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상장(敎學相長)의 학문적 교유(交遊)와 보인(輔仁)의 참된 우정

구봉, 우계, 율곡 세 사람의 교유는 막역하기로 널리 알려져, 당시 파주를 중심으로 20세 무렵부터 함께 학문을 절차탁마(切磋琢磨) 하고, 변치 않는 우정을 나눈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은 사이다.2 이러한 세 유학자들이 나눈 학문적 교유와 참된 우정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삼현수간』이다. 세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도학(道學)을 함께한 도우(道友)로서 평생 돈독한 우정을 지니며 살았다. 구봉은 경기도 파주 구봉산(현 심학산) 아래에 근거지를 두었으며, 율곡은 본가가 경기도 파주 율곡촌(栗谷村)이었고, 우계 또한 경기도 파주 우계(牛溪)를 연고로 하여 지역적 연고가 거의 같았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도학에 뜻을 두고 생장한 세 사람의 우정은 평생 변함이 없었고, 상호 격려하고 충고하면서 조선의 대학자로 대성하였다.

교유관계에서 상호 존경하고 신뢰하면서도 학문적 비판과 인간적 충고를 서슴지 않았던 세 사람의 참된 우정, 그리고 인간미와 도학자로서의 면모가 『삼현수간』의 편지글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구봉은 중년 이후 천민의 신분으로 환천 되었고, 각기 다른 개성과 학문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돈독한 우의를 유지한 것은 매우 이채로운 일이다. 이들 세 사람의 학문적 성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율곡은 뛰어난 지혜와 자득(自得)으로3 경전의 맥락보다는 상황적인 변통을 강조하였다. 수양론에서 방법적인 경(敬)보다는 목적성을 지닌 성(誠)을 더 강조하였다.4 우계는 부친인 성수침과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섬겼고, 가학의 가풍을 지녀 경(敬)을 학문의 기조로 삼았으며, 은거자수(隱居自守)하고자 하는 규범적이며 겸양의 덕을 지닌 성품이었다.5 구봉은 당대 8문장(八文章)의 한 사람이었으며,6 시(詩)의 산림삼걸(山林三傑)로 일컬어질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다.7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조선 최초의 학술서적인 「태극문(太極問)」을 지었으며,8 율곡도 인정할 만큼 성리학에 해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9 무엇보다도 조선시대의 예학서 가운데, 관례·혼례·상례·제례의 4례(四禮)를 모두 갖춘 본격적이면서 최초의 주석서인 『가례주설(家禮註說)』을 지었으며, 우계·율곡·정철을 비롯하여 김장생 등의 여러 제자들과 예에 관하여 강마하였던 예학서인 『예문답(禮問答)』을 저술하였다.10 이와 같이 지혜가 뛰어나고 학문적 경지가 높았던 구봉은 우계와 율곡 사이에서 성리학과 예학, 경세관과 출처의리, 수양방법 등 실천적인 여러 면에서 중도적인 교량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주로 물으면 구봉이 대답해주는 위치에 있었다고 가늠할 수 있다.

이는 『삼현수간』에 잘 나타나는데, 구봉과 우계는 주로 예학과 수기(修己)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고, 구봉과 율곡은 국가기강의 방책을 대비하고 세도(世道)를 바로잡으라고 권면하는 글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도우를 교유함에 있어서 각각 의양(依樣)과 규범적인 우계, 자득과 변통이 많은 율곡, 직선적이면서 준엄했던 구봉은 각각 성품에 따라 학문과 출처의리의 길이 다른 것을 인지하여 서로 부족한 덕을 보인(輔仁)11하여 교유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율곡, 우계, 구봉 지음, 임재완 옮김, 『세 분 선생님의 편지글』, 호암미술관, 2001, 13쪽.
2. 『牛溪集』, 「牛溪年譜」
3. 『花潭集』, 序: “栗谷嘗以退溪之依樣 勝於花潭之自得”
4. 곽신환, 「우계와 율곡 이이」, 『우계학보』 제30호
5. 『牛溪集』, 연보보유, 권1, 「덕행」
6. 『宋子大全』, 권172, 「龜峰先生宋公墓碣」: “首與友善而推許者 李山海 崔慶昌 白光勳 崔岦 李純仁尹卓然 河應臨也 時人號爲八文章”
7. 『壺谷詩話』, 南龍翼:“金梅月 南秋江 宋龜峰 山林三傑”
8. 『龜峰集』, 권3, 「雜著」, 〈太極問〉
9. 『栗谷全書』, 권10, 書二, 「答成浩原」: “今之所謂窮理者 少有可語此者 怪且非之者 固不足道見之而自謂相合者 亦不可信其有見也 惟宋雲長兄第 可以語此 此珥所以深取者也兄亦不可輕此人也”
10. 김창경, 「구봉 송익필의 도학사상 연구」, 충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1, 151~152쪽11. 『論語』, 「안연(顔淵)」: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다양한 가치를 집대성한 삼현(三賢)의 정신

『삼현수간』에는 이기(理氣)와 인심·도심 등 성리학을 논한편지글과 수양에 대한 견해, 예제시행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는 예학(禮學)에 관한 글, 그리고 삼현의 학문적 견해의 글 등이 실려 있다. 이에 나타나는 삼현의 교유는 16세기 조선의 성리학 기반을 완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조선 개국 이후 150여 년 동안 정립되지 않은 예학을 삼현이 절차탁마하여, 조선의 독자적 예교(禮敎)와 유교적 의례제도의 기반을 창출하였다. 당시 서예사적인 면에서도 소중한 자료가 된다.

『삼현수간』에 실려 있는 구봉의 초서체 등도 훌륭하다고 평가되며, 율곡의 친필은 율곡문집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희귀한 자료로 꼽힌다. 소통도 돋보인다. 삼현은 그 자신들의 학문적 교유와 우정의 도리를 실천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제자들에게도 문호를 열어서 세 사람 모두에게 배우게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예학의 종장이라 일컬어지는 김장생과 김집, 조헌 등 수많은 유학자가 삼문(三門)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학문을 성취하게 되어 후일 기호유학의 큰 산맥을 형성하는 공이 되었으며, 한국유학사상사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유학자의 도리뿐만 아니라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삼현은 존경과 배려의 인간미 넘치는 우정을 보여준다. 또한 신분과 생사를 초월한 삼현의 교유는 오늘날까지도 선비정신의 모범이 된다. 마지막으로 『삼현수간』은 그 속에 담긴 당시의 학술적, 역사적, 향토사적 자료와 선비들의 생활상 등 문화적 가치가 높아 보물 제1415호로 지정되어 더욱 뜻깊게 전해지고 있다.

삼현이 학문적인 교유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한 정(情) 또한 나누고 있는 모습에서 한 시대를 대변하는 유학자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는 『삼현수간』. 세 사람의 실천적 선비정신은 21세기 현대에서도 자긍심을 높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귀감이 되어 청소년 인성교육에도 활용가치가 높아 큰 의의를 지닌다.

글. 김창경(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연구원)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