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바위는 사모지 고개를 넘어 중바위와 마주보는 길 오른편 청량산 비탈에 있다. 그 옆에 무덤들이 있어 찾기가 쉽다.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지금처럼 철책도 없었고 앞의 나무들도 많이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연수동과 청학동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렁이던 서해까지 볼 수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앞을 가로막는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쉽지 않지만 묘역은 아직도 햇볕이 환하게 내리쬐는 장소로 가히 명당자리라 할 만하다.
▲갑옷바위가 있는 경주 이씨 묘역의 과거 모습.
▲갑옷바위가 있는 경주 이씨 묘역의 현재 모습 (오른쪽 나무 뒤에 엄청 큰 돌무더기가 있었다.)
철책 너머에 갑옷바위가
갑옷바위 옆 무덤은 예전에는 봉분과 그 앞에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글이 새겨진 상석과 향료석만 놓여있었다. 그런데 2012년에 비석을 새로 세우고 봉분에도 병풍석을 둘러 깔끔하게 단장했다. 경주 이씨 선산인 것 같다. 처음에 왔을 때는 묘역 일대가 개방된 공간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철책을 두르고 자물쇠까지 채워놓았다.
▲갑옷바위
아무래도 갑옷바위를 찾는 사람들이 무덤을 훼손할까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갑옷바위를 찍으려고 철책을 뜯어내거나 넘어가는 일까지 생겼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철책의 윗부분을 개방했다. 가까이 가서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고 싶지만 남의 선산이니 이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인천시사>에 갑옷바위는 “얼른 보아 작은 승용차를 비탈에 세워 둔 듯한 형상으로 남쪽을 향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이 바위는 그리 크지 않으나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 지금은 그 뚜껑의 아래쪽 부분이 떨어져 달아난 바위이다.”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그동안 세월의 흐름이 바위에 균열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또 누군가 갑옷과 투구를 꺼내려고 돌을 내리쳤는지 뚜껑바위인 윗돌이 세로로 길게 금이 가 깨진 것을 볼 수 있다. 아무튼 갑옷바위는 뚜껑을 닫아놓은 돌함처럼 보인다.
갑옷바위가 전하는 이야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어느 장수가 이 바위의 아랫부분에다 돌함을 파고 자기 갑옷과 투구를 감춘 다음 그 위에다 뚜껑바위를 덮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바위를 건드리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문학산 꼭대기의 안관당 당지기가 이 바위를 깨뜨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확인할 작정으로 뚜껑바위 아래쪽을 망치로 쳐서 깨뜨렸다고 한다. 그러자 정말 청천벽력이 치고 천지가 진동하여 당지기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갔다고 한다. 지금도 그 깨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철망 사이로 찍은 세로로 쪼개진 갑옷바위 뚜껑돌.
갑옷바위에 왜 이런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이 묘역의 오른쪽 뒤에 엄청나게 큰 돌 대여섯 개가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묘역을 조성하며 옆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울타리 안에 돌 한 개만 남고 나머지들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울타리를 치며 없애버린 것 같다. 예전부터 의문을 품었지만 혹시 이곳에 고인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갑옷바위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설화(禁忌說話)이다. ‘돌을 건드리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은 이 돌의 훼손을 금지하기 위한 강력한 통지(通知)이다. 다시 말하면 이곳은 신성한 구역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계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정도 크기의 돌들이 있을만한 곳은 아니다. 이곳이 예전에는 혹시 부족장들의 무덤이 있기에 이런 금기의 이야기가 장수와 갑옷바위라는 이야기로 각색되어 구전된 것은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