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풍자가 깃든 하회별신굿탈놀이에 빠지다

우연히 영상을 통해 하회별신굿탈놀이 속 파계승마당을 접했을 때 극중 ‘이매’라는 캐릭터에 푹 빠졌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웃고 있지만, 턱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외모,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비틀비틀 걷는 바보 같은 모습이지만, 동시에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반드시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온몸을 감쌌다. 자신의 미완성과 부족한 모습을 바탕으로 완벽을 지향하는 사대부의 허점과 약점을 드러내는 이매를 작품 속에 담고 싶었다.

자료 조사를 위해 무작정 안동으로 향해 하회마을 상설공연장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공연을 여러 번 보면 지루 할 법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작품을 더 공부하고 싶어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선생님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기를 여러 번, 이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찾아가서 인사하고 기다리기를 반복 하자 “자는 뭐 하는 놈이고?”라면서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셨다. 선생님의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국가무형문화재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이매를 더욱 깊이 알 수 있었고,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인생 속 장애물을 묵묵히 넘는 이매처럼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옛날 상민(常民)이 겪는 삶의 애환을 담아 냈다는 점이다. 탈놀이를 통해 상민은 세상 살이를 풍자(諷刺)하고,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발산했다. 신분질서가 엄격했지만, 양반들은 풍자와 해학이 담긴 탈놀이를 묵인하거나 지원하며 계층 갈등을 줄이고, 탈놀이를 통해 공동체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삶의 애환을 담아내는 탈놀이의 특성은 내가 사는 현재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환경은 변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필요 한 것은 결국 삶의 가치와 균형이라는 것,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속 이매에게 집중했고, 그 속에서 내 삶을 바라보았다.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고, 완벽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주변 환경을 신경 쓰지 않는 순수함이 필요 했다. 느릿느릿한 말투에 굽은 팔 한쪽, 비틀 거리지만 아무 근심과 걱정 없이 세상과 부딪히는 이매는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곧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매를 통해 바라본 내 모습과 부족하지만 거짓 없는 이매의 순수함을 무용극 ‘해탈’ 속에 담아냈다. 4년이라는 긴 시간에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낸 ‘해탈’은 안무가이자 창작자로서 전통이라는 소재가 담고 있는 정서와 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치열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불완전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속 이매가 되길 꿈꾼다. 힘들고 지칠 때도 많은 지금,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자책하지 말고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춤과 노래로 놀아보길 바란다.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으로 양반을 풍자했던 이매처럼 말이다.

안지형 안무가
‘시나브로 가슴에(company SIGA)’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지형의 창작 배경의 가장 큰 화두는 휴머니즘이다. ‘가장 사소한 순간을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전화(轉化)하는 것’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고자 하는 이야기에 맞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환경을 찾아가고 있다. 그저 삶과 예술이 평행하고 불행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안지형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고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다양한 창작활동을 진행 중이다.

글. 안지형(시나브로 가슴에 안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