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으로 알리는 봄의 시작

‘선작지왓’의 ‘작지’는 자갈, ‘왓’은 벌판이란 뜻의 제주 방언이다. ‘돌이 널려 있는 벌판’이라는 의미로 돌이 흰빛을 띠어 ‘선(설다)’을 ‘흰(희다)’으로 해석해 ‘흰 돌 이 많은 들판’이라는 주장도 있다. 선작지왓의 비경은 봄에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 말부터 신록이 짙어가는 6월 초까지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차례로 피며 분홍빛의 바다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신이 만들어 놓은 큰 정원 같기도 하다. 한라산의 다른 초원지대에는 제주조릿대라는 벼과 풀이 뒤덮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에는 대부분 산철쭉과 털진달래를 주요 종(種)으로 하는 관목림 지대를 이루고 있다.

초봄에 갑자기 추위가 엄습할 때는 털진달래 꽃잎에 설화(雪花)가 입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털진달래와 산철쭉 사이에는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시로미와 눈향나무 등 키가 작은 관목류가 자라고 이 화원의 은밀한 곳에서는 계절별로 백리향, 한라구절초, 설앵초, 구름송이풀, 구슬붕이, 용담 등 이름도 아기자기한 들꽃을 피운다. 화산 폭발 때 백록담 분화구에서 드넓은 고원에 튀어나왔을 용암 덩어리가 듬성듬성 박혀 있고, 조릿대 사이로 진달래와 철쭉이 피면 선작지왓은 푸른 하늘 아래 분홍 바다가 펼쳐진다.

희귀식물이 가득한 선작지왓

선작지왓 아래 영실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제주 망망대해에서 치맛 자락에 흙을 담아와 제주 섬을 만들었다고 하는 제주 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은 아들들에게 먹이려고 큰 가마솥에 죽을 끓였다. 할망은 죽을 쑤다가 그만 실수로 가마솥에 빠져 죽었다. 뒤늦게 돌아온 아들들은 허기가져 급히 죽을 퍼먹었는데 죽 안에서 나온 뼈를 보고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울부짖으며 바닷가로 달려간 막내아들은 서귀포 앞바다의 외돌개가 되고 나머지 아들 오백 명은 영실의 오백장군이 된 것이라 한다. 오백장군은 피를 흘리며 죽어 영실의 기암괴석이 되었는데, 이들의 피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선작지왓의 붉은 꽃이 마치 피의 물결처럼 피어난다는 것이다.

선작지왓 일대는 자연적 환경조건으로 형성된 일부 나지의 발달, 암석의 노출 등 아고산대 특유의 경관자원과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3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들 종수(種樹)는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 아고산대(亞高山帶)에 자생하는 식물 종의 대부분이 이곳에 분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 자라는 제주달구지풀, 흰땃딸기, 두메대극, 금방망이, 구름떡쑥, 한라돌창포, 손바닥난초, 자주꿩의다리 등 고산식물의 상당수는 한라산 또는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나 희귀식물이며 북방계 식물로서 학술적, 자원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저녁 어스름 무렵에는 초원의 귀염둥이 노루 가족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한라산 선작지왓은 2012년 12월 명승으로 지정됐다.

정리. 편집실 자료, 사진.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