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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식과 전통 지식의 풍성한 결합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이 땅에서 살아오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이론과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지식은 전통적인 자생적 지식과 결합되어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삼국시대에 들어온 불교는 종교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명으로서 ‘의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종교와 의료가 확실히 구별되지 않던 당시에 종교적 실천과 의료적 실천은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기도와 법회, 향 피우기 그리고 엄격한 계율 지키기는 질병을 치료하고 공동체 내의 질병 전파를 막는 역할을 했다. 어지러웠던 통일신라 말기에는 약사여래 신앙이 유행하며,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민중은 신앙의 힘으로 질병을 극복하고자 했다.
고려시대 역시 불교가 융성하던 시기였지만, 종교와 분리된 세속적 의학의 발전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중국의 의서가 대량으로 들어오고 새로운 의학적 지식을 쌓아갔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생적 의학이 본격적으로 자라났다.
중국 의서에 나오는 약재가 아니라 우리 산하에서 나는 약재를 통해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려는 노력이 ‘향약(鄕藥)’에 대한 관심과 탐구로 이어졌다. 고려 말기에 시작된 향약 연구는 조선 전기를 거쳐 『동의보감』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세종 대에 편찬된 『향약집성방』은 이러한 노력의 결집체였다. 특히 『동의보감』은 동시대 동아시아 전통의학 지식을 집대성하고 새롭게 정리한 당대 의학의 정(精)미로운 결정체였다.
건강관리와 의학, 보편적인 교양의 하나 과거 의학은 일부 전문가에게 맡겨진 지식이 아니었다. 건강의 유지는 모든 사람의 공통적 관심사인 만큼 의학에 관한 지식은 지식인이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할 교양의 하나로 여겨졌다. 특히 전문 의료인을 찾기 어려운 시골이나 산간에서는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퇴계 이황은 일종의 건강체조라 할 수 있는 도인술을 실천하여 건강을 유지했으며, 그에 관한 책도 남겼다.
세종 못지않은 호학(好學)의 군주였던 정조는 스스로 의서를 편찬하기도 했으며, 할아버지 영조의 치료법을 두고 내의원 의관들과 토론할 정도로 의학 지식에 정통했다. 정조의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효’라는 유교적 덕목이 강조된 조선시대에 부모님의 건강을 돌보는 것은 자식의 도리였고, 이를 위해 최소한의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글을 아는 선비의 사회적 의무이기도 했다. 물론 첨단의학이 발전한 오늘날 누구나 의학 전문지식을 갖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을 자신이 책임지고 돌보는 그 태도만큼은 조상들에게서 배워야 할 지혜가 아닌가 한다.
글. 여인석(연세대 의대 의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