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국립미술관을 ‘개인창고’로
이름 :	노형석(한겨레) Read: 8   Date: 2011.01.18
유종하 한적총재, 국립미술관을 ‘개인창고’로 98년 외무장관 사임하며 개인그림 보관 요구 10년 지난뒤 그림 행방 묘연해지자 수사의뢰 지난해 외교통상부에 아들을 특채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던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75·전 외무부 장관)가 10여년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신의 개인소장 그림을 공식 절차 없이 편법으로 보수를 맡긴 뒤 최근까지 계속 보관시켜온 것으로 밝혀져 다시 구설에 올랐다. 이런 사실은 유 총재가 지난해 7월 “내 그림이 미술관에서 사라졌다”며 서울경찰청 형사과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 최근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고위 공무원이 국립미술관에 공식 기탁 절차를 밟지 않고 개인 소장품을 맡기거나 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미술관 내규 위반이다. 사라진 그림은 유 총재가 1980~83년 영국공사로 근무할 때 현지에서 5만파운드(현재 환율 시세로 9000여만원)에 구입한 19세기 네덜란드 화가 알버르트 스헹크의 100호짜리 유화로, 들판의 양떼들을 그린 대작(가로 1ｍ×세로 1ｍ50㎝)이다. 유 총재는 수사의뢰서에서 98년 3월 외무장관을 물러날 당시 공관에 걸렸던 쉔크의 그림을 최만린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게 보수를 부탁하며 맡겼다고 진술했다. 그는 보수가 끝난 뒤인 99년 이후에도 작품을 계속 미술관에 보관시켰으나, 2007년 그림이 없어졌다는 통보를 받아 수사를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사진설명]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 의뢰했다가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알버트 쉔크의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경찰은 당시 수선 작업을 맡았던 미술관 보존과학담당관 ㄱ씨(1998년 12월 퇴직)를 비롯한 미술관 전현직 간부, 직원들을 조사했다. 특히 경찰은 지난달 ㄱ씨를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ㄱ씨는 “공식 문서는 없지만, 당시 탁상 메모를 찾아보니 관장의 특별지시로 98년 1월 중순 그림을 받아 3월 말 작업을 끝낸 것으로 적혀 있었다”며 “유씨 쪽과는 3월26일에 보수한 작품을 넘겨주기로 약속하고 메모에 적었고, 정황상 약속대로 반출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연말에 경찰이 과학수사를 한다고 해서 갔더니 거짓말탐지기를 들이댔다”며 “피의자도 아니고, 수사를 의뢰한 사람이 거짓 주장을 할 수도 있는데 인권침해성 조사를 해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항변했다. 반면 유 총재는 당시 작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99년 미술관 1층 창고에서 직원들 안내로 작품을 확인했는데, (사적으로)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 미술관 창고가 안전하다고 판단해 그 뒤에도 그냥 뒀다”며 “2007년 그림을 찾아가려고 미술관에 문의했으나, 작품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2년여 고심한 끝에 최근 배순훈 현 관장으로부터 경찰 수사가 좋겠다는 조언을 받아 수사의뢰서를 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전국 주요 화랑에 수사협조 공문도 발송했지만, 여전히 작품 행방에 대한 단서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술계는 작품 반입 기록 등 공식 문서가 없어 진상 규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작품 행방을 떠나 일급 국가 보안시설인 미술관 수장고를 개인 작품 창고처럼 쓴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특권적인 행태”라며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술관 사정에 밝은 한 미술계 인사도 “직원들을 절도범으로 의심해 수사를 의뢰하고 경찰이 공문을 화랑가에 돌린 사실도 알려지면서 미술관의 명예까지 실추됐다”며 “배 관장이 왜 수사의뢰를 권유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총재는 이에 대해 “공식 절차 없이 개인 소장품을 보관시킨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꼈던 고액 소장품인데다 미술관 내부에서 관련 문서가 없다는 정황을 알고 유출시켰을 것으로 보여, 고심 끝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해명했다. 유 총재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98년 외무장관을 지냈고,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거쳐 2008년부터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지난 10월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파문 당시 아들을 외교부에 특채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돼 국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국제회의 참석을 이유로 불참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