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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단오(端午)의 꽃, 사뿐사뿐 나빌레라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6.26]

단오(端午)의 꽃, 사뿐사뿐 나빌레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 빈순애 무대 위 어느 대가의 노구(老軀). 무거울 법도 한데 사뿐사뿐 힘들이지 않은 몸짓이 묘하게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을 기원하는 그의 노랫가락은 아름답고 평안하다. 가히 단오의 꽃이라 칭할 만하다. 절도와 기품이 묻어난다. 강릉단오굿 매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개최되는 단오제에서 행해지는 무속 의례로 무업을 대대로 이어온 세습무들이 주최한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어머니와 집안의 재수 발복을 기원하는 세존굿,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건강과 안전을 빌어주는 군웅장수굿, 질병을 물리쳐주는 손님굿 등이 강릉단오굿의 백미로 꼽힌다.

복을 빌어주는 장인의 노랫가락

“수로오자 수로자 자아 세존님네. 대관령 범일국사성황님 아흔아홉 굽이굽이 모셔놓고 모든 분들 만수무강하고 소원성취하길 비나이다.”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강릉단오제의 여러 굿거리 중 생산을 관장하는 신(神)인 세존과 삼신할미를 대우하고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세존굿’. 연습실 한편에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무가(巫歌) 한 소절이 귀를 깨운다. 단단하고 처연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 단오굿 예능보유자 빈순애 선생. 40년을 훌쩍 넘긴 무녀로서의 외길이 화석처럼 단단하게 새겨진 선생의 목에서 노랫가락처럼 굽이굽이 굴곡진 세월이 아련하게 배어 난다.


열일곱, 무녀의 길에 들다

빈순애 선생은 동해안 망상의 한 어촌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아들만 다섯이던 집안에서 어부 일을 하던 부모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고, “딸년은 적당히 배워서 시집이나 가면 그만”이라며 가벼운 외출조차 엄하게 다스렸던 어머니 밑에서 갈 데라고는 집 뒤에 터를 잡고 있던 서낭당뿐이었다. 아이들이 간담 서늘해하던 곳인데 요상하게도 마음이 참 편했단다.


“신나서 춤도 추고 휘파람이 절로 나왔어요. 찔레도 꺾어 먹고 서낭당 소나무 위에도 겁 없이 올라가고 놀이터마냥 날만 새면 들렀지요. 놀다 보면 이상하게 묘한 느낌이 올라오곤 했어요. 까닭 없이 몸도 아팠고.”


01. 군웅장수굿. 군웅장수굿은 일명 놋동우굿이라고도 부른다. 강릉단오굿의 군웅은 장수신의 성격이 강하다. ⓒ강릉단오제보존회 02.등노래굿. 굿당에 매어놓았던 용선을 흔들면서 무녀가 노래를 부른다. 신이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강릉단오제보존회

남달랐던 그의 모양새는 금세 동네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마을 행사에 단골로 드나들었던 한 무녀의 귀에도 전해졌고, 결국 열일곱이 되던 해 그는 홀리듯 그 무녀를 따라 보따리를 쌌다. 당시 동해안의 세습무는 무녀와 남성악사인 양중이 짝을 이루어야 굿이 성립되기 때문에 조혼을 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국악을 가르쳐준다기에 따라갔다가 덜컥 그 집 둘째며느리가 됐어요. 친정에서는 난리가 났지요. 열일곱에 갔다 열아홉에 돌아와 겨우 부모님 승낙을 받았어요. 그렇게 세습무의 길로 들어서게 됐지요.”


당시 그가 따라갔던 무녀가 바로 오늘날의 단오굿을 전수한 스승이자 동해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고(故) 신석남 선생이었다. 그 시어머니 밑에서 어렵사리 귀동냥으로 청보장단, 제마수장단을 익힌 선생은 혹독한 수련을 거쳐 단오굿의 다양한 굿거리와 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2000년 마침내 시어머니에 이어 강릉단오굿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굿으로 승화된 굴곡의 역사

“수술하고 병원에 드러누워 있을 때도 ‘강릉단오굿’ 하면 복대를 매고 나갔어요. 아파 죽더라도 단오굿은 포기할 수 없으니 아무래도 굿판에서 죽지 싶어요.”


올해 강릉단오제보존회 회장직을 겸하게 된 빈순애 선생의 삶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어렵사리 결혼을 승낙한 아버지는 하필이면 그날 바다에서 돌아가셨고, 첫딸도 다섯이 되던 해에 물에서 운을 다했다. 생활력 없던 남편마저 서른일곱에 암으로 떠나보내고 시어머니 봉양에 시동생까지 줄줄이 건사해 온 세월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03. 성주굿. 성주는 집을 관장하는 주신이다. 각 집안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굿으로 무녀는 성주굿을 할 때 가장을 상징하기 위해 갓을 쓴다. ⓒ강릉단오제보존회 04. 일상에서의 그녀는 여느 어머니들처럼 푸근하고 편안하다.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2층 연습실에서 만난 빈순애 보유자

“구구절절 말로 다 못하지요. 사람들은 제가 소리하고 춤추고 하니 시절 좋은 줄 아는데 남들 칠십 평생 동안 겪을 일 저는 육십 전에 다 끝낸 거 같아요.”


숙련된 장인의 길에 시련은 필수요, 덕이었을까. 긴 세월을 오롯이 품어낸 선생의 굿판에는 견고함을 넘어 보는 이들을 압도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살아 꿈틀거린다.


예순셋, 꽃이 된 무녀

“강릉단오제보존회 지원 좀 잘되는 거. 그거 말고는 바라는 거 하나도 없어요. 전수받고 있는 제자도 몇 되고 아직은 좀 덜 여물었어도 다들 열심히 하고 있고요. 나도 한 10년 넘으니까 조금 알겠던데. 직접 부딪쳐 보고 스스로 어떻게 갈고닦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거꾸로 하든 앞으로 하든 내가 죽고 나면 알아서들 잘하겠지요.”


현재 전수교육조교 2명을 비롯해 빈순애 선생의 첫째 딸에 이어 손녀딸까지 대를 이어 이수자와 전수자로 각각 선생에게 굿을 전수받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로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무녀를 비롯해 단오굿을 함께 이끌어가는 악사가 직업적으로 매진하기에는 여전히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다.


“좀 구구절절한 세월을 보내긴 했어도 저는 사실 편견이나 남들 시선은 하나도 안 두려웠어요. 딸 둘 사춘기 겪고 시집보내고 할 때는 조금 힘들었지. 남들이 그래요. 저렇게 아픈데도 굿판에 서면 아픈 게 하나도 안 보인다고. 감사하지요.”


TV로, 유튜브로 무속인들이 해원(解寃)하는 시대라지만 한때는 그 설움이 오죽했을까. 예순셋의 세월, 여러 사연을 떠안고 살아오는 동안 두 다리는 차츰 힘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땅을 딛고 서 있는 한,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은 나비처럼 신명 나게 무대 위를 꽃피울 것이다.



글. 김은섭 사진. 김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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