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 활용을 함께 고민한 제도

등록문화재 제도는 ‘보존’과 ‘활용’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있다. 즉, 문화재로서 가치가 ‘보존’되는 가운데 ‘활용’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유연한 보호 체계라는 뜻이다. 등록문화재는 건축물을 예로 들면, 해당 건축물 자체만이 보호 대상이며, 변경 행위의 경우 내부는 자유롭게 그리고 외관의 경우 4분의 1 이상이 될 때 사전 ‘신고’로 가능하다. 이것은 등록대상 건물이 지금도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원형보존만을 내세울 경우 일상의 불편함과 사유재산권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렇기에 소유자와 관리자의 자발적 보전 의지가 매우 중요하며, 그들의 신청이 있을 때만 등록이 가능하다. 등록문화재는 매우 탄력적인 보호 체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등록문화재’가 될 문화재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 첫째,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여야 하며 둘째, 가치 측면에서 역사, 문화, 사회, 경제, 기술 등 각 분야에서 기념·상징·교육적으로 중요해야 한다. 다음으로 형태적으로는 건물, 시설(다리, 터널) 등 부동산과 자동차, 서류, 옷, 예술품 등 동산 유물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시간적 범위인 ‘제도 속 근현대 정의’를 충족해야 한다. 즉, 한국의 개항기(1876년 이후)부터 현재 기준으로 50년이 경과한 경우, 예컨대 2021년 시점이라면 1971년 이전에 건설·제작·형성된 경우 가능하다. 다만 미숙한 신생아를 ‘인큐베이터’에서 보호하듯이, 예외적으로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경우 50년이 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근현대문화유산 지킴이로 성장

등록문화재를 사람의 성장에 비유하면, 만 2세를 넘긴 2003년에 전담 부서인 ‘근대문화재과’가 생겨났으며 만 4세 무렵인 2005년엔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가 신설되어, 근현대문화유산을 다루는 내부의 행정력과 외부의 문화재위원을 통한 전문성까지 튼튼하게 갖추었다. 양적 측면에서도 2005년까지 등록번호 제200호를 넘기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등록 대상의 경우 제도 초기에 건축물과 시설물이 가능했으나 2006년부터는 유적 및 동산까지 확대하며 성장 촉진에 큰 발판을 마련하였다. 특히 동산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39개 분야의 ‘목록화’라는 전수조사를 통하여 문화재 등록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등록 제도는 성장 잠재력을 뽐내는 한편, 항일독립유산의 문화재 등록을 통한 국가보훈까지도 염두에 두게 되었다. 10세가 된 2011년에는 500번째 등록을 목전에 두었다. 그리고 목록화 조사를 건축 및 시설분야로도 확대하여 군 주둔지 내 건축·시설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유적, 공공행정 등의 주제를 2020년까지 약 16회에 걸쳐 진행해 등록 스펙트럼을 다양화했다. 제도 도입 10주년 전시도 개최하여 그동안의 성과를 국민에게 선보이는 뜻깊은 기회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17세가 된 우리 등록문화재 제도는 한결 더 어른스러워졌다.

2018년에 등록문화재는 두 가지 영향으로 성장판에 더 큰 자극을 받았다. 하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그동안 ‘점(點)’처럼 개별 건물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방식에서 ‘선(線)’, ‘면(面)’ 단위의 구역까지 등록하여 경관을 유지하며 도시재생도 함께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시도 등록문화재 제도’의 도입이다. 이 제도 덕분에 서울, 부산, 강원, 전남 등 광역시·도의 지역 단위에서도 자체적인 근현대문화유산 보호 장치를 구축하게 됐다.

2020년에는 경사스럽게도 ‘조선말 큰사전 원고’와 ‘말모이 원고’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되었다. 이는 매우 의미가 있다. 2012년 한글 목록화 조사를 통해 발굴, 등록된 이 두 건의 근현대문화유산은 등록 제도의 보호 덕분에 대한민국의 대표 유산 중 하나로 당당히 발돋움한 것이다. 이렇게 등록문화재는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씩씩하고 단단하게 성장하였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 걸친 900건의 소중한 근현대문화유산이 보호, 관리되고 있다. 또 ‘국가’ 및 ‘시·도’ 차원의 등록 확대와 더불어 사후관리(정기조사, 보수정비 지원)와 활용사업(전시, 행사 등)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글. 이정수(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학예연구사) 사진.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