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성원을 관장하는 여러 왕실부

태조 이성계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1400년 1월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한 직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또 그해 11월 정종이 왕위를 선위하자 조선의 제3대 왕으로 즉위 했다. 이로써 당시 조선 왕실에는 국왕인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 외에 1398년 9월 정종에게 왕위를 선위한 태상왕(태조 이성계), 상왕(정종 이방과), 왕대비(정종비 정안 왕후 김씨)가 모두 존재하게 되었다.

왕실 성원들의 지위는 새로운 국왕의 즉위와 함께 바뀌었는데 성원마다 별도의 부(府)를 개설해 부주(府主)의 복식 관리와 음식 제공, 재화에 관한 일을 관장하게 했다. 조선의 왕실부는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직후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할 때 신덕왕후 강씨의 중궁부로 경흥부를 설치한 이래 정종의 즉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조선 초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1400년 2월 이방원의 세자부로 인수부가, 같은 해 6월에는 태조의 상왕부로 승녕부가 설치 되었다. 또 태종이 즉위한 후, 상왕이 된 정종을 위해 공안부가 설치되었고, 승녕부는 태상왕부가 되었다.

대비, 왕비와 관련된 왕실부에는 태조비 신덕왕후의 중궁부인 경흥부, 태종비 원경왕후의 중궁부이자 후에 대비부가 된 인녕부가 있다. 정종비 정안왕후 김씨의 중궁부는 『조선왕조실록』에 관련 기록이 없어 설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태종 즉위로 정종은 상왕이 되었고 정안 왕후 김씨는 상왕대비(上王大妃)가 되었다. 이후 1405년에 상왕대비의 공상을 담당한 공상별진사를 없애고 이를 상왕부인 공안부에서 함께 담당하게 한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에 정종비 정안왕후의 중궁부와 대비부는 별도로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정종 비(妃) 정안왕후와 달리 태종 비 원경왕후 민씨의 중궁부인 인녕부는 왕비[靜妃]로 봉하는 책봉례가 있기 두 달 전 태종이 왕위에 오른 당일 설치되었다. 1400년 11월 11일에 정종은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했고, 11월 13일 정종의 상왕부로 공안부(恭安府)가, 태종비 원경왕후의 중궁부로 인녕부가 설치되었다. 이 내용은 『태종실록』이 아닌 『정종실록』에 실려 있는데 ‘주상을 높여 상왕을 삼고, 부를 세워 공안부라 하고, 중궁의 부를 인녕부라 하였다’라는 기록 중 ‘중궁’을 상왕이 된 정종비로 오역함으로써 인녕부는 오랫동안 정안왕후 김씨의 중궁부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왕으로 즉위하여 왕위를 선위한 선왕(정종)을 상왕으로 높이고, 세자빈을 왕비로 책봉하고 중궁의 부(府)를 설치할 수 있는 주체는 태종이다. 또 훗날 세종의 즉위로 모후인 원경왕후는 대비가 되었고 세종은 원경왕후의 중궁부였던 인녕부를 예전대로 대비전(大妃殿)에 소속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이는 인녕부의 부주(府主)가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임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그림으로 전해진 단 한 점의 인녕부명분청사기

왕실 성원인 태상왕, 상왕과 상왕대비, 국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은 원칙적으로 궁(宮) 안의 각 전(殿)에 거주하며 그위계에 맞는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이때 앞서 설명한 여러 왕실부 관사는 필요한 물자를 지방 군현에서 상납하는 공물로 충당하며 왕실 성원의 생활을 도왔다. 각종 현물로 조달되는 공물에는 자기와 도기가 포함되었고, 태종과 세종의 재위 기간 궁궐 안 여러 관사에서 사용한 분청사기에 왕 실부를 포함한 각 관사 사호(司號)가 표기되었다.

왕실부 사호에는 상왕부인 공안부, 인수부, 덕녕부 그리고 세자부인 경승부, 인순부가 있고, 중궁부인 인녕부가 있다. 지금까지 공납자기를 생산한 가마터와 이를 사용한 궁궐 영역에 대한 발굴에서 공안부, 인수부, 경승부, 인순부, 덕녕부가 표기된 분청사기가 다수 확인되었다. 그러나 태종 비 원경왕후의 중궁부와 대비부인 인녕부가 표기된 분청 사기는 단 한 점이 알려졌으나 실물은 전하지 않고, 세종 비 소헌왕후의 중궁부인 경창부가 표기된 예는 확인된 바 가 없다.

인녕부명분청사기(仁寧府銘粉靑沙器)는 일제강점기 경성, 당시 서울에 있었던 일본인 가사이 슈이치로가 그 존재를 알렸다. 그는 1938년 4월 한 골동품 가게에서 파편이지만 안쪽 바닥에 ‘인녕부(仁寧府)’ 석 자가 상감된 분청사기를 발견하고 구매하려 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그 세부를 자세히 관찰하고 내용과 도면을 동양도자연구소가 간행한 『도자(陶磁)』 10권 3호에 ‘三島手 の一つの銘款’라는 짧은 글로 게재했다. 그림으로 남은 인녕부명분청사기는 『조선왕조실록』 속 원경왕후의 중궁부와 대비부로 존재했던 인녕부 내용과 부합하는 실증자료로서 그 의의가 크다.

한편 왕비는 왕실의 대를 이어야 하는 국왕의 아내이자 다음 국왕의 모후(母后)이고, 내명부 전체를 통솔하는 공적인 책무가 막중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중궁부로 설치되었던 원경왕후의 인녕부가 표기된 분청사기가 단 한 점만 알려졌고, 소헌왕후의 경창부가 표기된 분청사기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태종의 집권 초기 절대왕권의 확립 과정에서 외척인 여흥 민씨와 청송 심씨 가문이 멸문의 화를 당함으로써 정치적인 위상은 물론이고 한없이 불행했던 두 왕비의 운명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글, 사진. 박경자(청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