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호국정신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된 예는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동의보감 외에도 해인사 팔만대장경, 난중일기, 국채보상운동기록물 등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에 맞선 고려의 호국정신 실천이다. 팔만대장경은 일국의 호국정신을 생명과 평화의 보편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애민과 호국정신의 기록물이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나라가 외채 때문에 위기에 처하자 국민이 외채를 갚겠다고 일어선 호국정신의 기록이다. 이처럼 우리 겨레의 호국정신은 전 사회적으로 실천되었다. 호국정신의 전사회적 실천은 의병항쟁, 3·1독립만세운동,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하와이 사진 신부들의 호국정신 실천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자유 없는 나라 백성은 참으로 불쌍하였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상처가 되어 자유 세상을 찾게 되었다’라고 사진 신부 천연희 씨는 말한다(문옥표 외, 『하와이 사진 신부 천연희의 이야기』, p.171). 낯선 하와이의 조선인 농업노동자에게 시집갔던 사진 신부의 이야기에는 망국의 한이 서려 있다. 천연희의 일기에서 보듯이 사진 신부들은 조국의 독립운동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양에서 호국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하여 지배층의 덕목으로 여겼지만, 우리 겨레의 호국정신은 상하 계층 모두의 실천 사상이었다. 예컨대 행주대첩과 진주성전투에서 민·군·관의 협력은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정부군이 패퇴한 상황에서도 양반·농민·노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을 무찔렀던 의병항쟁은 호국정신의 증거이다. 이러한 호국정신은 누구의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호국정신은 세계화 시대인 현대에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산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현대판 국채보상운동인 금 모으기 운동을 목격하면서 호국정신의 힘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19와의 전쟁에 헌신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에서도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호국정신이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자민족우월주의가 되어 남을 억압하거나 배타적 정신이 되면 안 된다. 다른 나라의 존경을 받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과거부터 우리의 호국정신은 개방성과 다문화를 품고 있었다. 베트남 이씨 왕조의 후예는 고려로 망명해 항몽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화산 이씨가 되어 이 나라 호국정신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사야카 등 많은 일본군 장수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해 일본을 상대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조선의 충신이 된 사례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전쟁 시기 등에서 많은 외국인이 호국정신의 실천 대열에 참가했다. 이들의 도움에 부끄럽지 않은 개방적 호국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다.

글. 한도현(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