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 보물 제2032호)’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 의기(儀器,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 표현한 천문 관측 도구다. 서양의 천체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실학자 유금(柳琴, 1741～1788년)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정조 11)에 만든 과학 기구다.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몸판)과 별의 관측 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별자리판)’으로 구성됐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해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동지선), 적도, 북회귀선(하지선)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 상의 춘분점과 동지점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黃道圓)을 한판으로 제작했다. 또 특정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이 11개가 있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北極出地三十八度)’란 위도를 새겼으며, 이는 곧 서울(한양)의 위도 36.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는 북극성, 직녀자리, 견우자리, 처녀자리, 안드로메다, 오리온, 페가수스 등 계절별 주요 별자리가 표시됐으며, 그 밖에 알파드(Alphard, 바다뱀자리의 가장 밝은 별), 프로시온(Procyon, 작은개자리에 속한 별) 등 우리나라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의 작은 별들의 위치까지 표시했을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됐다.

이는 ‘혼개통헌의’가 중국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를 바탕으로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성을 보여 주며,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 천문학 발전을 알려주는 귀중한 과학 문화재다.

** 아스트롤라베(Astrolabe):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기원한 단어이자 도구로,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시계다. 처음 이슬람에서 고안됐고 이후 스페인 등 유럽으로 널리 퍼져 활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