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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잊지 않고 잇다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0.12.25]

잊지 않고 잇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이지만, 올 한 해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다. 올해 초 영화 <기생충>의 반가운 소식에 이어 K-POP 그룹 BTS의 빌보드 1위 그리고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의식 수준까지, 우리의 이런 역량은 ‘역사’에서 비롯됐다. 이제 그 역사를 잊지 않고 이어나갈 방법을 고민할 시기이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원훈(元勳)이자 한국 침략의 원흉(元兇)으로 평가받는 이토 히로부미는 사생활에서 재물과 여색을 지나치게 탐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본의 어떤 잡지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그의 그림자를 ‘계집 여(女)’자 모양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토의 그런 ‘약점’을 안 한국의 고관과 부호들은 통감으로 부임한 그에게 뇌물 바칠 기회를 찾느라 열심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이토에게 고려청자를 바쳤던 듯하다. 그는 돌연 세상에 둘도 없는 고려청자 애호가가 되었고, 소문을 들은 한국인들이 다투어 고려청자를 구해 바쳤다. 어느 날 이토는 자기 소장품 중 하나를 고종에게 선물했다. 고종은 “이토록 진귀한 물건을 공은 어디에서 구하셨소?”라고 물었다. 이토는 무시하는 어투로 대답했다. “이 청자는 귀국 전(前) 왕조 시대의 물건입니다. 이 아름다운 청자의 맥이 끊어진 것을 본인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큰 사업을 한 조선인 부호들은 종종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과 친분을 다져 놓아야 총독부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행길에는 큰 상자 몇 개씩이 따라붙었다. 상자 안에는 대개 도자기와 서화 등 조선의 문화재를 넣었다. 문화재는 받는 사람의 품위를 고려한 최선의 ‘뇌물’이었다. 일본 시장에서 유통되는 한국 문화재를 모두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가져간 것보다 조선인들이 ‘선물’로 바친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1965년 한일 간의 국교가 정상화하자,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조선 땅에서 ‘내지인’으로 살다가 패전 이후 귀국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향수(鄕愁)를 자극하는 땅이었다. 그들은 한국 땅에 두고 간 집과 골동품, 서화 등을 다시 찾고 싶어 했다. 집은 대부분 그대로였으나, 골동 서화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인사동 골동품 상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너무 즐겁고 흥분되었기 때문일까? 한국인 골동품상 한 명이 일본인 관광객에게 광고전단을 나눠 주다가 체포되었다. 그 전단에는 ‘대동아공영권 만세’라고 적혀 있었다. 그에게 일제가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한국인에게 자행했던 온갖 만행에 대한 기억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천황폐하 만세’라도 부를 사람이 많았다.


식민지 시절에야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국보급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걸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가 단속을 시작했다. 그러자 골동품상들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농수산물이나 공산품 상자에 골동 서화를 숨겨 보내는 묘수를 찾아냈다. 세관 직원들에게 컨테이너를 일일이 뒤져야 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한동안 이런 일들을 겪고 난 뒤에야, 문화재 밀반출 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


제국주의는 세계로 팽창하려는 충동일 뿐 아니라, 세계 최선, 최상의 것들을 자국 땅에 가져다 놓으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린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의 뛰어난 예술품들이 제국주의 국가의 박물관이나 부호들의 자택으로 옮겨졌다. ‘문화재 약탈’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경로와 과정도 다양했다. 어떤 나라의 문화재가 외국에서 떠돈다는 것은, 그 나라가 식민 통치를 겪었음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외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되찾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재가 외국 땅에서 떠돌게 된 이유를 잊지 않는 일이다.

01.국보 제294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02.견갑형청동기 03.나전국화넝쿨무늬합


글. 전우용(역사학자)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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