사는 천연기념물 동물로서 말이다. 하지만 점점 시대가 변해가면서 예전의 시냇물이나 강물의 모습은 점차 변해왔다. 시냇가에서 동네꼬마들에게 이무기를 이야기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제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처럼 여러 마리 수달들이 강물에서 장난스럽게 노는 장면도 더 이상 보기가 어려워졌다. 강가에 늘어서 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누군가가 쳐놓은 수많은 그물 때문에 많은 수의 수달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수달

지구에는 총 13종의 수달이 살아가고 있다. 돌멩이를 사용해서 조개를 깨먹는 해달Sea otter, 아마존에서 야생 악어와도 감히 대적하는 큰 수달Giant otter과 같이 서로 다른 수달들이 살아간다. 그중 우리나라에는 “유라시안 수달Eurasian otter”이라 불리는 단 1종의 수달만이 서식한다. 수달은 포유류이면서도 수생생태계의 질서 및 다양성을 유지시켜주는 핵심종1)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즉, 수달이 안전하게 살고 있는 곳이라 함은 바로 해당 수환경이 건강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달이라는 동물은 주로 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수달 털의 보온능력은 매우 우수하게 발달되었다. 털의 밀도 또한 모든 동물 중 최고의 수준으로 촘촘하게 발달되어 그 방수능력까지도 매우 탁월하다. 이러한 수달 털의 특징 때문에 수달 모피는 세계에서도 가장 비싼 털로 인식되어 과도한 모피사냥이 오랫동안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지구상의 수달 숫자는 급속하게 감소되게 된다. 이 때문에 수달은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IUCN(세계자연보존연맹)과 같은 여러 국제기구로부터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국제보호동물로 지정되기 시작하였고, 수달 사냥의 금지는 물론이고 모피에 대한 밀거래도 모두 불법이 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달의 대량 사냥 기록이 문헌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과거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 같은 역사기록에서 수달의 사냥 기록들을 찾을 수 있는데, 과거 중국의 조공물품 뿐만 아니라 몽골에서도 우리 조정에 여러 압력을 행사하면서 많은 수의 수달 가죽을 요구하여왔던 기록들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동물의 가죽이 중요한 피복으로 사용되던 시절로서 그 중에도 수달 모피는 귀한 물품으로 여기고 있었다. 1232년(고종19)에는 당시 징키스칸이라는 위세를 떨친 왕이 있던 몽골에서 우리 조정에 많은 수의 수달 가죽을 요청해온 바 있었다.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결국 총 977장의 수달 가죽만을 제공하였다는 기록이 문헌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당시 한반도의 수달 서식상황에 대한 대략적인 짐작도 가능하게 한다. 그 외에도 제주도의 역사를 기록한 탐라지(효종 4년, 1653년)라는 고문헌을 보면, 당시에는 제주도에도 수달이 서식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무슨 연유 때문인지 현재의 제주도 내에는 수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보이는데, 그 멸종원인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있어서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매우 필요한 실정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수달들은 역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매우 굴곡진 삶의 궤적을 가져왔다. 특히 한국 전쟁과 근대의 경제개발이라는 급박한 환경변화 시기를 거치면서 수달의 서식지는 더욱 새로운 유형의 영향에 휩싸이게 된다. 당시에는 지구온난화 문제라든지 또는 강의 생태적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하천을 단순한 수로의 기능으로만 이해한 단순 토목적 관점의 하천 개발 사업들이 성행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물고기가 넘을 수 없는 수중보, 콘크리트 수직 제방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결국에는 물가에 있던 수달의 보금자리가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수달을 위한 생태계 보호법

수달은 다른 육상 야생동물들과는 달리 땅 위를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생활하지 못한다. 즉, 수달은 한반도라는 단위 면적 중에서도 오로지 강줄기라는 한줄기 선線 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이다. 이처럼 특수한 수달의 서식영역을 선형서식권Range linearity이라 하는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수달의 개체 수는 쉽게 증가하지 못하고 환경적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운 종이 된다. 더욱이 한줄기 하천에서만 살아가야 한다는 조건은 결국 다양한 배우자로 부터 건강한 유전자를 받아들일 기회가 다른 야생동물들보다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서식권인 하천유역의 개발 사업에 의해서도 급속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하천환경의 변화에 의해 수달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예는 이웃 일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도 과거에는 수달이 폭넓게 분포하고 있었으나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급속한 개발사업의 여파로 자연하천의 환경은 점차 직선화, 콘크리트화 되어갔다. 이러한 하천환경의 변화에 따라 일본 수달의 서식환경도 급속히 훼손되게 되었고, 결국 1979년 일본 고치현 스자끼시의 신조강에서 마지막으로 수달개체가 관찰, 촬영되게 된다. 이 촬영소식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나, 불행히 그 이후에 일본의 수달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돌이켜 볼 때, 수달의 서식은 하천의 개발 활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들의 보존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자연하천이 갖는 생태적 기능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들은 각종 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수달이 어떻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잘 알지 못해 수달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주어왔다. 하천의 물가는 점점 콘크리트로 메워지면서 수달들은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만 했다. 수달이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겨 갈 수 있는 이동통로를 만들어주지 못하여 도로위에서 안타까운 교통사고를 맞기도 한다. 이제는 자연하천에서 개발 사업을 진행하게 되더라도 물가에는 수달의 집을 만들어 주고, 수변에서 잠시 동안 쉬어갈 휴식처를 만들어주자. 수달의 집은 주변에 널린 바윗돌을 쌓아서 만들 수 있고, 수달휴식처는 나무와 풀이 자라는 일정한 수변공간들을 강변에 생태징검다리처럼 배치해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와 같은 보호방법들을 하나둘씩 제공해주다보면 시간이 흘러 많은 수달들이 보다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수달 보호방법들은 단지 수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생물에게도 매우 유익한 종합적인 생태계 보호기법들이 된다. 오래전에는 서울 한강에도 수달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식하지 않는다. 한강을 거슬러 최상류에 있는 파로호 상류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안심하고 수달들이 살아가는 서식지가 나타날 따름이다. 그렇다면 다시 수달들이 한강에 서식하도록 만들 방법은 없을까. 사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연구를 해 오고 있다. 미국 뉴욕 주에서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약 260여 마리의 수달을 총 6년 동안 자연으로 복원시키는 “뉴욕수달프로젝트”를 민간기구와 함께 성공적으로 실행하여, 사회적으로 큰 지지를 이끌어낸 바가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복원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수달과 자연생태계의 건강한 회복을 보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가 가장 큰 성공의 요인이었다. 필자 역시 오래전부터 한 가지 꿈을 꾸어오고 있다. 금강산에서 서울 한강까지 흘러나가는 수달의 꿈이다. 한강에 수달이 돌아오는 그 방법 찾기를 우리도 시작해보자.  

 
글·사진 ㅣ 한성용 문화재전문위원,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수달전문가 그룹 한국/동북아 대표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