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들이 맞이하는 보문사 입구


▲고목나무들이 정자처럼 자리한 사찰 경내

낙가산(267m)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는 불교가 성하던 통일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생겨난 오래된 절이다. 석모도에는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 등 세 개의 산이 있어 삼산면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보문사는 해명산과 상봉산 사이에 있는데 절이 자리한 곳을 낙가산이라 부른다. 인도의 불교 성지였다는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따온 말이다.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바다조망 관음성지로 손꼽힌다. 그러다보니 속칭 ‘기도발’이 좋은 곳으로 소문난 사찰이다. 관음성지란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의미다.

관세음(觀世音) 보살은 한자에서 보듯 ‘세상의 소리 특히 고통에서 나오는 울부짖음을 듣는 존재’다. 보살은 여자 신도나 고승(高僧)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티베트의 지도자로 잘 알려진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현신(現身)으로 불린다.

열반한 부처 옆으로 누워있는 와불도 유명

▲불자 가족의 기도

▲저마다 다른 표정을 한 부처의 제자들​

▲열반한 부처가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한 와불

작은 장터가 들어선 매표소를 지나면 절만큼이나 오래된 허리 굽은 노승 같은 소나무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자 고목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절 마당에서 은은한 향을 머금고 서있다. 향나무는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어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짐작케 했다. 향나무는 특유의 뒤틀림 모양으로 자라는 예술작품 같은 나무라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큰 느티나무가 정자처럼 서있는 경내에는 석굴사원과 저마다 다른 표정을 한 오백 나한상이 있다. 깨달음을 이룬 불교 수행자 500인을 이르는 나한상의 표정이 저마다 달라 재밌다. 화강암 바위를 뚫어 만든 석실 속에서 여러 신자들이 절을 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이의 뒷모습은 경건하면서 왠지 뭉클하다. 불경을 외는 스님의 목탁소리, 은은한 범종의 울림,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북소리를 듣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열반한 부처가 옆으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한 와불(臥佛)도 빼놓을 수 없다. 이맘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소원을 들어달라며 빌다보니 부처님도 무척 피곤해 누워 쉬고 싶겠다. 인천광역시 민속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큰 맷돌도 눈길을 끈다. 한 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맷돌이다.

​▲끊임없는 정진을 의미하는 목어(木魚)​
 

▲도교, 토속신앙이 담겨있는 삼성각

사찰의 중심 전각인 극락보전 댓돌에 앉아 바다내음이 섞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종 소리를 감상했다. 스님의 목탁소리만큼이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풍경종 소리. 평소보다 시간이 몇 배나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사찰의 풍경종은 전각 처마에 달려있는데 거미의 접근을 막아 거미줄이 생기지 않게 해준다. 풍경종이나 목어(木魚) 등 사찰엔 물고기 모양의 문양이나 조형물이 많다. 눈을 뜬 채로 잠을 자는 물고기처럼 끊임없이 불도에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경내 전각 가운데 삼성각(三聖閣)도 들러야할 곳이다. 토속신앙이 담겨있는 불전으로 다양한 민간신앙의 신(神)들과 호랑이 등을 그린 탱화가 흥미롭다. 삼성은 칠성(七星)과 독성(獨星) 및 산신(山神)을 의미한다. 불교가 전래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믿어오던 샤머니즘과 도교를 배척하는 대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 포용한 것이다. 불교가 오랜 역사와 함께 한국인의 민족종교가 된 비결이기도 하다.

보문사를 관음성지로 격상시켜준 마애석불좌상 ​

▲마애석불을 보러 가는 낙가산 돌계단길​
 

▲주문도·아차도·볼음도 등이 보이는 강화 바다풍경​

보문사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낙가산 중턱 마애석불을 만나려면 지난한 불도(佛道)의 길을 상징하는 400여 개 긴 계단을 올라야 한다. 작은 무인도가 그림처럼 떠있는 강화바다 풍경이 내내 펼쳐져 덜 힘들다. 계단 초입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적혀있다. 계단 양편으로 소원지가 붙은 연등이 이어지고, 사찰 곳곳에 합격과 건강, 사업번창을 비는 소원지와 기왓장이 가득하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교가 한국에서는 기복신앙이 됐음을 실감했다. 

몇 년 전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오체투지'(五體投地,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으며 배를 땅에 깔고 다리를 쭉 편 후 머리를 땅에 닿도록 하는 절)를 하며 홀로 길을 가는 아저씨와 그의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대체 무엇을 기원하기에 그리 힘들게 길을 가는지 궁금한 나머지 물어 보았다. 그의 딸을 통해 들은 대답은, 부처님을 향한 공경과 불도(佛道)의 추구 그리고 마음의 안식과 평화였다.

▲보문사를 관음성지로 만든 마애석불좌상
 

▲보문사 앞에 이어지는 강화나들길과 온천​

높이 9.2m, 폭 3.3m의 장대한 마애석불좌상이 절 앞에 드넓게 펼쳐진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마애불(磨崖佛)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다. ‘눈썹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지붕처럼 튀어나와 눈비를 가려준다니 절묘하다. 근대기인 1928년에 만든 이 관음보살은 보문사가 관음성지로 격상케 한 주인공이다. 친근한 인상의 마애불 시선과 방향을 같이하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주문도·아차도·볼음도 등이 정겹게 떠있는 강화바다가 펼쳐진다.

해질 무렵엔 멋진 노을이 수면을 붉게 물들이며 드리워진다. 절 주변에 온천과 자연휴양림, 펜션이 들어설만했다. 온천은 특히 실외노천탕이 인기인데 바다를 바라보며 풍욕을 하고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섬 속의 섬 석모도 보문사까지 올라와서 마애불만 보고 가는 것은 좀 아쉽다.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하루를 머물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유가 생기겠다. 보문사는 강화나들길 11코스 ‘석도모 바람길’의 시종점이기도 하다. 석모도 유일의 민머루 해변, 장구너머 포구, 석포리 선착장 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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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종성 i-View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