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국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18~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지난 6월 미국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18~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세종 16년(1434) 10월 2일, 서울 종로 한복판에 조선 최초의 공중 해시계가 설치됐다. 이름은 앙부일구(仰釜日晷). ‘하늘을 우러러 보는(仰) 가마솥(釜) 모양에 비치는 해그림자(日晷)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알 수 있게끔 십이지 동물을 그려 넣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종로 거리에 설치해 많은 백성이 시간과 절기를 알게 했다. “십이지신의 몸을 그려 넣은 것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뚜렷한 것은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니라.”(세종실록)

앙부일구의 귀환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앙부일구'. /뉴시스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앙부일구'. /뉴시스


세종의 애민정신이 깃든 ‘앙부일구’ 한 점이 최근 미국에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 경매에 출품된 18~19세기 앙부일구를 지난 6월 매입해 8월 국내로 들여왔다”며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지름 24.1㎝, 높이 11.7㎝, 무게 약 4.5㎏. 안쪽에 시각선(수직)과 절기선(수평)을 바둑판 모양으로 새기고, 북극을 가리키는 바늘을 꽂아 이 바늘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에 따라 시간과 날짜를 알 수 있다. 재단은 “언제 어떻게 해외로 반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세인트루인스의 골동품상에서 개인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17일 공개된 '앙부일구'의 윗면.  은입사로 새겨진 '북극고 37도 39분 15초'는 이 앙부일구가 1713년(숙종 39년) 이후 제작됐음을 뜻한다. /문화재청
17일 공개된 '앙부일구'의 윗면. 은입사로 새겨진 '북극고 37도 39분 15초'는 이 앙부일구가 1713년(숙종 39년) 이후 제작됐음을 뜻한다. /문화재청

앙부일구는 세종 대부터 조선 말까지 제작됐다. 하지만 세종 당시에 만든 앙부일구는 한 점도 남아있지 않고, 후대의 실물자료도 희소하다. 이번에 돌아온 것과 비슷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가 국내에 단 7점 전한다.

제작 시기는 1713년(숙종 39년) 이후로 추정된다. 은입사로 새겨진 한양의 위도 ‘북극고 37도 39분 15초’가 그 근거다. 조선 천문서 ‘국조역상고’에 “숙종 39년 청나라 사신 하국주가 한양 종로에서 북극고도를 측정해 37도 39분 15초의 값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은입사로 새겨진 '북극고 37도 39분 15초' 부분을 확대한 것. /문화재청
은입사로 새겨진 '북극고 37도 39분 15초' 부분을 확대한 것. /문화재청

최응천 재단 이사장은 “정밀한 주조 기법과 섬세한 은입사, 다리의 용과 거북 머리 등 장식요소로 볼 때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만든 예술품”이라고 했다.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는 “서울의 위도에서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됐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고국 하늘 아래서 정확한 시간을 알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돌아온 앙부일구는 18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볼 수 있다.

미국 경매에서 구입해 17일 공개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의 측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 경매에서 구입해 17일 공개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의 측면. /국외소재문화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