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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3.09]

화번공주로 이민족에게 시집가게된 "왕소군과 그녀의 남편 흉노의 호한야선우"

昭君拂玉鞍 (왕소군이 옥구슬 안장을 건드리듯)

上馬啼紅頰 (말에 오르니 붉은 두 뺨엔 눈물 흐르네)

今日漢宮人 (오늘은 한나라 궁인이지만)

明朝胡地妾 (내일은 오랑캐의 첩이라내)

李白 ‘王昭君’


기원 전 이백여 년 전, 장량과 한신의 도움으로 항우를 꺾고 제위에 오른 유방에게 두통거리가 있었다.

북쪽의 유목민족 흉노였다.

그들은 가을겆이가 한창일 때면 국경을 넘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마침내 한 고조 유방은 32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게릴라전법으로 치고 빠지는 흉노의 기마병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평성의 백등산에 포위되어 고전하다 가까스로 후퇴했다.

 

한 고조는 어쩔 수 없이 흉노와 불평등조약을 맺었는데,

그 조약 중 하나가 '한나라 공주를 흉노의 왕에게 시집보낸다'는 것이였다.

 

그 뒤 정략적인 이유로 흉노왕에게 시집가는 공주를 화번공주(花番公主)라 했다.

한나라 왕은 후궁 중에서 화번공주를 고르거나 신하의 딸을 양녀로 삼아 흉노왕에게 보냈다.

 

기원 전 33년, 한 11대 왕인 원제시대의 일이다.

흉노의 왕인 호안야가 화번공주를 요구했다.

 

당시 원제에게는 수 천명의 후궁이 있었다.

원제는 그 후궁을 일일히 기억할 수 없어 화공으로 하여금 초상화를 그려 오도록 해

그 중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 잠자리를 같이 하기 일수였다.

 

원제는 화공이 그려 온 초상화 중 가장 추하게 생긴 여인을 골라 흉노왕에게 시집 보내기로 결심했다.

 

원제와 흉노왕은 화번공주로 선정된 여인이 나타나자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글자그대로 천하일색의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미인이 서시,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유명한 왕소군(王昭君)이다.




왕소군은 16살의 나이에 후궁으로 궁중에 들어 왔다.

원제의 후궁들은 초상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왕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공들에게 뇌물을 바쳤다.

가난해 돈이 없는데다 미모에 자신을 가진 왕소군은 화공을 찾아가지 않았다.

괘씸하게 생각한 화공은 왕소군의 얼굴을 추하게 그렸다. 어떤 기록에는 보기 싫은 점을 얼굴에 넣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미인이 흉노왕과 함께 떠나가자, 원제는 화가 치밀어 올라 왕소군의 초상화를 그린

화공 모연수를 참형에 처했다.

 

중국의 북쪽 변방인 흉노까지 가는 길은 너무 황량했다. 민가는 물론 나무도 별로 없는 황무지를 가며

왕소군은 비파로 슬픈 마음을 달랬다.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이 소리를 듣고 날개짓을 못한채 땅에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부터 왕소군을 '낙안(落雁)미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초당(初唐)의 시인 동방규의 시다. 비운의 여인, 왕소군에 관한 昭君怨(소군원)>이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봅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뜻이다. 

동방규의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는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왕소군의 묘 '청총(靑塚)>



흉노왕 호안야가 죽자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며 왕소군의 미색에 홀려 아내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고,

아비와 아들의 아내가 된 것을 비관, 자살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랑캐족에게 강제로 시집간 천하일색의 왕소군은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왕소군은 죽어 흉노의 땅에 묻혔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땅의 모든 풀이

시들어도 왕소군의 무덤 풀만은 사시사철 푸르렀다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塚)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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