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 무장한 기마 무사적 전통

활과 화살은 또 다른 원거리 무기인 화약 무기가 도입된 근세까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된 기본 무기 중 하나다. 우리 민족은 북방 초원에서 개발된 뿔과 목재 등의 재료를 합성해 작지만 탄성이 매우 높은 활을 제작했고, 뛰어난 기마술을 바탕으로 말을 달리며 활을 쏠 수 있는 전투 기술을 익혔다. 남만주 삼림 지역의 작은 세력이었던 고구려가 주변 세력을 격파하고 강대국을 건설해 중국 세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활과 기마술을 결합한 우수한 전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 벽화 중 말을 탄 무사가 호랑이와 사슴을 쫓아가며 활로 사냥하는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 준다. 삼국시대에는 활 이외에도 기계장치로 된 활인 쇠뇌, 즉 노(弩)도 여러 종류로 제작해 전투에 활용했다. 특히 7세기 중반 신라에서 개발한 천균노(千鈞弩)는 당나라에서도 탐을 냈다고 할만큼 매우 유명하다. 당시 천균노는 1,000보(步), 즉 1,200m가 넘게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는 명적(鳴鏑)과 같은 소리 나는 화살과 도끼날 화살촉 등을 개발해 각종 전투 상황에 활용했다. 전투용 화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으로, 조선의 전통 장기로 널리 알려진 것이었다. 편전은 날아가는 속도가 빠르고 화살촉이 예리해 철갑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화약 무기가 도입되기 전 고려시대에 개발된 편전은 화약 무기가 배치된 이후에도 기병의 무기로 널리 사용됐다. 16세기 말 이후부터 일본에서 입수한 조총(鳥銃) 등 다양하고 우수한 개인용 화약 무기가 널리 사용됐지만, 우리는 19세기까지 기병을 중심으로 각종 활과 화살을 전투용 무기로 개발·사용했다.

전근대 전투의 최종 승패를 가른 근접전 무기

화약 무기나 활과 같은 원거리 투사 무기로는 적군의 공격을 완전히 저지할 수 없어 전투의 최종 단계는 반드시 창검을 지닌 병사들의 근접 백병전이 전개됐다. 근접전 무기의 대표적인 것이 각종 창과 칼이다.

근접전 무기의 대표인 칼은 재료 및 용도, 크기 등에 따라 여러 형태로 구분되지만 크기에 따라 장도(長刀) 혹은 장검(長劍), 단도(短刀), 비수(匕首)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칼이 전투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청동기시대 이후였다.

한반도 일대에서 최초 제작된 동검은 이른바 요령식 동검 또는 비파형 동검으로 불리는 것으로, 검신은 중간에 마름모꼴의 모〔稜角〕를 세운 얇은 판이고 중간이 옆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왔으며 아랫부분은 비파 모양으로 둥그스름한 형태다. 이러한 형태로 볼 때 전투 등의 목적보다는 주로 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는 검신이 좁고 긴 형태의 실전적인 세형동검이 제작됐다.

삼국시대 전기의 칼은 칼몸의 너비가 넓고 길며 무거웠지만 중기 이후로 내려오면서 차차 좁고 가벼워졌다. 중기 이후에는 칼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풍습도 나타나 칼자루와 칼집 등에 장식을 한 대도가 나타났는데, 손잡이 뒤에 둥근 고리가 달린 환두대도(環頭大刀)가 가장 대표적이다.

조선 초기 대표적인 칼인 환도(環刀)에서 기병용은 칼날의 길이가 1척 6촌(약 32cm), 자루 길이는 1권(拳) 3지(指)(한줌 세 손가락)이고, 보병용은 칼날 길이가 1척 7촌 3푼(약 35cm), 자루 길이는 2권(拳) 정도로 짧았다. 이는 휴대가 편리하고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사용하기 용이함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창은 도검에 비해 길었으므로 전근대 전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근접전 무기였다. 창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일찍 출현한 것이 모(矛)이다. 모는 창 자루를 끼우는 착병부(着柄部)에 자루를 끼워서 제작한 것으로 찌르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다음으로 과(戈)는 창 자루와 수직으로 꺾인 형태의 창으로 적의 목이나 팔다리 등을 잡아당겨 살상하던 무기로서 창자루와 창날은 끈을 묶어서 사용했다.

이후 모와 과를 합친 형태의 무기인 극(戟)도 개발됐는데, 극은 창날 가운데에 가지가 나와 있어 적을 끌어당길 때 사용하기도 하고 쓰러진 적을 찌를 수 있어 편리했다. 그 외에 낫 모양의 날을 긴 자루에 붙인 쇠낫[鐵鎌]과 창날에 낚싯바늘 형태의 구(鉤)를 붙인 구겸창(鉤鎌槍), 폭넓은 타격부에 뾰족한 모양의 큰 못과 같은 것을 박은 써래 형태의 파 등이 있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군의 우수한 근접전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명나라 척계광(戚繼光)의 새로운 전술인 이른바 절강병법(浙江兵法)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다양한 창이 제작됐다. 예를 들면 절강병법의 기본 대형인 원앙진(鴛鴦陣)을 구성하는 10명의 병사는 등패수 2인, 낭선수 2인, 장창수 4인, 당파수 2인으로 구성됐는데, 이들은 각각 표창( 槍), 낭선(狼), 장창(長槍), 당파 등을 휴대했다.

표창은 접전 시에 방패수가 적을 향해 먼저 던져서 공격하는 창이고, 낭선은 대나무의 가지를 자르지 않고 살려 그 앞에 창날을 붙인 긴 창이었다. 장창은 길이 1장 5척(약 3m)의 긴 창으로 적군을 찌를 때 사용했다. 당파는 세 창날이 붙은 창의 일종이었다. 18세기 후반 정조대에는 당시 알려진 24종의 각종 창검 및 도수 무예를 정리한 종합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편찬되어 그 면모를 잘 알 수 있다.

한국 무기의 발달과 역사적 기여

한국의 군사기술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변 지역의 도전과 자극에 대응하면서 발전했다. 주변의 우수한 군사 기술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혁신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도입한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화차나 신기전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기존의 활과 화살을 개량한 각궁과 편전같이 우수한 무기를 개발해 무기 체계를 더욱 고도화할 수 있었다.

근대 이후 군사기술 혁신에서 뒤처졌던 우리 민족은 결국 일본의 군사력에 압도되어 식민지가 됐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확인된 주변 세력 도전의 응전과 군사기술 개발의 열정은 현대 한국의 방위산업 발전의 밑거름이었다. 1970년대 초반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의 군사적 도전에 직면한 우리가 적극적인 군사기술 개발에 나서 10년이라는 기간에 미사일, 전차, 장갑차, 호위함, 각종 화기를 개발한 것은 안보적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였다.

군사기술의 개발은 무기에 그치지 않고 민간 산업에 필요한 다양한 원천 기술을 제공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고도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군사기술 개발을 통해 확보된 각종 원천 기술이 뒷받침됐다. 자동차, 선박, 통신기기, 강철 등 오늘날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술의 대부분이 이 시기 군사기술 개발을 통해 확보된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운명을 건 주요 전쟁의 승패를 보면 그 이면에는 군사기술과 무기의 우열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몽골의 원나라가 한족의 명나라에 밀려 중원을 상실한 것이 초기 화약 무기와 관련이 있음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민족이 강력한 주변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 생존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 우수한 무기의 개발, 보유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기의 존재가 군사적 측면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의 토대임을 상기하며 전근대 무기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글. 노영구(국방대학교 교수부장, 군사전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