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대 공원에 그려진 귀주대첩 관련 벽화(사진=낙성대공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살수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으로 알려져 있는 귀주대첩. 이 전투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은 물길을 막고 적군을 기다리다가 일시에 둑을 허문 수공(水攻) 작전으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시 수공작전으로 유명한 살수대첩과 혼동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래 낙성대 공원에 그려진 벽화처럼 거란 기병대가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이미지를 대부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귀주대첩에선 수공작전이 펼쳐지지 않았다. 고려군이 거란군을 상대로 수공을 펼친 것은 귀주대첩이 벌어지기 전에 치룬 흥화진(興化鎭) 전투에서였다. 흥화진 전투는 오늘날 평안북도 의주 일대인 흥화진에서 도강 중인 거란군에게 초전에 타격을 줬던 전투였다.
거란군 침입로(사진=문화콘텐츠닷컴)
실제 귀주대첩의 승리는 수공보다는 철저한 전략의 승리였다. 흥화진 전투 이후 거란군 총사령관인 소배압(蕭排押)은 보급선이 끊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곧장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향해 진군했다. 빠른 기동성을 자랑하는 기병으로 수도를 함락시키고 왕을 먼저 사로잡으면 쉽사리 이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고려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 상원수 강감찬(姜邯贊) 장군은 20만 병력을 소집해 거란군의 침투경로마다 분산배치하고 청야작전(淸野作戰)을 펼쳐 침투경로에 놓인 마을들을 모두 소개해버렸다. 결국 소배압의 거란군은 개경까지 내려오는 동안 전투력이 크게 상실됐다.
거란군이 퇴각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다시 20만 고려군은 거란군의 퇴각 길목에 놓여있던 귀주에 집결했다. 결국 귀주에서 20만 대군과 만난 소배압의 거란군은 죽기살기로 싸웠지만 전군이 포위돼 크게 패하고 10만 대군은 전멸했다.
참전 병력 대부분이 거란군 중에서도 황실 호위를 담당하던 최정예부대였고 참전한 사령관들 중에는 요직에 앉아있던 문신들도 많아서 거란은 이 패배로 엄청난 인적손실을 당하게 됐다. 거란 역사를 기록한 요사(遼史)에서도 이때의 패배로 벼슬아치가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글만 알면 바로 관리에 등용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강감찬장군 영정(사진=문화콘텐츠닷컴)
이 귀주대첩은 수공작전이란 오해와 함께 강감찬 장군에 대한 오해까지 낳았다. 강감찬이란 인물은 무장 출신이 아니라 문과에 장원급제해 귀주대첩 이전엔 한번도 전투에 나간 적이 없었던 문신이었기 때문이다. 귀주대첩 이전에 그는 그다지 눈에 띄는 관료는 아니었다고 한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바쁘게 지방과 개경을 오고가며 공무를 봤던 전형적인 공무원의 삶을 보냈다. 전체 생애를 통틀어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섰던 것도 귀주대첩과 관련한 전투들이 이어지던 1019년 한해 뿐이었다고 한다.
낙성대(落星垈)에 대한 설화 또한 그가 원래 문신임을 잘 보여준다. 그가 태어날 때 문곡성(文曲星)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화가 있으며 이로 인해 그가 태어난 곳을 낙성대라 부르는데, 문곡성은 원래 북두칠성 중 네 번째 별로 문(文)과 재물을 관장하는 별이다. 하지만 현재 낙성대공원에는 강감찬 장군의 기마상으로 등장하며 민간설화와 무속에서도 줄곧 장군의 이미지로 구축돼있다.
낙성대 공원에 있는 강감찬 기마상(사진=두산백과)
또한 강감찬 장군은 키가 아주 작고 외모가 볼품없었다고 한다. 야사에는 원래 매우 잘생기게 태어날 운명이었으나 얼굴이 너무 잘 생기면 큰일을 못한다 하여 마마신을 불러 외모를 볼품없게 만들어 태어났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참전 당시 나이도 일흔을 넘었던 것을 고려하면 전선에 직접 나가 엄청난 무예로 적장들을 물리치기보다는 뛰어난 작전을 입안한 참모로서 작전 전체를 통솔하는 능력이 탁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