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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박제순 영세불망비’​, 을사오적 박제순비, 후세에 '반면교사'로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10.13]

을사오적 박제순비, 후세에 '반면교사'로

 

  

발간일 2020.10.12 (월) 14:41
       


미추홀 이야기 ⑧
‘박제순 영세불망비’

 

미추홀구는 인천의 중심이었다. 이곳에 인천 행정 중심지였던 도호부청사가 있었고 고구려왕자 비류가 비류백제를 세운곳도 미추홀의 문학산이었다. 미추홀은 오랜역사를 자랑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만큼 인천의 정체성을 품은 이야기도 많다. 미추홀의 숨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인천향교 앞 비석군​


인천향교 앞에는 조선시대 인천에 부임했던 인천부사 및 현감, 경기도 관찰사 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善政碑) 18기가 세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선정비라 부르지만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송덕비(頌德碑),청덕비(淸德碑),공덕비(功德碑),애민비(愛民碑)등으로도 불린다.


보통 선정비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관아 근처 길목이나 고개에 설치했다. 이곳에 있는 선정비들도 인천도호부 자리인 문학초교 앞에 5기가 있었고, 1949년 선정비 훼손을 걱정해 부내에 흩어져있던 10기를 문학초교 앞으로 옮겨놓았다가 1970년에는 선정비 3기를 더해 향교 앞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그중 황운조의 비가 2기라 실제 인물은 17인이다.


이 선정비 중 1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비석들은 미추홀구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말썽 많은 비석이 바로 ‘박제순 영세불망비’이다.


▲인천향교 앞 선정비군​


▲비신(碑身)이 빠진 곳이 을사오적 박제순의 선정비 자리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제순의 영세불망비


박제순은 1888년 5월 인천부사 겸 감리인천항통상사무(監理仁川港通商事務)로 부임해 1890년 9월까지 2년 5개월간 복무했다. 그리고 1년 뒤인 1891년 8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행부사박공제순영세불망비(行府使朴公齊純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그러나 박제순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할 당시 외부대신으로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과 함께 고종의 비준도 없이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와 ‘한일협상조약‘을 강제 체결해 ‘을사오적’에 올랐다. 또 1910년에는 내부대신으로 경술국치인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해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았다.


그 후 박제순은 일제로부터 자작작위를 받고 중추원 고문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매년 1,600원, 현재 3억 정도의 수당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결국 그의 이러한 행위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주관으로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매국(賣國) 행위로 분류되어 등재되었다.


▲2005년 철거되어 담장 아래 방치된 박제순 선정비


2005년에 박제순의 선정비가 향교 앞에 세워져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철거 움직임이 일어나 박제순의 비에 ‘을사오적 매국노 박제순의 비’라는 표지를 붙이고 즉각 철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인천시는 박제순의 선정비를 비석 받침돌에서 뽑아 재현한 인천도호부 담장 밑에 부직포를 덮어 방치했다.


그러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박제순 선정비 처리여부가 언론 보도로 재조명되었고, 인천시는 새로 구성한 시사편찬위원회에 의견을 물었다.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박제순도 인천의 한 역사인 만큼 원래 위치에 다시 세우고 안내판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미추홀구는 박제순의 비석을 어떻게 처리할지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비석을 묻어 박제순의 비를 시민들이 밟고 다닐 수 있게 하자, 비를 눕혀놓자, 거꾸로 세우자, 쪼개버리자, 박물관으로 옮기자 등 많은 의견이 나왔다.
 


▲안내판과 눕혀놓은 박제순 선정비


결국 비석을 다시 향교 앞 비석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눕혀놓고 안내판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국가와 민족에 해악을 끼치고 치부(致富)한 인간은 이렇게라도 비석을 눕혀놓아 후손들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주어야 한다.


그동안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정기가 얼마나 훼손됐는가.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죽어서도 치욕을 당해야 한다는 당위를 후손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글·​ 사진  천영기 학산문화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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