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함께 어우러진 도시

서울에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으로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이 남아 있다. 이 도성을 중심으로 한양의 경관을 그린 지도가 ‘도성도(都城圖)’다. 도성도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현전(現傳)하는 대부분이 18세기 중엽 이후에 제작된 지도다. 18세기 중엽 이후 도성도에 보이는 특징은 도성 내부를 중심으로 도로, 교량, 관아 등 도시시설과 행정구역 명칭 등 지도로서 갖추어야 할 정확한 정보를 드러내면서 주변 산세를 실경산수화법으로 묘사해 도성의 지리적 특징을 강조한 지도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1787~1788년에 제작된 보물 제1560호 <도성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는 한양도성의 전경을 산수화 식으로 그린 지도 가운데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대표적인 지도다.

<도성도>를 보고 있으면 서울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잘 느끼지 못하지만 사방에 생명력 넘치는 산들이 도성 안까지 닿아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도시와 산이 어우러진 서울은 어느 시점에서 보아도 웅장한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선이 수도로 삼은 한양은 지리적으로 북한산의 남쪽, 한강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풍수적으로 명당에 해당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갖추고 있다. 조선 성종 때 편찬한 지리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북한산(삼각산)의 한 맥이 북한산 보현봉을 거쳐 북악(백악)으로 연결된다고 적혀 있다. 바로 이 지맥(地脈)이 모이는 북악산(백악산) 아래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세워졌다.

경복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주산(主山)이 되는 북악산의 서쪽으로는 인왕산, 동쪽으로는 낙산(타락산, 낙타산), 남쪽으로는 남산(목멱산)이 위치한다. 이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에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을 지은 후, 이 네 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을 쌓아 한양에 도시가 건설되었다. 실경산수화법을 적용해서 그린 <도성도>는 한양도성이 자연과 어우러진 수려한 산수 공간에 자리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어 한 나라의 수도로서 권위와 상징성을 드러낸다.

산수화같이 그린 지도

경복궁 조망이 가능한 동십자각(東十字閣) 건너편 ‘트윈트리 타워’에 올라가 보면 경복궁 뒤로 펼쳐진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아름다운 산세 때문인지 이름 모를 조선시대 화가는 지도를 그리면서 도성 주위의 산세를 실경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산의 형태와 질감에 따라 먹선의 농담과 굵기를 달리하면서 선을 날카롭게 내리긋거나 붓을 눕혀서 넓은 면으로 칠해 뾰족하거나 장중한 바위 봉우리를 표현했다. 가늘고 마른 선을 여러 번 그어[披麻] 산의 입체감을, 살짝 눕힌 붓 끝으로 반복해서 점을 찍어[米點] 토산(土山)의 토질을 나타냈다. 산과 산 사이에는 구름처럼 보이는 흰 여백으로 공간감을 주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실루엣으로 처리하는 등 섬세한 필법은 <도성도>의 전체적인 화면을 더욱 회화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산형 부분만 떼어 보면 마치 한 폭의 실경산수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처럼 <도성도>에 그려진 산세 표현을 보고 있으면 지도를 그린 화가가 “수도 한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라는 단순한 정보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면, 그것이 비록 주문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거나 특정한 용도가 있는 지도라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실경과 유사하게 화폭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 보물 제1560호 <도성도>는 오늘날 산수화 못지않은 회화적 예술성을 지닌 지도로 평가받는다.

글, 사진. 김성희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