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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다닐로바(이하 안젤리나) 안녕하세요? 러시아에서 온 안젤리나입니다.
교수 신현실(이하 신현실) 반갑습니다. 오늘 뵙고 보니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요정 같아요! 얼마 전 ‘AS YOU ARE’ 앨범도 내셨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 생활하는 건 어때요?
안젤리나 러시아에서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렇게 한국에 와서 지내게 되어 정말 꿈만 같아요.
신현실 오늘 한국의 전통색인 옥색 의상이 잘 어울리는데요! 그간 한국에서 여행은 많이 하셨어요?
안젤리나 TV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전국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궁궐은 경복궁 한 곳밖에 가본 적이 없어요. 얼마 전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을 찍었는데 오늘 교수님께 궁금한 것도 많이 물어보고 싶어요.
창경원에서 다시 창경궁으로
신현실 ‘창경궁’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경원을 먼저 떠올려요. 쉽게 말해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던 유원지였죠. 원래는 세종대왕이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왕을 위로한다는 핑계로 창경원으로 바뀌었다가 1980년대 복원을 시작해 오늘날 다시 창경궁이 되었어요.
안젤리나 이곳이 사자나 코끼리가 있는 동물원이었다고요? 오 마이 갓! 믿을 수 없어요.
신현실 1970년대까지 창경궁은 동물원과 서울의 대표적 벚꽃놀이 장소로 유명했었어요. 하지만 한국의 문화재를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 옛 창경궁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지요.
안젤리나 저도 동물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때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지만 지금이 훨씬 멋있고 좋은 것 같아요.
신현실 건물을 지을 때 자연과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 한국 전통 조경의 특징처럼 이곳도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자연환경에 맞춰 집들이 동쪽을 향해 지어져 있어요.
안젤리나 그래서 들어가는 대문도 동쪽에 있나요?
신현실 네. 창경궁의 출입은 홍화문을 중심으로 선인문, 월근문, 집춘문 이렇게 4개로 되어 있죠.
신현실 창경궁은 주로 왕이 행사를 치르던 곳이예요. 명종이 연회를 베풀었고, 고종은 창덕궁에 머물면서 때때로 창경궁에 들러 경치 좋은 곳에서 신하들과 경연을 열기도 했답니다.
안젤리나 아! 그래서 그런지 건물과 정원이 크지 않고 색이 예뻐요. 러시아 궁전의 화려한 색, 장식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왠지 세련된 멋이 느껴져요.
신현실 창경궁은 연회와 같이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던 장소는 아니었어요. 선인문 안뜰은 그 유명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지요.
안젤리나 저도 TV에서 봤어요. 아버지와 아들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슬펐어요. 여기가 그곳이라니 조금 무서운데요.
신현실 지금의 창경궁은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을 경계로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조선시대 창경궁은 훨씬 더 넓은 영역 을 지니고 있었죠. 서울대학교병원과 대한의원 주변은 원래 창경궁의 함춘원이 있었던 곳이에요.
통명전에서
신현실 통명전은 왕비가 머물던 곳으로 앞의 넓은 마당에서는 연회나 왕실의 공식행사를 열기도 했어요. 통명전 서쪽의 이 연못은 1485년에 샘물이 마당으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죠. 네 벽을 길게 다듬은 장대석으로 쌓아 올리고 난간도 돌로 둘렀어요. 연못에는 독특한 모양의 돌들이 보이죠? 이건 괴석이라고 해요. 연못 속에 괴석을 놓기 위해 받침석을 두었고, 그 사이에 아름다운 곡선형 다리를 놓았어요. 통명전은 연못과 석교, 화계가 한데 어우러진 창경궁의 대표적 정원 공간으로 꼽힌답니다.
안젤리나 돌을 꽃처럼 화분에 심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요. 연못과 다리, 계단으로 만든 화단도 모두 아름다워요. 물이 나오는 곳이 어딘가요?
신현실 바로 '열천'이라고 새겨져 있는 이곳이예요. 열천은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물'이라는 뜻으로 영조가 어머니를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춘당지를 함께 걸으며
신현실 이 연못은 춘당지라고 하는데, 위의 작은 연못을 소춘당지, 아래의 큰 연못을 대춘당지라고 부르죠. 대춘당지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곳은 조선 연산군 때 서총대를 만들고 과거시험장으로 사용했는데, 중종 때에 와서 이곳을 춘당대라고 부르면서 연못의 이름을 춘당지라 했죠. 이곳에서 멀리 남산과 한강까지도 보였다고 해요. 1909년 일본의 영향으로 조성된 것을 1984년 전통 기법으로 정비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안젤리나 연못과 주변 나무와 꽃이 궁궐 속의 작은 비밀의 정원처럼 보여요. 가을 단풍도 멋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나는데요?
창경궁 대온실과 서양식 정원에서
신현실 창경궁 대온실에 있는 돈나무 향기에요.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에요. 이곳은 일본 원예학자인 후쿠바 하야토(福羽逸人)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대온실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열대지방의 식물을 비롯해 각종 희귀한 식물을 전시했는데,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 한국에서 자라는 식물을 전시하고 있어요.
춘당지와 대온실 사이에는 중앙에 분수가 있고 사방에 키 작은 나무가 둘러져 있는 서양식 정원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형식은 덕수궁에서도 볼 수 있지요.
안젤리나 궁궐에 온실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교수님 얘기를 듣고 보니 이곳도 중요한 역사적 장소네요.
연리목
안젤리나 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데 하나의 나무인가요?
신현실 100여 년이 넘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한몸이 된 것이죠. 이것을 연리목이라 부르는데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러시아와 한국이 하나가 된 것과 같다고 봐요.
안젤리나 한국과 러시아가 더 가까워지려면 제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오늘 창경궁을 돌아보니 원래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아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현실 저도 안젤리나 씨께 창경궁 정원을 소개할 기회가 생겨 기뻤어요. 앞으로 한국 정원을 외국 친구들에게 많이 소개해 주세요.
글. 신현실 문화재 전문위원 (우석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사진. 김오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