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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의 인천국악로드 ⑭ 서도소리의 대가 민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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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7월 2일. 인천송림초등학교 강당에서 학예발표회가 열렸다. 연극 ‘화랑 관창’(연출 백명흠)을 비롯해서, 음악과 무용에 특기가 있는 어린이가 무대에 올랐다. ‘승공학예발표회’라는 제목처럼, 마지막 순서는 ‘우리의 소원’이란 무용이 무대위에서 펼쳐졌다.

민천식이 운영한 송학동 100번지 무용학원

5학년 중에서 십여 명이 무대에 올랐다. 그 중 한 사람이 나다. 우리들의 솜씨는 꽤 괜찮았다. 난,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학교엔 무용반도 없는데, 쟤들은 왜 저렇게 춤을 잘 출까?’ 그들의 부모는 중앙시장과 송현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살았다.

세월이 오래 흐른 뒤 알게됐다. 송현동 100번지. 시장통의 한복판에 2층건물이 있었다. 1950년대엔 거기를 ‘인천국악원’이라고 했다. 민천식(閔千植, 1898~1967)이 운영을 했다.

이곳에서는 민요와 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을 왕래하던 상인들은 오가며 장구소리를 들었다. 고(故)김실자, 김정순(金貞順, 국가무형문화재 제 34호 강령탈춤 예능보유자)가 그랬다. 황해도무형문화재 제4호 ‘화관무’ 예능보유자인 김나연은, 당시 여학생으로 민천식과 예술적 인연을 맺게 시작했다.

▲민천식. 그는 세 개의 다른 이름으로 살면서 인천국악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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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23일, 무형문화재 지정 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둬

1967년 6월 23일 봉산탈춤을 전승할 무형문화재로 4인이 지정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송현동 72번지에 살았던 일흔살의 민천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의 소식을 들은 것도 잠시, 얼마 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애석하게도 스승 민천식은 타계했으나, 제자들은 그 맥을 이었다. 민천식의 대를 이어서, 송현동 시장통의 무용학원을 이은 사람은 김정순(화수동 37번지)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당시 ‘고전무용’과 ‘탈춤’을 가르치는데 열정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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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의 제자는 대학생에서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송림, 송현, 서림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무용을 배운 어린이 중엔 김정순의 제자가 많다. 1970년 7월 2일, ‘승공학예발표회’ 무대에 올랐던 내 친구들이 김정순에게 춤을 배운 사실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김정순의 스승인 민천식은 어떤 사람일까? 민천식은 평생 세 개의 다른 이름으로 살았다. 본명은 민관식(民寬植,1898년생)으로, 황해도 사리원 태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봉산탈춤으로 대표되는 해서지방(海西地方)의 민속문화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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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그는 자신은 평양숭실학교를 다녔고, 이왕직아악부의 아악부원양성소(5년제)를 2년 정도 다녔다고 했다. 민관식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민형식(閔亨植)이란 예명으로 1930년대엔 소리꾼(서도가요)으로 크게 이름을 날렸다는 사실이다.

1934년 3월 29일. 경성방송국의 서도가요(西道歌謠) 생방송 시간이다.

경성방송국(JODK)에 민형식과 김진명이 출연을 했다. 당시 그 분야의 최고가 아니면, 경성방송국의 생방송 출연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밤 8시부터 30분 동안, 민형식과 김진명(金振鳴)은 속요(俗謠)를 불렀다. 배따라기 초한가 등이었고, 지금은 서도소리(서도민요)라고 한다. 

민형식과 김진명은 서도가요 ‘투톱’으로 인기

민형식과 김진명은 당시 서도가요(서도소리)를 잘 부르는 투톱이었다. 김진명이 주로 ‘혼자서 부르는’ 정통 서도가요에 집중을 했다면, 민형식은 남성 또는 여성과 2인 콤비를 이루면서, 재담 섞인 노래로 인기가 높았다.

민형식은 ‘악양루가’, ‘꿩타령’ , ‘개성팔경가’ ‘처녀가’를 구성지게 불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군밤타령’도 김진명과 민형식의 대표 레퍼토리로 그들을 통해서 널리 퍼졌다.

음악교과서에도 실린 ‘금다래꿍’은 초등학생이 잘 아는 노래다. 원 제목은 ‘금드렁타령’으로, 민형식의 대표곡이었다. 민형식은 몇몇 여성 파트너(이명숙, 신향식, 허영숙)를 달리하면서, 남녀 2인창으로 ‘금드렁타령’을 불렀다. 그는 구수하고 재미있는 서도(황해도)풍 가요를 취입하고 무대에서 부르면서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큰 인기를 끌었던 ‘서도가요’ 인기스타 민형식이 1940년대에 어떻게 지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물거품 같은 대중적 인기를 뒤로 하고, 황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탈춤을 추고, 무용 등을 가르치면서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천에 정착한 후 민형식 아닌 민천식으로 새 삶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황해도지역민의 다수가 피란와서 인천(화수동, 화평동, 송림동, 송현동)에 정착했다. 그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또 다른 이름을 살기 시작했다. 북쪽 가족이 눈에 밟혔을 것 같다. 이제 그는 민형식(閔亨植)이 아니라 민천식(閔千植)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무용교육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민천식이 운영하는 송현동 무용학원(인천국악원)은, 다른 무용학원과는 확실히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무용에는 음악이 필수다.  당시 무용학원에는 커다란 릴 녹음기가 있었다. 릴테이프가 돌아가고, 그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민천식이 운영하는 세칭 ‘인천국악원’에는 릴녹음기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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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천식이 직접 장구를 잡고 소리를 해주었고, 그것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민천식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이 모두 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민천식의 ‘소리와 장구’에 맞춰서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했다”는 것이다. 릴 테이프에서 돌아가는 음악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됐다.

지금 생존해 계신 분 중에서, 민천식을 가장 잘 얘기해줄 분은 누구일까? 재담소리의 대가 김진환(예명 김뻑국, 1937년생)이다. 그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기는, 1950년대부터 돌아가실 때까지다. 김뻑국은 민천식의 예능적 재주뿐 아니라, 훈훈한 인간미까지 잘 알고 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김진환은 인천에 정착을 한다. 재담과 소리에 뜻을 둔 김진환은 민천식과 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김뻑국은 민천식을 통해서 김천흥(1909 ~ 2007, 해금정악, 인간문화재)을 만나게 됐다. 당시 민천식은 인천에서, 김천흥은 각각 서울에서 무용학원을 열었다. 김천흥과 민천식은 이왕직 아악부 2기생 동문이었다.

두 사람은 무용에 뜻을 두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인천에 거주하는 김진환을 ’김천흥무용연구소‘에 연결해준 분이 민천식이다. 그는 김천흥무용연구소의 한 켠에 거주하면서 청소도 하며 잔일과 사무를 도맡았다. 또 김천흥 선생에게 춤을 배우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재담소리’의 대가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실제 민천식을 알지 못하지만, 어머니(김나연)를 통해서 민천식이란 인물을 알수 있지만 그의 삶과 예술을 정리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차지언이다. 그는 ‘민천식 화관무의 전승양상과 사상성 연구’라는 박사학위논문(2020. 상명대학교 대학원)을 통해서, 민천식이라는 인물과 화관무의 특성을 소상히 정리하고 있다.

황해도 사리원 색동리에서 태어나, 인천시 동구 송현동에서 타계한 민천식. 그의 삶을 되짚어 정리하면, 해서탈춤(어린시절) – 궁중음악 (중학과정) - 서도가요 (1930년대) - 낙향과 예능 지도 (1940년대) - 월남과 고전무용 강습 (1950년대) – 탈춤복원 (1960년대)로 6개의 시기로 구분된다.

인천의 국악을 있게 한 민천식, 김길자, 김정순을 기억하자

1990년 12월 10일, ‘송년통일음악회’ 가 이틀째 열리고 있다.

전날(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한국의 조상현 명창이 북쪽의 김진명 명창을 등에 업어 크게 화제가 되었다. 북한의 최고령 성악가(서도명창)이자 인민배우 김진명은 10일 공연에서 남측의 제자 양소운(당시 봉산탈춤 인간문화재, 인천 거주)을 만났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김진명은 객석에서 나오기 시작한 추임새에 점차 놀랐다. 공연이 끝난 후, 분장실에서 스승(김진명)과 제자(양소운)는 서로 해후했고, 서로 “왜 이렇게 늙었어”라고 말하며 ‘분단의 세월’을 원망했다.

김진명은 40년만에 온 서울방문에서 남쪽에 있는 두 동생인 학명(鶴鳴), 순명(舜鳴)을 만나길 원했다. 혈육 외에 가장 궁금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1930년대 서도가요의 투톱이자, 서로 선후배 사이였던 민형식(민천식)이 아니었을까?

2021년 7월 1일은 인천독립 40년 (직할시 승격 40년)을 맞는 날이다.

인천은 행복한 축제의 분위기로 들썩인다.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싸리재 키즈’인 나는, 마음과 몸이 동인천역 북광장으로 향한다.

널찍한 북광장이 시원스럽게도 느껴지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살았던 내 친구들과 거기에 있었던 인천국악원(민천식무용학원)을 떠올리니, 내 귀에는 서도소리와 장구소리가 함께 들린다.

내 친구들의 앨범 속에도 학예회 무용사진과 함께, 인천대표로 서울가서 공연한 무용사진도 있을 것 같다. 화평동 수문통에서 살던 내 친구들도 그 때를 기억하겠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동인천역에서 화평동수문통까지 시끌벅적하고 복작복작했던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민천식을 비롯해, 김길자, 김정순 등이 거기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

이들이 있었기에, 인천이 문화도시로 성장했다! ‘인천국악의 대들보’이자 ‘인천무용의 밑거름’이 된 이들 덕분으로,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고 꽃을 피웠다!

잊지 않을게요. 잘 이어갈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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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윤중강 문화재위원, 국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