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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유산 답사기]금강산 ‘십이폭포’ 를 바라보는 두 전망대 불정대(佛頂臺)와 은선대(...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0.11.24]

금강산 ‘십이폭포’ 를 바라보는 두 전망대 불정대(佛頂臺)와 은선대(隱仙臺) 금강산 외금강 지역에는 ‘십이폭포’라는 명소가 있다. 폭포수가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고 12번이나 방향을 꺾으면서 흘러내려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기이한 경관은 조선 후기에 기행문화가 유행하고 금강산 유람이 늘면서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01.정선, <불정대> 《해악전신첩》 견본담채, 33.6×25.7cm, ⓒ간송미술관 02.傳 김홍도, <은선대> 《해산첩60폭》 견본담채, 30.4×43.7cm, ⓒ개인소장

명소는 하나, 전망대는 둘

조선시대에 불정대와 은선대는 십이폭포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했다. 18세기 전반에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겸재 정선은 ‘불정대’에서 본 모습을 그렸고, 18세기 후반 사실적인 풍속화로 이름을 날린 단원 김홍도는 ‘은선대’에서 본 모습을 그렸다. 하나의 명소를 바라보는 전망대의 인기가 시대에 따라 변화된 것이다.


정선은 불정대에서 바라본 십이폭포를 그렸지만 동시대에 활동한 김창협, 김창흡, 이하곤 등의 문인들은 불정대에서 보는 장면보다 은선대에서 보는 것이 훨씬 장관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이하곤은 불정대와 은선대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내가 불정대에 올라 “한쪽 편에서 서쪽 폭포를 보니, 이것은 아마 은선대만 못할 것이리” 라고 읊었다. 은선대에서 보는 장점은 정면으로 폭포를 보는 데에 있으니, 불정대는 진실로 한 점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은선대는 다만 하나의 산록으로 대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또한 위태롭게 비스듬히 기울어 사람이 즐겁게 여길 수 없다. 그러나 불정대는 그렇지 않아서 기이한 암석이 첩첩이 싸여 대를 이루고, 나무다리 하나만 있어 운치가 대단하다. 이것은 은선대가다시한 수 지는 것이다. 온전한 공교로움을 물체에 주지 않은 것은 조화옹(造化翁)의 장난기 섞인 극 같으니 어찌하리오.*


이하곤은 은선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십이폭포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전망대 자체만 비교해 보면 기이한 암석으로 반듯한 대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불정대가 평범한 은선대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보는 자리에 따라 다른 매력

불정대는 나무다리 하나로도 훌륭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불정대가 지닌 형식적 아름다움은 화가인 정선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정선의 선택에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불정대에서 바라 본 십이폭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불정대에 올라가니 천심절벽을 반공에 세워두고, 은하수 한 굽이를 촌촌이 버혀내어, 실같이 펼쳐있어 베같이 걸렸으니, 도경 열두 굽이 내 보니 여럿이라. 이적선이 이제 있어 고쳐 의논하게 되면, 여산이 여기보다 낫단 말 못하리라.


조선 후기 문인들은 정선의 그림과 정철의 「관동별곡」을 즐겨 비교하곤 했다. 후계 조유수는 정선의 <불정대>에 붙인 제시에서 “천추의 불정폭, 두 정씨 드러내니, 뒤에는 원백의 그림이 있고 앞에는 계함의 가사가 있네(『后溪集』 卷二 「題四帖小屛五絶」, 佛頂臺)”라고 하였고 사천 이병연은 “천추에 빛날 송강 노인의 노래에 있듯, 불정대 앞에는 외나무다리, 병 많은 중년이라 심력 약해서, 지팡이 의지하고 산중턱 되내려오네”라고 노래했다.이와같이 정선의 그림과 정철의 가사는 문학과 회화를 대표하는 쌍벽을 이루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선과 달리 김홍도는 불정대가 아닌 은선대에서 본 경관을 그렸다. 그는 1788년 정조의 어명을 받고 금강산과 영동9군을 여행하며 여러 명승을 사생했다. 그중 십이폭포 그림을 살펴보면 한쪽 모서리에 은선대가 작게 그려져 있고 대각선 방향으로 깎아 지를 듯 웅대한 절벽과 그 위를 흘러내리는 십이폭포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정선이 진한 미점과 날카로운 수직준을 대조시켜 불정대의 정취와 봉우리의 험준함을 강조한 것과 달리 김홍도는 가늘고 섬세한 필선으로은선대와십이폭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은선대의 비중은 정선의 불정대에 비해 극히 축소되었지만 평범한 산기슭으로 그려낸 형상은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은선대의 실제 모습과 일치한다.


03.십이폭포 사진 ⓒ 『조선금강산백경』, 大阪朝日新聞社, 1913. 04. 은선대 사진(1924) ⓒ 임병목 엮음, 『금강산』下, 열화당, 2012.

두 대에 모두 오를 날을 기다리며

정선과 김홍도 외의 화가들은 어땠을까. 문인화가인 이인상은 네모진 돌을 규칙적으로 쌓아올린 석대를 그리면서 명칭을 ‘은선대’라고 적었다. 석대의 형태는 정선을 계승하고 개념은 당대의 일반적인 인식을 따른 것이다. 19세기 이후에는 경물의 형태와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욱 빈번해졌다. 민간에서 유행한 민화에서는 정선의 <불정대>에 사용된 구도와 형태를 계승하면서 ‘은선대’라고 적은 십이폭포를 많이 그렸다. 십이폭포의 열 두 굽이를12개의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금강산은 근대적 관광지로 개발되었고 은선대의 인기는 십이폭포와 함께 지속되었다. 그러나 송강 정철과 겸재 정선이 사랑한 불정대는 폭포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은선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잊혀져 갔다. 십이폭포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망대인 불정대! 금강산 길이 다시 열리면 은선대와 불정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행복한 저울질에 푹 빠지고 싶다.


* 이하곤, 『두타초』 책14, 「題一源所藏海嶽傳神帖」, 內山總圖 참고문헌박은순, 『금강산도 연구』, 일지사, 1997.이태호,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생각의 나무, 2010.최완수,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대원사, 1999.



글, 사진. 이영수(청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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