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이 주는 경쾌함

맞배지붕은 지붕 중에서 간소한 방식에 속한다. 경사진 지붕면을 맞대고, 양 측면에는 풍판이라는 널빤지를 대서 비바람을 막는다. 정자각은 풍판이 정전 양 끝과 배위청의 전 면까지 모두 세 부분에 설치되는데, 그 덕분에 건물은 단정한 외관을 갖추게 되어 왕릉의 엄숙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에 비해 팔작지붕 정자각은 추녀가 여섯 군데나 설치 되면서 추녀 네 개로 된 일반 팔작지붕 건물보다 한층 경쾌 하면서 돋보이는 외관을 갖는다. 더욱이 석회를 두껍게 바른 양성마감을 한 추녀마루는 날아오를 듯이 보인다.

정자각의 지붕을 맞배 형태로 짓는 방식은 조선시대 초부터 지켜온 규범이었다. 이 규범에 이완이 생긴 시기는 16세기 후반부터로 짐작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 4년 (1571) 명종릉인 강릉 정자각을 수리하면서 지붕을 팔작으로 고친 정황이 보이고, 광해군 13년(1621)에는 세종 영릉의 정자각을 손보면서 같은 방식으로 고쳤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어떤 이유로 팔작지붕으로 고쳤는지에 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인조 10년(1632) 인조 부친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고, 무덤 명칭을 장릉(章陵)으로 올리면서 정자각도 팔작지붕으로 했다. 이어서 인조의 무덤인 장릉(長陵), 효종 무덤인 영릉(寧陵)의 정자각도 팔작지붕으로 지었고, 1674년 현종이 승하하여 숭릉을 조성하게 되자 역시 정자각을 팔작지붕으로 만들었다.

관습에 부딪혀 사라진 팔작지붕 정자각

이런 팔작지붕 정자각 건립은 조선시대 초부터 내려오던 관습에서 벗어난 일탈이었다. 일탈은 종종 색다른 변화를 선호하는 분위기와 만나 새로운 창의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관습을 지키려는 저항에 부딪혀 사라지게 마련이다. 팔작지붕 정자각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광해군 때의 행적을 고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팔작지붕으로 고친 영릉 정자각도 문제로 삼았다. 인조 17년 7월 한 대신이 왕에게 이르기를, 정자각은 일정한 제도가 있고 본래 영릉도 건원릉 제도와 차이가 없었는데, 광해군 13년(신유년)에 개조 할 때 규모가 달라지고 팔작을 설치하여 옛 제도와 어긋난 실상을 지적하면서 예전 제도로 고치자는 청을 올렸다.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구절이 『승정원일기』에 보인다. 팔작지붕 정자각은 이후에도 몇 차례 건립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현종의 뒤를 이은 숙종은 부친 무덤인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으로 세웠지만 이후 첫 부인 인경왕후와 계비 인현 왕후 무덤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짓게 했다. 그 사이에 인조 계비 장렬왕후의 무덤인 휘릉을 조성할 때도 풍판을 댄 맞배지붕으로 결정하면서 ‘이것이 더 견고할 듯하다’라 는 이유를 달았다고 『산릉도감의궤』에 기록했다. 견고함을 이유로 들긴 했지만, 실은 왕실의 관습을 되돌리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고 짐작된다.

이후 모든 왕릉은 맞배지붕 정자각으로 지어졌다. 또 팔작지붕이던 장릉(원종)이나 장릉(인조), 영릉 정자각은 후대에 수리하는 과정에서 모두 맞배로 고쳤다. 관습을 지키려는 의지는 견고했다.

기록에 한정해서 보면, 팔작지붕 정자각은 1571년 강릉에서 시작해서 1674년 숭릉까지 100여 년 사이 대여섯 곳의 정자각에서 나타났다가 숭릉 한 곳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추녀가 건물 모서리마다 활짝 날개를 편 듯하던 이 색다른 건축은 잠시 왕릉에 이채로움을 주었지만 아침 이슬이 스러지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떤 이유로 숭릉 정자각의 지붕이 처음 지어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이를 설명해 주는 기록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글, 사진. 김동욱(경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