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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깃발'을 꽂는 것이 왜 승리의 의미가 됐을까?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5.19]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깃발'을 꽂는 것이 왜 승리의 의미가 됐을까?

  
       

지난 2009년, 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일본을 꺾고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09년, 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일본을 꺾고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지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우리나라 대표팀은 승리의 상징으로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었다. 메이저리그 경기장 마운드에 꽂힌 태극기의 모습은 많은 국내 경기 시청자들에게 큰 감명을 줬다.

이처럼 경기에 이긴 팀이 경기장에 깃발을 꽂는다는 것은 관용적으로 완벽히 승리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깃발을 꽂다'는 의미의 영어단어인 'fix the flag'에도 승리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고대부터 깃발을 꽂는 것이 군사적 승리를 상징하는 강력한 매개체로 이용돼왔기 때문이다.

깃발이란 매개체를 처음,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온 집단은 군대 조직으로 알려져있다. 군 조직은 고대부터 군의 집결, 이동, 전투 등 각종 군사행동에 쓰기 위해 깃발을 사용했으며 이 자체가 군대의 상징이 되곤 했다. 고대에는 수천, 수만명씩 모아놓은 부대들끼리 상호 실시간 연락을 할 수단이 전령과 깃발 등이 전부였다. 특히 부대 깃발은 전투시 군복 색깔과 함께 매우 중요한 피아 식별 수단이었다. 난전 이후에도 깃발을 중심으로 부대가 재편성되다 보니 일반 병사들 입장에서는 하루종일 깃발만 쫓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깃발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곧 부대의 전멸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서양의 무협지, 판타지, 소설 등에서 바람이 불어 대장기가 부러졌다는 내용은 곧 다가올 패배를 암시하는 클리셰(cliche)로 흔히 쓰여왔다. 이처럼 중요한 깃발을 지키기 위해 전시 부대 깃발 근처엔 보통 수백명이 호위를 섰으며 깃발을 뺏기지 않으려고 치열한 결전을 치르기도 했다.


로마군의 아퀼라 깃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로마군의 아퀼라 깃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고대 로마군의 상징인 독수리 깃발은 '아퀼라(Aquila)'라고 불렸으며 이 독수리는 그 부대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한 부대가 적군에게 패해 아퀼라를 잃어버리고도 그대로 살아 돌아올 경우엔 부대장이나 책임자 한사람을 뽑아 나머지 동료들이 그들을 죽이게 하는 무서운 군율까지 있었다고 한다.
 
역으로 부대장이 군대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깃발을 버리는 전략을 택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군이 그리스로 진공했을 때, 장창을 든 그리스군의 빽빽한 팔랑크스(Phalanx) 진형에 겁을 먹은 병사들이 앞으로 진군을 못하자 한 지휘관이 아퀼라를 팔랑크스 진형 속으로 집어던졌고, 그러자 병사들이 아퀼라를 되찾기 위해 돌격을 감행해 승리했다는 일화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을 점령한 후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 소련군이 깃발을 꽂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을 점령한 후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 소련군이 깃발을 꽂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이렇게 중요한 깃발을 점령지에 꽂는다는 것 자체의 심리전도 상당했다. 깃발을 이미 중요 시설에 꽂았다는 것은 전쟁의 승패가 가려졌단 의미로 쓰였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동로마제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성내로 잠입한 터키군은 성벽의 높은 첨탑에 올라가 터키 깃발을 꽂았다. 깃발을 본 성내 병사들은 크게 동요하고 시민들도 희망을 잃자 그때까지 격렬히 저항했던 도시는 금방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도시의 주요 거점지역에 자국 깃발을 내걸고 이를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현대전에서도 매우 의미있는 전략으로 써먹혔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베를린에 먼저 입성한 소련군이 시가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독일 국회의사당 위에 깃발을 게양한 일화나 6.25 전쟁 당시 9.28 서울수복 때 여러 희생을 감행하면서 구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사시모노를 달고 출전한 사무라이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사시모노를 달고 출전한 사무라이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이러한 문화는 전쟁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현대 기업문화에도 스며들었다. 특히 전국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지방영주들의 특색있는 문양의 깃발이 만들어졌던 일본은 이것이 곧바로 기업의 엠블럼(emblem)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사무라이들이 보통 등에 지고 다니던 이 사시모노(指物)라 불리는 깃발은 지도자와 가문의 이름, 구호, 지역 특색 등을 간략하게 디자인한 도안을 집어넣곤 했다. 일본의 대기업 집단인 미쓰비시(三菱)그룹, 미쓰이(三井)그룹 등의 형이상학적 엠블럼은 이 사시모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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